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내 속을 남편이 어찌 알아요??
어쩌다 보니 10년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부부 상담을 해 주고 있다. 국가 자격증도 민간 자격증도 없지만 수수료도 없다. 커피를 마시다가도 점심을 먹다가도 시간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가능한 매력 터지는 상담이다.
결혼 후 바로 해외로 떠나는 바람에 한국 엄마들의 구구절절 사연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귀국과 더불어 비공시적인 역할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엄마들에게 얘기를 듣다 보면 대부분 남편과는 데면데면이지만 아이와는 애정과 관심으로 넘쳐났다. 누구나 사랑해서 한 결혼이지만, 설레임과 두군거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부인이나 남편을 보고 설레인다면 심장이 문제가 생긴 거니까 병원에 바로 가보세요."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장모님 따님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그런데 내가 묻고 싶다. 인간의 수명이 90세까지 연장된 시점에서 결혼 후 1-2년을 제외한 무수히 많은 세월들을 스킨쉽도 없이 섹스도 없이 사는 게 가능한가? 만일 불가능하다면 성생활을 배우자가 아닌 누구랑 한다는 말인가??
결혼 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두근거리는 설레임은 사라지고, 아이까지 생기고 나면 말 그대로 룸메이트 사이로 지내는 부부가 많다. 아이가 자칫 깰까 싶어 남편은 다른 방에서 자고 이른 출근 시간에는 조용히 나갔다 조용히 들어온다. 문제는 신생아를 키우는 시기를 지나서도 각자 생활하는 패턴이 익숙한 나머지 이 생활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고칠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부부는 다른 의미의 가족이 되어간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각자 불만이 생겨도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말해봐야 고쳐 지지도 않는데 입만 아프다는 이유로 그저 마음 속에 쌓아 두거나 가끔씩 만나는 어린이집 엄마들과 한참을 떠들어대지만 그건 정말 잠시 뿐이다. 한바탕 떠들어댔는데 가끔씩은 멍울처럼 가슴 속에 큰 바위가 느껴지며 불현듯 삶이 슬프게 느껴진다.
아! 이렇게 사는 게 맞는걸까? ....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다. 언젠가부터 남편과는 아이 문제 외에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외로운 줄 알고 있을까?? 남편은 왜 내 맘도 몰라줄까?결혼 전에는 날 위해 무엇이든 해 줄 것처럼 굴던 사람이 어쩜 이렇게 변했을까? 가끔씩은 배신감마저 몰려온다.
내가 주변 지인들에게 남편에 대한 불만을 들을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런 말 해 본적 있어?? "
"남편도 알아? "
그럼 상대방은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 아니, 말하면 머해? "
대부분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설사 시도했다 하더라도 한두번에 그치고 만 케이스였다.
아니, 남편이 독심술사도 아니고 말을 안 하면 당신 속을 어떻게 알아?
말을 안 하면 하나님도 부처님도 몰라요.
사실이다. 결혼 생활은 생판 모르던 남녀가 만나 끊임없이 알아가고 맞춰가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행복해지는 과정이다. 단기 코스가 아니라 남은 인생을 두고 지낼 장기전이다. 아무리 사이 좋은 부부여도 위기나 권태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결혼 초기에는 싸워도 잘 싸워야 한다. 싸우면서 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상대방이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고쳐야 할게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야 한다. 그렇게 잘 싸운 후에는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때 뿐이다.
나 또한 결혼 초, 3년, 5년 크게 작게 많이도 싸웠다. 한바탕 싸운 다음날 신랑은 출근하고, 나는 덩그러니 남겨져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전화로 다다다 쏘아붙였지만 문제는 정말로 서로 앙금이 남아있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어느 한 쪽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싸울수록 상처는 더 커져만 갔다.
어느날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남편도 억울할 노릇이었다. 전화가 아니라 장문의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 출근 잘 했어? 아침에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마음이 내내 무겁네.. 당신이 얼마나 날 사랑하고 노력하는지 알고 있어.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요즘엔 내가 힘든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내 상황만 생각하면서 이기적으로 굴었나봐. 별거 아닐수도 있는데 나는 이런 경우에는 자기가 많이 속상했겠다며 공감해주고 위로해 주기를 바래. 물론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말 한마디에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도 다 풀릴 거 같아. 자기라는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를거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무조건 내편 들어줄래? 내가 많이 사랑해! "
남편을 인정해주면서 평소에 고마웠던걸 잊지 않고 서두를 던져 놓고, 본격적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얘기하면 사과와 함께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다는 답장을 받을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와 다르게 감정적으로 세세하게 파악하는게 선천적으로 힘들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하나 알려줘야 한다. 또한 전화상으로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감정적으로 격해지기 때문에 통화 대신 일목요연하고 설득력 있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담아 문서화하는 방법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그게 수없이 반복되다 보면 남자들도 변한다.
자! 지금 당장 마음 속에 담아뒀던 말들을 진심을 담아 남편에게 문자든 이메일이든 보내보시길 바란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순간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