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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May 02. 2024

아이돌 디스토피아

지난주엔, 공동체의 안녕이나 연대, 사회의 윤리와 정치, 소외된 사람들의 복지와 후생, 사방에 만연한 타인의 고통보다 무슨 기획사 경영진끼리 밥그릇 싸움하는 것이 언론과 대중에겐 훨씬 큰 관심사였다. 그 와중에 방구석 평론가 행세하는 사람들이 대거 나타나 뉴진스의 특별함과 민희진의 천재성을 칭송하며 자신의 취향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감정이입하고 공감하며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단언컨대, 모두 다 나사 빠진 소리들이다.


내가 진정 싫어하는 것을 몇 가지 꼽자면 저질 유튜브, 도박, 증권 시장, 정치인, 개장수, 상담가, 힐링 서적, 동기부여 연설가, 사설 렉카, 가상자산 중독자 등등이 있는데, 소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뭉뚱그려 문화예술이라고 하는데 문화라는 것과 예술은 사실 별 관계가 없다. 그리고 아이돌 음악과 그 제반 문화는 당연히 예술이 아니다. 그건 그냥 소비재이기 때문에 특별한 오리지널리티나 미학적 가치를 갖고 있지 않으며, 대단한 예술가적 기질이나 천재성이 요구되는 창작 분야도 아니다. 유행과 추세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화라고 하는데,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짜파게티가 잘 나가면 경쟁사에서 짜짜로니를 만들고, 그럼 곧이어 사천 짜파게티가 나오는 식이다. 그냥 많은 사람들의 밥줄이 뒤엉킨 자본집약적 소비재 산업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짜장 라면 산업은 괜찮고 엔터테인먼트는 혐오스러운 까닭이라면, 요즘의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은 민중을 하향평준화해 지성이나 담론의 배양을 틀어막아 통치받기 좋은 예속적 존재로 만들고, 비판 능력을 없애며 수동적이고 천박한 욕망을 주입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따위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모두가 획일적인 미를 추구하고, 똑같은 모습의 성공을 욕망하게 된다. 여기서 그 미나 성공이라는 것의 구체적 상이 사람마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 문제다. 누구는 장원영 좋아하고 누구는 카리나 좋아한다고 해서 다원적인 것이 아니다. 여자 아이돌은 모두가 어리고 말랐으며 소아성애적 코드를 공유한다. 그 비주얼을 소비하여 얻게 되는 건 심미적 고양 같은 게 아니라 어떤 일그러진 욕망의 강화다.


평균치의 요즘 청년에게 성공에 대해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강남 아파트, 고급 외제차, 명품 시계와 가방, 보석과 와인과 미술품,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파인다이닝을 즐기며 오성급 호텔로 여행을 다니는 삶 따위를 이야기할 것이며, 그 수단은 코인이나 주식, 부동산 따위일 것이다. 학생과 청년들이 삶을 통틀어 추구한다는 것이 고작 그런 것들이다. 슬프게도 이것은 비약이나 추측이 아니라 그냥 건조한 사실이다. 아이돌 음악 이상의 예술적 경험을 해보지 못한, 유튜브 이상의 심미적 고양감을 느껴보지 못한 평균의 삶이 추구하는 성공이란 실로 획일적이고 자폐적이다. 그리고 그 미학적 기저는 결국 그렇게 못 사는 삶들에 대한 혐오다. 노동 혐오, 여성 혐오, 가난 혐오, 약자 혐오, 그리고 반지성주의. 그 썩어빠진 기저가 그들의 윤리가 되고 정치가 되어 이 사회를 구성한다. 변태 같은 아이돌 직캠이나 돌려보며 배달 노동자를 딸배라 부르고 멸시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못난 삶들이 이 공동체의 주류 정신이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사회는 민주고 자유고 나발이고 그냥 지옥이다.  현대 사회는 자본과 기술로 인간을 그렇게 구성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그런 지 꽤 되었고, 아이돌 산업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같은 이유로 아이돌 앰배서더 앞세워 장사하는 브랜드는 내 마음 속에서 더 이상 명품이 아니다. 그냥 천박한 자본주의 사치품일 뿐이다. 아이돌을 번역하면 우상인데, 명품을 광고하고 사치를 부추기는 우상을 숭배하는 아이들의 사회는 한마디로 물신 숭배가 주류 종교가 된 지옥 같은 세상이다. 배교자는 찐따, 찌질이, 도태자, 휴먼시아 거지 따위의 모멸적이고 야만적인 말을 들으며 주류에서 배척되고, 학생들은 톰브라운과 구찌를 사기 위해 엄마 지갑에 손을 댈 것이다. 적어도 듀스나 HOT 시절엔 이렇지는 않았다. 이러다 보면 더 이상 사람이 공을 들여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 어떤 경지에 도달하거나 몰입과 반복을 통해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삶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옷도 가방도 신발도 음식도 술도 다 그렇게 될 것이다. 겉만 그럴싸하고 속은 텅 빈, 천박하고 오만방자한 사람과 사물들만 남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영혼조차도 공장제인 세상이 될 것이란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절대 비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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