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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Mar 22. 2021

미디어에 나오는 멋지고 대우받는 여성들은 모두 말랐어요

2020년 5월, 내가 만난 10대 프로아나 - 프로아나 인터뷰

최근 경향신문에서 나온 '프로아나'관련 칼럼이 트위터에 공유됐다. 트위터는 '프로아나계'라는 이름으로 프로아나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거의 유일한 SNS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대부분 프로아나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이번 칼럼이 활발히 공유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반면에 많은 대중들이 프로아나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프로아나는 '거식증에 찬성한다'라는 뜻이다. 마른 몸매를 선망하여 식이장애에 걸리거나, 걸리길 희망하는 다이어터들을 뜻한다. 이들의 다이어트법은 아주 극단적이다.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은 물론 때때로 단식을 선언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 존재가 드러났다. 방송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프로아나 커뮤니티는 폐쇄됐다. 이후 자취를 감추는 듯하더니 최근 트위터에서 다시 프로아나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프로아나가 가지는 여러 문제점 중 가장 치명적인 건, 이들 대부분이 10대나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란 점이다. 실제 프로아나 계정들이 공유하는 일상 트윗에는 새 학기, 교복, 급식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몇 해 전 내가 처음 프로아나 계정을 접했을 때보다도 더 연령대가 낮아진 기분이다. 


2019년 말부터 지금까지 프로아나는 나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프로아나계는 폐쇄적이어서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아주 어렵다. 실제로 몇몇 기사를 통해 프로아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는 추측에 가깝다. 어디서도 10대 프로아나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을 순 없었다.


2020년 5월, 나는 우연한 기회로 프로아나에 대해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내게 도움을 주신 분은 당시 '탈프아(프로아나를 그만두는 것)'에 성공한 훌륭한 여성이었다. 그는 큰 용기와 함께 내게 '10대 프로아나'로서의 삶을 공유해주었다. 


이하의 내용은 2020년 5월에 나눴던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다. (인터뷰이의 신원보호를 주목적으로 한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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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살 ○○○입니다. 섭식장애는 14살에서 15살 넘어갈 때 시작됐습니다. 본격적으로 프로아나판*에 들어가게 된 것은 19살 때입니다. 그때 한창 프로아나가 트위터 실트(실시간 트렌드)**에 올라갔는데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끼며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트위터에서는 특정 주제, 정체성을 가진 계정들을 모아 ‘판’이라고 지칭 Ex. 판소판: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계정들을 통틀어 의미

**실시간 트렌드, 트위터에 존재하는 일종의 인기 검색어 순위. 모든 트위터 계정들에게 공통적으로 노출됨


Q. 그러면 프로아나를 알게 된 계기가 트위터인가요?

A. 네. 저는 ‘프로아나’라는 것을 트위터에서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현재 활동하지 않고 있지만 프로아나 계정이 있었습니다.


Q. 프로아나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동질감이었습니다. 원래 섭식장애를 오랫동안 겪어왔고, 이는 타인과 나누기 어려운 아픔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수십 번을 싸웠고, 혼났고, 울었지만 고치지 못해 항상 먹고 몰래 토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혼자 아파하던 도중 프로아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매료됐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 사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에 끌렸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프로아나가 된 거 같습니다.


Q. 프로아나는 보통 날씬해지기 위해 섭식장애를 겪는다고 들었습니다. ○○○님도 날씬해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섭식장애를 겪으신 건가요?

A. 네. 저는 약간 비만이었는데 주변에서 듣는 말들이 너무 싫었습니다. 돼지 같다든가, 살이 옆으로만 찐다든가, 역겹다든가.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그것이 극도로 심해져 거식증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먹고 싶다는 식욕으로 인해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일이 일상이 됐습니다.


Q. 프로아나로 지내는 일상은 어떠셨나요? 식단, 습관, SNS 운영 등 뭐든지 괜찮습니다

A. 저는 원래 섭식장애를 겪어서 크게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항상 뭘 먹으면 구토를 했습니다. 식욕을 못 이겨서 폭식을 하고 좌절하며 구토하기도 했습니다. 식단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평소 어머니께서 차려준 밥이나, 급식을 먹고 구토를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나 어느 순간,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을 미친 듯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먹고 다 토해냈습니다. 흔히 말하는 ‘먹토(먹고 토하기)’증상입니다.

