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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푼 May 20. 2024

Try to remember

지금 이 순간




코로나가 잦아들던 어느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들을 깨워 길을 나섰다.


그날의 행선지는 군산이었는데, 휴게소에서 간단한 식사를 할 때부터 하늘의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오전 9시 10분 전에 군산에 도착했다. 우리의 첫 행선지는 이성당이었다. 빵집 건너편 골목에 주차를 하는 순간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탄식과 함께 우산 두 개를 펼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신랑과 나는 아이들을 한 명씩 데리고 이성당으로 뛰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적어서 실내에 입장이 가능했다. 내부에는 나름 긴 행렬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성당의 가장 유명한 단팥빵을 기다리는 줄이었다. 약 20분을 기다려 단팥빵을 맞이했다. 갈색으로 부풀어 오른 토실토실한 빵이 먹음직스러웠다. 그러나 빵의 종류도 부족하고 가격대가 높아서 단팥빵만 2박스 사고 그 외 다른 종류는 조금만 샀다.


천천히 차로 돌아와 단팥빵을 먹었다. 통팥이 가득해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단팥빵은 성심당보다 나은 걸 인정했다. 빵 하나를 입에 물고 다음 행선지인 초원사진관으로 향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다행히 비는 멈췄다. 단비에 목을 축인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싱그럽게 반짝였다. 초원사진관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기회를 틈타 사진관 사진만 얼른 찍었다. 그동안 꼭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참 오래 걸렸다.


여름이면 자주 듣는 음악 중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동명의 주제곡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이는 이 노래는 배우 한석규 님이 직접 부른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늘 추억에 잠긴다. 청소년기에 잠시 군산에 살았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깔깔 웃던 일, 왕복 1시간 거리를 걸어 등하교를 해도 시간이 짧게 느껴졌던 일, 주연이었던 친구가 일이 생기는 바람에 원래 단역이었던 내가 학교축제 뮤지컬에서 대신 주연으로 공연했던 추억들이다. 그때 불렀던 뮤지컬 주제곡은 'Try to remember'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고 다시 온 군산은 쓸쓸해 보였다. 당시엔 낮은 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선 아기자기한 상가지역에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이제는 한때의 영화가 퇴색한 소도시의 모습이 역력했다.


점심은 빈해*에서 중국음식을 먹었다. 군산은 유명한 중국음식점이 많다. 사실 빈해*은 최상의 맛은 아니지만 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소라서 선택했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들의 말투가 낯설었는데, 모두 외국인이었다. 탕수육과 깐쇼새우, 짜장, 짬뽕을 먹었다. 맛은 So So였다. 점심을 먹고 조금 걷다가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들을 마셨다. 방전된 몸에 카페인이 활력을 불어넣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을 위해 근대역사박물관에 들렀다. 군산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곳이라 처음 가는 이들은 꼭 가면 좋을 듯하다. 경암동에 있는 기찻길에도 가 보았다. 많은 관광객들이 교복을 입고 콘셉트 촬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교복을 입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들뜬 표정 속에서 철길을 따라 거스르는 시간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가면 늘 이른 밥때를 선호하는데, 저녁식사 전 마지막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은파유원지에 갔다. 운전 때문에 피곤한 신랑은 차에서 쉬게 하고 두 아들과 신나게 산책에 나섰다. 소풍 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동안 많은 시설물이 추가되어 시내와는 달리 더 근사하게 변해있었다.


호수 위로 지어진 나무다리를 걷는 내내 윤슬이 반짝였다. 탁 트인 사방에서 바람이 달려오다 아이들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다시 달려갔다. 아이들은 끝말잇기를 하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었다. 시내구경을 할 때보다 더 신이 난 모양새다.


뒤를 따르며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아이들은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이 최고다.


군산에서의 추억 대부분이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던 것처럼, 미래의 아이들에게 오늘의 시간이 바로 군산이기를.  공간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찰나였다.



Try to remember








덧) 국내여행 글쓰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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