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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단아 Oct 01. 2021

[울팡이] 생쥐와 인간 - 존 스타인벡 반응글

단아한 8월


『생쥐와 인간』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자연물, 풍경에 대한 묘사로 각 장이 시작한다는 점이다. 자연물, 풍경에 대한 묘사가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난 책이 오랜만이라고 느껴졌을 정도로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감각적 묘사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하나는 이 책이 인간 군상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투박하고 날것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용과 표현 양식 모두에서 반대됨이 나타난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이런 풍경에 대한 묘사를 더욱 인상적으로 만든다. 각 장의 내용이 비극적일 수록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두드러진다. 인물들이 쫓겨난 시점인 1장과 레니가 죽음에 이르는 시점인 6장에서는 헛간, 숙소, 농장 등에 대한 묘사와는 달리 가장 길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자연물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또한 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계층이 표현된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에서 그런 지점이 잘 드러난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둘의 형식이 대비된다. 『생쥐와 인간』의 주제를 옮긴이는 친구들 사이의 헌신으로 언급하였지만, 본 글에서는 '악의 없는 악행'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책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레니는 악행을 저지르고 기억하지 못하고, 악행에 대한 큰 자각이 없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레니와 조지의 첫 만남이나 유년시절에 대한 언급 없이 레니의 악행으로 인해 쫓겨난 지점으로부터 시작한다. 레니는 '참 좋은 친구였는데,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186)'한, '언제나 나쁜 짓을 저지르긴 하지만 악의를 갖고 그런 적은 한 번도 없(186)'는 사람이다. 그러나 '언제나' 나쁜 짓을 저지른다면 악의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에 대한 악의와 좋은 친구라는 것이 맞는 지에 대한 의문이 필요하다. 선과 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까지 갈 것까지도 없이 레니에게는 힘(그것이 물리적인 힘에 불과할 뿐이어도)을 가지고 있고,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 힘을 의식하고,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의식과 책임이 없는 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 『생쥐와 인간』에서는 세 죽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악의 없는 악행은 레니에게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생쥐와 인간』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악의 없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깜둥이는 끼워 '주었어(41)'라는 표현으로만 이야기에 등장하고, '사람들은 깜둥이가 꼽추이기 때문에 스미티가 발을 써서는 안 된다고(41)'는 하지만 흉내를 내는 것은 막지 않으며 그것에 분노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상대방이 이길 수 없는 싸움만 하(53)'는 컬리와 '친구를 이렇게 감싸주려는 것을 본적이 없(45)'지만

마침내는 친구를 죽이는 조지, 캔디 영감의 개를 죽이는 칼슨, 이 모든 악행에 동조하거나 무심한 슬림까지. 레니만이 악의 없는 악행을 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이 책의 모든 인물들은 이것이 악행이라는 자각이 없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악의 없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모든 인물이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컬리의 아내만이 이름이 아니라 '컬리의 아내', '여자'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사내잡는 쥐덫 같은 계집(65)'이라는 컬리의 부인은 레니에 의해 죽는다. 레니는 '당신은 나를 곤란에 빠뜨릴려고 그러는 거야(178)'라고 하지만 오히려 레니야 말로 그녀의 눈을 '공포에 질려 휘둥그래(178)' 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오히려 레니야말로 결국 여자를 죽인 쥐덫같은 사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창녀촌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도 이 책에는 여성에 대한 관점에 많은 문제가 있다. '분명 20달러만 주면 나가떨어질 거(64)'라는 컬리의 아내는 죽음 이후에야 '예쁘고 순수했으며 얼굴은 귀엽고 더욱 어려 보(182)'인다. 컬리의 아내에 대한 작가와 남성 인물들의 시각은 '비천함과 음모 그리고 불만족과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해 안달하던 덧없는 열망(182)' 뿐이다. 남성인물들이 언급하는 대사에서도 여성관에 문제가 있지만 여성 인물은 납작하게만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여성관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죽음 이후에야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그려지지만 그 역시 여성의 긍정적인 속성은 외모와 '순수함', '나이 어림'으로만 등장한다. 작가 역시 컬리의 아내를 그리며 악의 없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생쥐와 인간』의 인물들이 악의 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그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이를 상징하는 레니는 강아지를 죽이고, 컬리의 아내까지 죽인다. 이에 '내가 또 나쁜 짓을 한 거야(179)'라는 생각에까지 이르지만 걱정하는 것은 '조지가 야단 칠 것(179)'에 대한 걱정과 '토끼를 기르지 못하게 할 것' 뿐이다. 이렇기 때문에 레니의 '해치려는 게 아니야(179)'라는 말은 힘을 잃고, 오히려 폭력적으로까지 다가오게 된다. 피해자는 지워지고, 오히려 '마치 생쥐를 붙잡듯이 그 여자를 붙잡(25)'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레니는 '불쌍한 녀석(19)'이다. 레니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수많은 피해자들만이 불쌍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레니의 삶을 보았을 때 레니의 삶 역시 그리 평탄하거나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성찰 없는 삶은 자신과 타자, 사회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이런 악의 없는 악행을 가장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인 레니의 결말은 죽음이다. 이는 많은 점을 생각하게끔 한다. 인간의 근본적으로 타고난 부분은 결국 개선할 수 없어 죽음만이 정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모두가 레니가 총을 가져갔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언제나 깜빡하지, 그리고 나는 매번 가르쳐줘야 하고(47)' 에 질린 조지가 총을 챙겨 직접 죽였다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조지는 어떻게 보면 레니의 사회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인데, 그런 인물이 마침내는 포기하는 결말이라는 점이 레니는 변화 가능성이 없었을까?(타고난 천성을 변화할 수 없는 것일까?) 사회와 환경의 한계로 변화할 수 없었던 것일까?(악의 없는 악행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의 영향을 받기도 하며-악행이라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 등이-, 레니가 처한 환경이 고된 노동이나 폭력 없이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다를까?) 등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친구들 사이의 헌신보다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고민, 성찰 없는 악행에 대한 경계, 악의 평범성 등에 대해서 더욱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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