 Sns에는 제 몸무게 인증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거의 매일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주로 “마르고 싶다/ 말라야 한다/ 말라가는 것이 행복하다 / 내 살이 너무 역겹다, 더럽다” 이런 트윗들을 올렸습니다. 확실한 것은 프로아나 활동을 하면서 제 몸을 학대했습니다. 프로아나 활동을 하면서 저는 3Xkg까지 감량했고 행복해했습니다. 그때 목표가 20kg대로 진입하는 것일 정도였습니다. 말라가는 것에 집착했고 저를 응원했습니다. 저를 보며 자신도 노력해야겠다는 트윗을 보면서 ‘나도 더 참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시간 이상 공복을 버틴 분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Q. 프로아나 생활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을 여쭤도 될까요?

A. 프로아나 생활을 하면서는 사실 힘든 것을 느끼지 못했어요. 오히려 말라간다는 것에 행복했던 거 같아요. 이해받으면서 내가 했던 행동들이 정당화되는 것 같아 행복했어요. 그 당시에 힘든 점은 없었던 거 같아요.


Q. 프로아나 계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 가야 할 거 같습니다. 동질감 때문에 계정을 만드셨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프로아나들끼리 정보교환이 활발한가요?

A. 활발합니다. 토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 독려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한 운동이나 공복 시간, 몸무게, 마른 정도를 전시하기도 합니다. 물론 주를 이루는 것은 살에 대한 혐오감, 마름에 대한 선호,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는 트윗입니다. 하지만 그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동질감을 충분히 느끼고 교류가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Q. 그런 계정이 많나요? 그러니까 유의미한 정보를 올리는 계정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거죠?

A. 네. 자신들의 목표를 전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개말라*가 되어서 새 학기에 병약 코스프레할 거야”, “뼈말라**가 되어서 사람들 걱정받으면서 컨셉 잡을 거야” 이렇게요.


*개말라: 강조하는 접두사 개와 말랐다의 합성어. 아주 마른 상태를 의미.

**뼈말라: 개말라보다 더 마른 상태. 뼈가 보이는 상태의 마름


Q. 지금 말씀해주신 새 학기 등의 내용은 10대 학생들이 얘기할 만한 주제 같은데요. 프로아나 계정들의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요?

A. 10대에서 20대를 많이 봤습니다. 성인 중에도 있습니다. 대학생이나 사회인들도 있습니다.


Q. 프로아나 계정에 대해 추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이 분들이 주로 공유하는 ‘자극짤’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A. 마른 연예인 분들이랑 이런 것*이나 아니면 일반인 사진, 정말 마른 몸무게, 200시간 이상의 공복 인증 사진 등이 있습니다


*연예인, 일반인, SNS 셀럽들의 마른 몸매 사진들이 모여 있는 계정들. 후자의 경우 ‘개말라 사진계’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Q. 그럼 계정들끼리 프로아나로서 지켜야 하는 문화가 있을까요?

A. 음식 관련 사진을 리트윗*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어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리트윗 하는 순간 팔로우를 취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음식도 식욕 억제하는 ‘음식짤’만 가능하다든지.


*리트윗: 트위터 내 공유 기능


Q. ‘탈프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탈프아가 힘든 이유는 아마 두려워서 인 거 같아요. 보통 비만이었던 분들이 많이 와요. 살집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너무 극명하고 그걸 느꼈기 때문에 탈프아가 무서운 거 같아요. 다시 그런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려운 거죠. 그리고 트위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느껴져요. ‘잘못된 것은 알지만 다들 그러니까’, ‘다들 마른 것을 좋아하니까’ 하면서 정당화시키는 것이죠.

