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 숄
너는 독일의 모든 것이
너와 너의 행동에 달려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해야만 한다.
그것이 너의 책임이다.
피히테의 시 中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p144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배경은 나치가 지배하는 독일이다. 나치는 독일 내에서도 자유를 탄압하는 규범을 만들어,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처형했다. 후버 교수는 사형을 받고 피고의 마지막 진술을 쓴다. 그 진술은 이렇게 시작한다.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며 맞서 싸우는 것은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도했던 것은 조직적이 아닌 소박한 언어로써 학생들을 깨우치려는 것이었다. (중략) 나는 칸트가 말한 도덕적 정언 명법에 따라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내 행동의 주관적인 원칙이 일반적인 법칙으로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고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그러면 다시 우리 정신적의 삶에 질서와 확실성과 신뢰가 찾아올 것이다'라는 대답이 가능하리라.
후버 교수의 진술서는 최초 소개한 피히테의 시를 인용하며 마무리된다. 피히테는 칸트의 이론을 받아 발전시킨 사람으로 '자유의 자아(Freiheits Ich)'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후버 교수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따라 행위가 선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피히테의 시처럼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나치는 저항하거나 대항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국민이더라도 억압하고 사형시켰다. 후버 교수가 가르쳤던 학생들도 사형을 당했고, 후버 교수도 1943년 7월 13일 처형된다.
사형을 당한 뮌헨 대학교 학생들인 한스 숄, 죠피 숄이 만든 조직의 이름이다.
꽃은 연약하고 힘이 없다. 백장미는 색상마저도 강렬하지 않다. 그 이름처럼 학생들은 전쟁에 반대하고, 유대인 학살에 반대하는 글을 써서 전단지를 뿌렸을 뿐이다. 그들의 저항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가벼웠다. 그렇기에 아름다웠고 무력했으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모금하고, 선언문을 쓰고, 전단을 뿌리고, 또 잡혀가고 사형당하고. 하지만 피고 또 피어났다.
그들의 선언문 일부이다.
비열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무책임한 정권으로 하여금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계속 집권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은 문화국민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 백장미로부터
p72
새벽이 오기를 바라며 밤을 새워 토론하며 전단을 만들 때 읽었던 나누어 읽었던 1800년대의 고트프리트 켈러의 시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도적이 나온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는 돈지갑을 쫓는다
그리고 그는 더 중요한 것을 보았다.
그는 헛된 싸움을
찢어진 깃발을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았다.
(중략)
언젠가 이 위기가
얼음벽이 녹아내리듯 천천히 사라지면
사람들은 마치 어두운 죽음에 대해 얘기하듯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거친 들판 위에
허수아비를 세운다
슬픔 속에서 기쁨을 불태우기 위해
그리고 다시 오는 새벽의 빛을 위해.
대학생이었던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을 했다.
그것은 백장미처럼 순결하고 마음과
장미가시처럼 날카로운 행동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에서 백장미가 피고 또 피었다.
<책의 미로> 서른다섯 번째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