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천선란
파랑, 파란 하늘
파랑, 블루, 우울
파랑, 청량감
파랑, 블루프린트, 미래
파랑, 파란 바다, 그 위로 밀려드는 파도
그러나 역시, 콜리가 보았던 파란 하늘의 파랑, 그리고 그 느리게 멀어지는 감각.
<천 개의 파랑>은 거리를 청소하는 로봇 청소부, 편의점을 지키는 로봇과 말을 타고 달리는 로봇 기수가 있는 가까운 미래 세상이다. 정확하게는 이 로봇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즉 인간의 신체구조를 닮은 로봇이다. 인간을 닮았다는 것은 인간에게 그만큼 친숙하게 침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그만큼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고등학생 연재는 편의점 알바를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빼앗기고, 그보다 먼저 연재의 외할머니는 은행원 자리를 내어준다. 인간보다 더 정확하게 그리고 짜증 내지 않고 쉬지 않고 일하는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고 인간을 돕는다.
거머리 형태의 인명구조에 최적화된 로봇 다르파는 건물 붕괴에서 3일간 깔려있었던 연재의 엄마인 보경을 찾아내고 3%의 생존 확률이 20초 뒤에 0%가 된다고 분석한다. 낮은 3%의 생존 확률과 88%의 높은 구조 붕괴의 위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소방관은 보경을 구하러 간다. 보경의 3%는 소방관에게는 살아있다는 신호였던 것이다. 구조된 후 예측대로 0%의 확률로 떨어진 보경은, 인공호흡으로 살아난다. 0%에서 100%로 바뀌는 확률은 사람의 생명이 확률로 치환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느끼는 것은 고통을 느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는 인간이다. 콜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다. 말이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기수의 무게는 가벼워야 하고, 낙마의 위험에도 잘 견뎌야 한다. 그러니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로 바뀌는 것은 꽤 인간적인 선택이다. 콜리의 첫 등장은 쇠창살에 갇힌 장면이다.
기수방은 성인 한 명이 웅크려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다. 누워 있을 수도, 발을 뻗고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비좁다. 하지만 이 방을 쓰는 기수는 누워 있을 이유도, 발을 뻗고 앉을 이유도 없다. 신장 150센티미터, 몸무게 40킬로그램의 기수는 창문 하나 없는 사각형의 방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시멘트로 이루어진 공간은 실제 넓이보다 더 작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C-27은 방에서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가장 적절한 문장이었다.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우두커니 앉아 오래도록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소녀를
<천 개의 파랑>, 첫 단락
콜리(C-27)는 잘 못 시작된 로봇이다. 그 시작은 한 연구생이 학습 휴머노이드를 위해 개발하던 칩을 흘렸고, 그 칩이 다른 상자로 넣어졌고, 그래서 콜리에게 이 칩이 왔다. 인간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실수로 콜리가 탄생한다. 콜리가 알고 있는 단어는 천 개다. 그래서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엉뚱하게 단어를 조합하고, 엉뚱한 문장을 내뱉는다. 경마를 하는 말 투데이를 타는 기수인 콜리가 말을 관리하는 민주에게 달리는 이유를 묻는다. "재미있으니까." 하는 답변에 콜리는 다시 묻는다.
"누가요? 말이요?"
"아니, 인간이."
"인간이 재미있는데 왜 말이 달리나요?
그럼 인간이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엉뚱하지만 맞는 말에, 웃음이 터진다. 콜리는 달려야 하는 말 위에 있는 자신을 이렇게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투데이에게 콜리는 채찍질을 하며 점점 빨리 달려 결국 시속 100킬로미터를 경신하고 1등을 한다. 하지만 콜리는 투데이가 뛰면서 행복하지 않고 아프다고 느낀다. 투데이가 자신을 무겁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콜리는 스스로 낙마하기로 선택한다. 투데이를 위해서. 투데이가 가볍게 달릴 수 있도록. 고통을 느끼지 않아 두려움 없이 떨어지는 자신의 존재에 감사하며.
콜리는 낙하한다.
파란 하늘의 파랑, 그리고 그 느리게 멀어지는 감각.
부서진 콜리를 연재가 데려온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C-27을 보고 브로콜리를 떠올린 연재가 콜리라고 이름 붙였다. 연재가 콜리를 데려오기 위해 준 것은 자신이 편의점에서 받은 마지막 월급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불법거래다. 연재는 이렇게 억지로 데려온 콜리를 분해해서 떨어진 원인을 찾아본다. 낙마가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낸다. 콜리를 고치며, 낙하의 이유를 이해하면서 연재는 조금씩 변한다.
부서진 콜리를 연재가 고치고, 연재 옆에 지수가 부품을 조달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연재의 언니 은혜와 엄마 보경이 하늘의 구름처럼 조금씩 모양과 색깔을 바꾼다. 실수로 콜리가 탄생한 것처럼, 콜리가 고쳐지듯 그들도 조금씩 고쳐진다.
투데이는 경기 중 연골이 다 닳아, 경주마로서 생명이 다한다. 투데이는, 안락사될 것이다. 투데이는 아직도 뛰는 것이 행복하다. 투데이는 뛰는 것 밖에 모른다. 그런 투데이를 가장 느리게 뛰는 연습을 시킨다. 투데이의 마지막 경주. 그 경주를 위해 모든 인물들이 투자한다. 아니 응원한다. 그리고 고쳐진 콜리는 다시 투데이를 위해 낙하한다. 투데이의 시속 30킬로미터의 느린 행복을 위해서.
다시 콜리는 낙하한다.
파란 하늘의 파랑, 그리고 그 느리게 멀어지는 감각.
가벼워진 투데이는 천천히 달린다.
파란 하늘 아래, 바람을 느끼며.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투데이는 왜 투데이인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결국, 투데이,
지금 이 순간이므로라고 생각했다.
투데이의 느린 행복은 빠른 승리보다 강렬하다.
파랑, 파랑, 파랑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책
<책의 미로> 서른세 번째 책
[천 개의 파랑]을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