탈프아는 정말 힘든 것 같아요. 프로아나 계정을 통해 행동을 옹호하고, 마른 것을 선망하고, 마르면서 주변의 인식이 변하는 걸 본 이상 벗어나기 힘들어요. 저는 페미니즘을 알고 여성들이 얼마나 외모에 제약을 받는지 이해한다면 그나마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프로아나 전부터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여성운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도 탈프아 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아마 인식의 차이를 느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저는 페미니스트 유튜버들을 보고서 사회와 저의 문제를 깨달았어요.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보면서 ‘마르지 않아도 멋지고 당당하며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생각을 하니까 섭식장애를 이겨내고 싶어 졌어요. 저도 사실 완벽하게 섭식장애를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먹으면 토하고 싶고 역겹고 무섭거든요. 프로아나 분들 중에서 자존감 낮고 자기혐오가 심한 분들이 많아요. 이런 분들이 자기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회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억압받았는지 알면 좋을 거 같아요. 프로아나들이 ‘나의 만족을 위해서 살을 빼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해요. 의외로 프로아나 중에서 이성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많아요. 주변 인식 때문인 거예요. 살찐 사람을 얕잡아보고 비난하고 눈치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특히 여성이면 더더욱.


Q. 10대 여성들에게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한창 연예인을 좋아할 때이기도 하고.

A. 맞아요. 연예인을 보면서 저렇게 예쁘고 마른 사람도 굶는데 나도 굶어야지 이런 말 많이 해요.


Q. 그러면 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프로아나가 된 것에 대해 미디어가 영향을 미친 거 같으세요?

A. 네. 아주 많이요. 미친 듯이. 미디어에 나오는 멋지고 대우받는 여성들은 모두 말랐어요. 다양한 얼굴과 신체가 존재하는 남자들에 비해 여성들의 모습은 한정적이죠. 마른 여성을 선호하고 뚱뚱한 여성은 조롱이나 유머의 대상이 돼요. 이런 부분의 영향이 정말 크게 작용되는 것 같아요. 이런 마름에 대한 은근한 선호가 결국 프로아나라는 비극을 초래한 거 같아요.


Q. 프로아나 계정들도 다른 여성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시나요?

A. 네. 프로아나 유입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프로아나라는 단어가 뜨기 시작하면서 였어요. 저도 그때쯤 발을 들였어요. 그러면서 프로아나에 대한 논쟁도 시작됐어요. 프로아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죠. 이때 프로아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프로아나가 되면, 자극을 받고 그 계정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프로아나가 아니더라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요. 트윗에 공감 가는 내용이 많거든요. 살찐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라야 한다’라고 주장해요. 여기에 공감한다면 한 번쯤 프로아나에 대해 생각해보겠죠. 그러면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순간 프로아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유입이 돼요. 유입되면 나가기 힘들고요.


인터뷰 끝에 인터뷰이는 이런 당부를 남겼다. 


"프로아나분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해주세요. 정말 상처를 많이 받고 아파서, 다른 방법으로 자존감을 올리는데 몸무게를 택한 사람들이 많아요. 몸무게는 조절이 가능한 영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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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프로아나'라는 문제는 외모지상주의, 미디어의 마름선망, 비만혐오 등 복합적 문제의 결과이다. 어린 여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프로아나가 개인의 욕심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비난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그들이 프로아나를 선택했다고 볼 수 없다. 혹여 그들이 SNS를 통해 다시 왜곡된 생각을 생산할지라도 본질적인 문제는 그들 자신이 아니다. 프로아나의 '재생산' 기능보다 그들 존재가 어디서 출발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 프로아나 내부에서는 이런 식의 인터뷰나 취재에 응하지 말자는 게 주류 의견이다. 프로아나들은 스스로 음지에 있기를 선택한다. 앞선 인터뷰와 같이 그들 또한 그들의 잘못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인터뷰를 근 1년 간 폴더 깊숙이 묻어뒀다. 하지만 최근에 또다시 프로아나 트윗이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며 공개를 결정했다. 프로아나의 목소리를 공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프로아나의 목소리로 이 문제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더 다정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 같다. 

지금은 탈프로아나에 성공한 인터뷰이분께 언제나 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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