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종이 동물 같은 단편들

종이 동물원, 켄 리우

by 설애

켄 리우는 외계인이다. 인간이라면 이런 상상력으로 이런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켄 리우는 외계인이 아니다.


1976년 중국 서북부에서 태어나 11살에 미국으로 이민했다. 하버드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한 다음, 하버드 법학 전문 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했다. 대학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하여 2002년 SF소설로 소설가가 된다.


그러니까, 소설은 대학부터 쓰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종이 동물원은 2012년 작품이다. 지금은 낮에는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고 한다. 다채로운 이력만큼, 그의 이력이 모두 녹아나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여 창조해 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창조해 낸 세계가 독특하고 깊고 넓어서. 어쩌면 인간이 아닌가 했던 것이다.




[종이 동물원]은 총 14편의 단편이 있다.

이 단편을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주제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좀 뜯어서 본다.


중국인이 미국으로 이민했다는 정체성을 담은 단편은 [종이 동물원], [즐거운 사냥을 하길], [파자점술사],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이다. [종이 동물원]은 이방인인 엄마가 만들어준 움직이는 종이 동물의 세계가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묘사했다. 이방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엄마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를 잘 보여주었다. 다른 단편도 한자를 이용하거나, 중국의 문화를 담은 수준을 넘어, 역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통찰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그래머의 경험이 담겼다고 생각되는 단편은 [천생연분], [시뮬라크럼], [레귤러]이다. 인공지능이 침투한 현실이나,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단편들이다. [레귤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장치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기계장치, 그리고 타인을 이용하기 위한 기계장치에 대해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묶여있어서 심상치 않은 미래 현실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머지는 어디서 출발했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우주적 상상력을 담은 단편이다. 특히, [상태변화]는 내 영혼은 어떤 물성인지를 고민해 보게 하는 것으로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과 같은 단편은 독특한 살아있는 책의 세계였다.




대표작이라고 하는 [종이 동물원]은 민음사 편집자님이 '눈물버튼'이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남은 자의 눈물보다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즐거운 사냥을 하길]이 훨씬 인상 깊었다.


귀신이나 사람을 홀리는 여우를 쫓아내던 요괴 사냥꾼인 량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차 기관사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쫓기던 여우이지만, 살아남은 염은 여우로 변신하지 못하고 사람을 홀리며 살아남는다. 량과 염은 모두, 과거를 버리고 현재를 받아들이며 살아남는 쪽이다. 과거에는 량의 아버지와 염의 어머니가 남겨져있다. 그리고 염은, 타인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몸이 기계로 바뀌는 것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염이 원한 것은 여우였던 자신이고, 여우로 다시 살아난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내 눈앞에서 염은 마치 은빛 종이접기 구조물처럼 접혔다가 펼쳐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태곳적의 전설에 나오는 존재처럼 아름답고 소름 끼치는 크롬 여우가 내 앞에 서 있었다.
p109




섬세하게 접힌 종이호랑이가 움직이듯

금속의 여우가 사냥을 나가듯

이 책은 움직이며, 미지의 세계로 끌고 간다


소설은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놓아진 징검다리'라고 생각한다.

더하여 중국의 역사와 이민의 슬픔, 우주로의 전진과 이미 파괴된 세계가 담겨있는 이 책은 '다른 세계에서 현실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이기도 했다.



<책의 미로> 서른네 번째 책,

[종이 동물원]을 읽어 보시길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