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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Mar 05. 2021

폭발적인 감칠맛의 향연, 어란 앤쵸비 파스타


Burro, Alici e Bottarga

버터와 앤쵸비, 보타르가를 때려넣은 초호화+초 고칼로리 파스타. 이 멋진 비주얼은 로마의 명점 로숄리(인스타그램 @roscioliroma), 그리고 부산 오스테리아 어부(인스타그램 @osteria.aboo)의 Burro e Acciughe로부터 영감을 받아, 뜨거운 팬심으로 오마주하였음을 밝힌다. 24필렛짜리 엘 카프리쵸 칸타브리아 앤쵸비 한 통을 몽땅 사용하여 만든 이 파스타는, 한 접시 재료비만 대략 5만원 상당. 그러나 시중에 판매되는 한심한 만듦새의 파스타들 가격을 생각하면,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여러모로 남는 장사.


버터 한 덩이와 앤쵸비 한무더기를 약불에 천천히 녹여내고, 고운 체에 걸러 아름다운 진갈색의 소스를 먼저 만들어 둔다. 소스가 완성되면 키타라 면을 알 덴테로 삶고, 앤쵸비 오일에 버터 약간과 앤쵸비 필렛 두세점을 소프리또해 면수와 함께 중불에서 만테까레한다. 면에 소스가 충분히 흡착되면, 만들어둔 소스를 몽땅 붓고 불을 끈 뒤 2차 만테까레하면 완성. 되직한 농도의 소스는 그야말로 콜라투라 뺨칠만한 감칠맛의 엑기스. 거기에 사르데냐산 보타르가를 아낌 없이 갈아 올리고, 앤쵸비 필렛을 올려 마무리한다.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진한 감칠맛과 폭발적인 숙성취의 향연. 들어간 재료를 생각하면 맛이 없기가 더 힘든 조합이지만, 그래도 익힘과 농도, 전반적인 완성도에 만전을 기하여 만들었다. 파스타 소스에 버터는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편이다. 맛과 향의 쓸데없는 중첩을 지양하고, 몇 가지 핵심적인 재료들의 대위법적 하모니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파스타에는 좋은 버터를 아낌 없이 잔뜩 들이부어도 좋다. 약불에 섬세하게 녹인 버터 소스가 마치 콘크리트 속 철근처럼 전체의 구조감을 꽉 잡아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미학에는 다소 반하는 조리법이지만, 한 번 맛보고 나면 미학 따위는 잠시 접어두게 된다. 이 레시피에는 어란 대신 레몬즙과 레몬 제스트, 혹은 이탤리언 파슬리도 아주 잘 어울린다. 사실 냉장고 속 오래 묵은 식재료들을 좀 털어내고자 만들게 되었는데, 앞으로 다양하게 변주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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