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도시, 대전.
성심당, 칼국수, 엑스포 세 단어로 설명이 가능한 도시 대전, 얼마나 할 게 없으면 타 지역 사람들에게 언젠가부터 '노잼 도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칭까지 얻게 된 이곳에서 나는 30년을 살았다.
대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직장까지 한 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는 이 곳.
나 in 대전= 내 30년 인생
누군가는 인생에서 기회는 3번씩 찾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그 기회는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대학도 서울로 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전은 그저 나에게 전부였고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평생 대전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서울이나 한국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싶지 않을을 뿐이었다.
나는 다른 지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
유년 시절,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반짝 거리는 호수에서 자전거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가로지르며 'Do re mi song'을 부르던 모습은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마을이었고, 이런 세상이 진짜 존재한다는 사실에 너무 설레이고 흥분되서 며칠동안 잠 못 이루기까지 했다. OST는 또 얼마나 더 멋진가? 그 동안 모은 돼지 저금통에 집안에 굴러다니는 동전까지 삭삭 긁어 모아 LP, CD, 테이프까지 사들였다. 영화에 대한 애정은 언젠가 저 나라에 꼭 가보고 말리라는 굳은 다짐으로 커졌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주말이면 엄마에게 천원을 받아 신나게 비디오 가게로 가곤 했다. 당시 비디오는 최고의 사치이자 즐거움이었다.
아마데우스, 가을의 전설, 포레스트 검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내 사랑 컬리수, 귀여운 여인... 영화에 몰입할수록 배경이 되는 나라들이 궁금해졌고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내 꿈은 점점 구체화되어가고 있었다.
대학 생활 내내, 공부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술자리가 더 좋았고 취기에 오고 가는 대화는 더 달콤했다. 취중진담이라 했던가. 술이 한 두잔 들어가고 가면 평소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던 말들이 술술 나왔다.
여기서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까워. 나는 나중에 전 세계를 돌며 살거야.
선배들은 대답했다.
"저 똘아이 또 시작이네."
정말이었다. 매일 같은 장소를 오고 가며 마음 속으로 되뇌였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어떻게 한국에서만 살아?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아까워. 언젠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2-3년씩 살거야.'
매번 사람들은 술기운에 떠들어대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생각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 인생인데 어떤 꿈을 꾸든 무슨 상관인가. 어렸을 때는 한 반에 대통령도 여러 명이고, 소방관도 여러 명인데 커 갈수록 꿈을 틀에 맞춰 정형화시켜 버린다. 왜 내 인생인데 내 꿈인데 남의 눈치를 봐야하지?
내 청춘은 당돌했다. 그리고 그 당돌함은 10년 후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