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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Aug 27. 2022

관찰적 사랑

Karu's Novel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관찰적 사랑과 행위적 사랑.


  관찰적 사랑은 말 그대로, 상대를 관찰하면서 느끼는 사랑이다. 내가 꽃을 기르고 있다. 아무리 물을 주고, 예쁜 말을 해주고, 영양제를 줘도, 꽃은 모른다. 나를 볼 수도 없고, 나를 어루만질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꽃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꽃에게서 사랑을 받길 가정하고 사랑을 준 게 아니니까. 내가 꽃을 사랑할 뿐이니까. 이런 게 관찰적 사랑이다. 보기만 해도 괜히 웃음이 나는, 그런 사랑.


  "이거 틴트 새로 산 거야?"

  "응! 올리브영에서 세일하길래 사봤는데 괜찮더라고?"

  "색깔 예쁜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다. 그렇게 난 마음을 다독여간다. 짝사랑도 일종의 관찰적 사랑이다. '사랑을 주기는 하지만 돌려받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관찰적 사랑의 단점이다.


  "나 이거 손에 살짝 발라봐도 돼?"

  "어어 써봐."

  ".. 내 피부톤이랑은 안 맞는 듯. 서은이 너한테는 잘 어울린다."

  "이거 약간 내 퍼스널컬러랑 맞는 것 같기도?"


  그래도 장점이 있다면, 상대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 멀리서 상대를 지켜보는 것 정도는 상대가 나에게 갖는 생각을 뒤집을만큼 강력한 힘을 갖지 않는다. 지금도 서은이와 친구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아마 내가 보는지도 모를 것이다. 멀리서라도 계속 지켜볼 수 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네가 내 삶의 원동력이니까. 마치 너를 보기 위해 학교를 나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즐겁다. 


  '귀엽다......'


  "뭐하냐?"

  "아씨 깜짝이야."

  "종 쳤어. 밥 먹으러 가자."

  "아 벌써?"




    행위적 사랑은 능동성에 초점을 맞춘다. 말 그대로, 사랑을 하는 것. 대부분의 행위적 사랑은 관찰적 사랑을 거친 후 일어난다. 특히 고백하는 쪽이라면 더더욱. 우리가 흔히 '연애' 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행위적 사랑에 속한다.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모두 포함해서.


  사랑이 고픈 사람들은 아마 이 행위적 사랑이 고픈 게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껴안고, 입을 맞추고, 밤마다 자기 전에 전화하고, 데이트를 하면서 함께 무언가를 먹고. 그런데, 행위적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일까? 오히려 행위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잃고 싶지 않다. 고백은 관계의 단절이다. 친구 관계에서 고백을 한다는 건, 그동안 쌓아온 친구 관계를 그만 둔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고백을 받아준다면 그만큼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상대방의 선택이다. 상대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걸로 끝이다. 돌이킬 수 없다.


  "한서은!"

  "아 맞다, 여기. 잘 썼어."

  "어, 필요하면 또 불러라."


  서은이는 남사친들이 많다. 내가 다가가기 가장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난 그런 애들을 제치고 다가갈 용기가 없다. 내 손으로 밝히는 게 두렵다. 혹시나 그 많은 남사친들 중에 서은이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서은이도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 사실을 내 손으로 확인하는 게 두렵다. 그래서, 그래서 더욱 다가가지 못하겠다.


  '병신.'


  문득 탄식이 터져 나왔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그래도, 어설프게 고백을 해서 사이가 멀어질 바에야 차라리 지금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지금보다 멀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좋아한다고, 전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짝사랑은 위험하다.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은 역시 당사자가 그 사실을 알아버리는 것이다. 서은이가 만약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알게 된다면, 날 어떻게 대할까. 아무 것도 모르는 듯이 편하게 대해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건 모른다. 어색해서 나를 피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놀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일단 짝사랑에는 위험이 따른다.


  "야! 나 서은이한테 이거 받았다!"

  "오올~"


  어디선가 남자애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듣자 하니 서은이가 저 아이에게 키링을 준 것 같다.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다. 저 아이도 그저 서은이의 많은 남사친 중 하나일 뿐이겠지. 그런데 어딘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여나, 저 아이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면 난 어떡해야 하는 걸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은이와 잠시 마주쳤다. 해맑게 인사해주는 모습을 보면 안심이 된다. 그리고, 오후 햇살에 반짝거리며 빛나는 너의 머리카락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저물어 가는 해가, 붉게 물든 하늘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꿈만 같은 순간에 너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가줘....'


  내 바람과는 달리 서은이는 인사만 하고 지나갔다. 조금 씁쓸한 기운이 감돌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혼자 갈 뻔한 차에 너를 만나서. 너를 봐서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서오세요."


  오면서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내일이면 9월 17일, 고백데이다. 그래도, 나는 고백은 하지 못하겠다. 그냥 네가 내 선물을 받고 기뻐한다면 그걸로 족하다. 나인걸 몰라도 괜찮다. 아니, 모르는 편이 낫다. 부담스러운 일은 애초에 벌이고 싶지 않다.


  "결제 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수고하세요."


  편의점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서은이 생각을 하면 배시시 웃음이 나오다가도, 이내 씁쓸한 기운이 입안에 감돈다. 넌 아무 것도 모를 테니까. 너를 좋아하는 마음에 내가 이렇게 끙끙대도 넌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까.


  '맛있게 먹어.'


  정성스럽게 포장한 초콜릿 위에 메모지를 붙이고 또박또박 글씨를 썼다. 저 다섯 글자를 쓰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중간에 손이 삐끗해서 몇 번씩 새 종이에 다시 썼다. 깔끔하게 포장이 끝난 상자를 가방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이제, 전해주는 일만 남았다.




  "가자!"

  "야 잠깐만.. 같이 가!"

  "먼저 간다. 알아서 와."

  "의리 없는 놈."


  다음 시간은 체육이다. 다른 애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했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손에 땀이 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걸로 된 거야.'


  서은이의 자리에 초콜릿을 올려두었다. 네가 돌아오면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좋아했으면 좋겠다. 내가 준 거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직접 말할 용기는 없으면서도, 네가 알아주길 바란다. 어쩌면 난 이기적일 지도 모르겠다.


  "화장실 갔다 오느라 늦었습니다... 아?"


  이미 체육 수업은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없는 걸 아무도 몰랐던 모양이다.




  "어...?"

  "대박! 서은아, 누가 준 거야?"

  "나도 모르겠어..."

  "와 나도 받아보고 싶다.."

  "이거 혹시 성현이가 준 거 아니야?"

  "잠깐만, 그런가?"

  '뭐?'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분명 성현이란 아이도 서은이의 친한 남사친 중 하나일 것이다. 평소에 같이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긴 했다. 그런데.. 걔가 준 거라고 착각을 한 걸까. 왠지 모르게 찝찝한 마음이 밀려왔다.


  "다음 주에 봐!"

  "빠이"

  "잘가!"


  의미 없는 시간이 흐르고 종례가 끝났다.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더 저려오기만 한다. 왠지 모르게 서은이의 표정은 더 밝아보였다. 확실한 건, 나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줬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테니까.


  내가 널 좋아하는데. 넌 왜 몰라주는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내가 힘들어서. 나 혼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 혼자서 상처입고, 나 혼자서 끝내는 것도 웃긴 일이다. 서은이는 아무 것도 모를 테니까. 그래도,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덕분에 그동안 혼자서라도 즐거웠으니까. 단지 이제는 내가 널 좋아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이전처럼 관심을 주지도 않을 것이다.


  "바보..."


  애들이 다 간 다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교실 문을 닫고 나왔다.

  유독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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