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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흙표범 Dec 04. 2023

신혼 1년, 결국 각방을 쓴다

(부제 : 코골이 푸)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나 잠꼬대가 심하대.

그래서 수면어플 깔아서 들어봤는데 너무 심하긴 하더라.

너도 어플 깔고 한번 확인해 봐"


"에이, 저는 잘 때 조용히 자요"


"과연... 그럴까?"


혼자 사는 사람들은 보통 본인의 잠버릇을 알 수 없다. 잠꼬대가 심한지, 코를 고는지.

결혼 전 미혼의 직장동료들끼리 잠버릇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한 동료는 오랜만에 엄마랑 한방에서 자면서,

자기가 잠꼬대를 심하게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수면어플로 본인의 잠꼬대 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들려주기까지 했다.

우리 같은 싱글들은 옆에서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잠버릇을 모른다며,

어플로 확인해 보라는 말도 몇 번을 강조했다.


그때 나는 정말로 내가 아주 조용히 자는 줄 알았다.

(혼자 자취한 세월이 십 년은 넘었는데,

 무슨 근자감이었는지...)

그래서 그런 어플은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결혼 초기, 새벽에 가끔 눈을 떠보면 에코는 이불을 덮지 않고 자고 있었다.

그래서 '열이 많은 체질이라 이불 덮는 걸 싫어하는구나'라고 혼자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번에는 침대 머리맡에서

귀마개 몇 개를 발견했다.

이게 왜 있나 싶어서 에코에게 물었다.


"귀마개, 이거 네꺼야?"

"응. 새벽에 필요해서"

"왜? 층간소음이 있나?"

"아니, 네가 새벽에 코를 골아. 그래서 귀마개를 안 쓸 수가 없어"

"..............."


내가 코를 곤다니...

그것도 너무 심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니...

처음에는 부정했다.

에코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걸 거라고.

하지만, 나는 에코가 새벽에 녹음한 나의 코골이

소리를 듣고 나서, 에코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드르렁~드르렁~ 푸우"까지 하는 장단에 내 별명은

 '코골이 푸'가 되었다.


에코가 이불을 덮지 않고 잤던 것은,

내가 이불을 돌돌 말고 자는 습관 때문에 춥게 덜덜 떨고 자는 것이었다.

결혼 후 점점 살이 찌면서,

퐁당퐁당이 아니라 매일마다 코를 골고,

지하철 소리에 버금가게 코골이 소리도 커지더니,

결국, 귀마개를 껴도 뚫고 들어오는 코골이 소리에

에코는 보름 넘게 잠을 못 자서 대상포진까지 걸려 버렸다.


사실, 처음에는 몸에 난 수포 같은 것이 대상포진인 줄도 몰랐다.

왼쪽 윗 가슴부위에 뭐가 나길래 후시딘 연고를 바르며

며칠을 지냈고,

몸통을 관통한 것처럼 등 쪽  똑같은 부위에

수포가 생겼길래 피부병인 줄 알고 병원을 갔더니...

대상포진이었다.

에코는 보름 넘게 잠을 못 자니 면역력이 떨어져 버렸고, 

체력은 자신 있다던 마흔 살의 꽃중년도 어쩔 도리가 없었나 보다.


결국 우리는 각방생활을 시작했다.



남편 코골이 소리를 불평하는 사람들은 종종 봤어도,

아내 코골이가 심해 각방을 쓴다는 얘기는 나도 처음이다.

부부는 한침대에서 한 이불 덮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나의 귀책사유로 인해, 더 이상 고집할 수 없었다.


결혼이란,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인가 보다.

(철석같이 믿었던... )

백설공주같이 조용히 자는 줄 착각했던 나의 실상은

코 골고, 이 갈고, 이불까지 마는 총체적 난국이었고,


극한의 레벨에서도 화 한번 안 내고

조용히 귀마개를 끼며 일년을 버텼던 에코는

생각보다 더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P.S.

각방 한 달 차,

에코가 게임 유튜브를 본다...

1년 만에 생긴 밤시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문간방이자 옷방 구석 생활을 무척 즐기는 것 같다.


좀 더 지켜보다가,

자러 들어갈 때 핸드폰을 압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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