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내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보상이었다. 그리고 서른아홉이 될 때까지 나는 직장에 많은 시간을 부여했고, 나를 좀 더 가치 있게 하기 위해 자기 계발에도 부지런을 떨었다.
서른아홉, 이 나이가 문제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더 이상의 소개팅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고(지극히 평범 또는 평범 이하의 집안형편으로 엄마가 주선해 주는 선자리도 없었다), 집안에서는 결혼을 하라고 계속 압박만 주었다.
사람들은 정당한 이유로 소리를 높여도 "히스테리"니, "혼자 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며 뒤에서 떠들어 대는 것 같았고, 언제부터인가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직장 동료들의 "주말에 뭐 했어요?"라는 질문을 못 받은 것 같다. (물론 주말 내내 집에서 혼자 지내며, 말 한마디 안 했던 적도, 가족 이외엔 카톡도 안온적도 많았다)
이렇게 혼자직장생활만 하고, 퇴직하고도 혼자겠지 라는 생각이 활화산이 되어, 나는 도저히 연고 하나 없는 지역의 사무실 안에서 매일 15시간 이상을 보내는 그런 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로 파견근무를 가버렸다.
9시 출근, 6시 퇴근, 그동안 꿈꾸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었고 1년간의 자유를 찾은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빵집순례, 맛집탐방은 물론이고, 미술관도 찾고, 그동안 누릴 수 없는 시간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릴 때조차도 외로움은 그대로 임을 알았다.
아니, 오히려 서울의 화려한 불빛 속에 혼자 있는 내가 더욱 외롭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 결혼하자' 불현듯 찾아온 그 생각이 매일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로 인해 조급한 맘이 더욱더 커졌다. 나에게 주어진 서울생활은 딱 1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른아홉의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아주 나중에 혼자 외로움에 사무치더라도, '해볼 것은 다 해봤잖아'라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도록.
강남역까지 직접 찾아가서 'D'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했다.
사전에 전화로 문의했을 때는 200만 원대 상품이 있다고 했는데,
200만 원대-300만 원대-400만 원대로 비싸지는 상품중에 나이가 많아서 3번째 상품을 추천받았고(300만 원대를 결제하려 했으나, 거긴 30대 초중반이 주류라는 말에 한 단계 올라갔다..), 엄마가 금액의 반은 지원해 주겠다는 얘기에 바로 400여만 원을 결제했다.
총 10회의 만남에 400여만 원을 지불했으니, 어릴 때는 자주 했던 그 소개팅을
건당 40만 원씩 선불로 결제한 셈이다.
돈을 주고 하는 소개팅이니, 원하는 조건은 가감 없이 다 말했다.
(각 항목마다 아주 최고를 원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당시에는 요구조건이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