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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흙표범
Nov 20. 2023
10대는 피임교육, 40대는 난임고민
(부제 : 힘들고 바쁘게 살았던 삶을 잠시 내려놓기)
“요새 누구 만나는 사람 없어?”
“없어. 씨가 말랐다야. 너는 어때?”
“나도 똑같지 뭐.
그 많던 소개팅도 이젠 없어”
미혼이었고 애인도 없었던 30대 후반부터,
나와 비슷한 미혼 친구를 만날 때면
우리만의 공통화제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직장에서 누가 더 바빴는지,
몇 달 치 생활비를 털어 샀던 주식은
누구 것이 더 나락으로 갔고,
누가 더 벼락거지가 되었는지
,
배틀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이야기는
지금은 마땅한 해결책도 없지만,
결혼은 포기하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아이는 낳고 싶은데, 생물학적 나이에 대한
걱정들로
넘어오는게 일상이었다.
40대를 훌쩍 넘은 나이에 출산한 사례를
가끔 듣기도 하지만,
아직 연애 상대도 없는 우리가 그 단계까지 가기에는
아직 먼 미래이고,
지금처럼 이렇게 회사에서 밥 먹듯이 야근을 하다가는
내 체력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을
몇 시간 동안의 수다로 달랜 적도 많았다.
예능에 나온 여자 연예인들이
난자를
냉동
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평범한 소시민이 그들처럼 하기란 쉽지 않다.
난자 냉동을 하려면 과배란 주사도 맞고,
난자채취도 해야 하는데,
평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내 시간을 저당 잡힌 월급쟁이가
난자 냉동
시술을 사유로 직장에 잦은 휴가를 쓰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내의 소문과 온전히 자부담해야 하는 비용 역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연애부터 출발하는 긴 레이스를 시작하기 위해
나름 적극적으로 상대를 찾기도 하고,
그게 지치면 누군가가 나타나주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에코와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불규칙하고 짧아진 생리주기가 걱정스러워서
결혼식 전에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서였다.
TV프로그램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본인의 난소나이가 몇 살’이라며 얘기하는
난소기능검사(AMH)도 받았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AMH(Anti-Mullerian Hormone,항뮬러리안호르몬)수치로
내가 가지고 있는 난자의 수를 예측할 수 있는데
가임기 초기에는 AMH수치가 높고, 폐경에 가까울수록 0에 수렴한다고 하는데,
나는 거의 0에 가까웠다.
실제 나이가 만 40살인데,
난소나이는 그보다도
훨씬
더 많다니...
의사 선생님은 난자의 수는 타고나는 것이기에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동안 너무 바쁘고 피곤한 삶을 살았던 지난날이 후회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순진했던 10대 때는
생리날짜가 지나고도 생리를 하지 않으면 ‘임신인가?’하며,
지난주에 목욕탕에 가서 뭐에 접촉되었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학교 일진 중 누구는 중절수술을 받았네, 사후피임약을 먹었네,
라는 각종 소문에 놀라며
임신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난임 걱정을 하고 있다니.
결혼은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1년 임시직이기는 하지만) 가정주부가 되었다.
사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그저 내 마음이 헛헛했고, 평소처럼 야근하고 바쁘게 지내다가 아무 성과도 없다면,
아주 나중에는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냐고.
그래서, 내 의지대로 할 수는 없을지라도,
노력은 해보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회사에는 난임휴직제도가 있었고,
커리어와 개인적인 행복을 고민하다가
직장을 잠시 쉬기로 했다.
먼 나중에 스스로를 탓하고,
각종 스트레스를 탓하고,
직장생활을 탓하게 될까 봐.
사실, 돈 걱정 없는 사모님이 아니라
결혼 전 나 혼자 살 때보다 더 궁상맞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생활을 감사하며 지내는 중이다.
월급과 맞바꾼 대가로
알람소리 없이 아침에 잠을 깨고,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나 또는 가족을 위해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다니.
역시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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