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치즈를 좋아해

소품집 7

by 헤비

사실 이런 질문도 무언가 성취가 있는 사람이 받는 일종의 훈장 같은 것이기에 아무도 내게 이렇게 물어봐 준 적은 없지만,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자신은 있다. 엄마다. 물론 그 존경이 어떤 태도나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아마 엄마도 내가 본인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 의아한 표정을 지으실 거라 생각한다(이 글을 보여드리지 않을 생각이니 아마 엄마의 그런 표정을 볼 일 자체가 없을 거다).


내 휴대폰에 엄마는 당연히 '엄마'라고 저장이 되어 있다. 얼마 전 우연히 고객 상담 자리에서 전화가 왔다. 휴대폰 화면이 보이게 올려둔 채로 내용을 설명중이었기에 큰 글씨로 '엄마'라고 뜬 걸 하필 고객이 봤다. 아무래도 이상했는지 상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도 그 젊은 아가씨는 잽싸게 입을 가리는 예의를 보여줬다). 난 멋쩍게 웃고 폰을 덮은 다음 최대한 프로인 척 상담을 이어갔다.


맞다. 아무래도 '엄마' 보다는 '어머니'가 어울리는 외형이긴 하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일 뿐 결코 '어머니'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훨씬 더 흘러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도 이 사실은 그대로다. 난 신이 어디에나 있다고 믿는 기독교인이지만, 신이 못 가는 곳이 있다고 하면 '엄마'를 보내지 '어머니'를 보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고객도 시간이 꽤 흐르면 그 사실을 알게 될 거다.


엄마가 엄청나게 특별하거나 뛰어나신 분인가? 엄마는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시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실 때까지 봉양하셨고(심지어 할머니는 10년 가까이 치매를 앓으셨다), 그 사이 홀로 계시던 외할머니도 집 근처 요양원으로 모시고 와서 거의 매일 보살피셨고, 자식 둘을 무사히 키워내셨고(하나가 아직 철없이 살고는 있지만 동생이 오빠의 철없음을 잘 커버하고 있다), 보험설계사로 돈을 벌어 가장 노릇도 해야 했고, 지금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신다. 쓰고보니 나라면 저렇게 못살지 싶은 삶인데, 매일 저녁 성경보고 기도하시고, 틈틈이 다육식물이며 온갖 나무들 식집사 하시는 걸로 하루하루를 잘 버텨내고 계신다.


그런데 서글프게도 우리네 엄마들의 삶에는 여전히 이런 구석들이 남아있기에 이 이유들로 내 엄마만 딱히 특별하거나 존경할만하다라고 생각하긴 어렵지 않나 싶다. 내가 엄마를 존경하는 데는 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난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가고 싶었던 학과에 진학하는 건 반대가 심했고, 부모님이나 주변에서는 성적에 맞춰 안정적인 과를 가길 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잘 적응해서 무난하게 세월을 보냈어도 됐는데, 그땐 그게 날 망치는 일이라 생각했다. 뿔이나서 아무 거나 들이받고 싶었던 시절, 날 꺾은 건 엄마의 말 한 마디였다.


"난 아들이 대학에 가서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걸 경험봤으면 좋겠어."


본인께서 고졸이라 대학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지금껏 살면서 여러 일에 꽤나 고집을 꺾지 않고 살아왔는데, 아마 그렇게 맥없이 물러나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다. 그렇다. 난 엄마에게 완벽하게 패배했기에 엄마를 존경한다. 사람의 말이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와 박힐 수 있다는 걸 난 그때 처음 알았다.


막상 가보니 캠퍼스엔 낭만이랄 게 없었지만, (있어봐야 가끔 술 마시고 중앙정원에 있는 동상에 올라타는 애들 밖에 없었다) 엄마의 말 한 마디는 내게 진짜 큰 힘이 됐다. 이후로도 그랬다. 별 시덥잖은 핑계로 헤매고 다니는 아들을 보면서도 엄마는 늘 묵묵히 내 편이 되어주셨고,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하셨다. 난 여전히 못난 아들인게 죄송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몇 년 전인가? 내가 엄마에게 죄송스럽네 하며 떠들기에는 뭐랄까 그 첫단추부터 단단히 잘못 끼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사소하다면 무척 사소한 사건이었다.


무슨 일로 인한 출타였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부모님의 표정이 썩 좋지가 않았다. 눈칫밥을 많이 먹고 살면 이때는 피하는 게 맞는지, 그래도 끼어들어서 중재를 해야 하는 게 맞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마련이라 난 문을 쾅 닫고 들어가시는 엄마의 뒤를 따라갔다.


"무슨 일이에요?"

엄마는 됐다며 침대에 모로 드러누우셨다.

"또 뭐냐고."

말하기 싫다는 엄마의 어깨를 한참 주물러드린 끝에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돈까스 먹겠다는데 굳이 국밥을 먹으라잖아. 내가 먹겠다는데!"


고향이 바닷가인 내 아버지의 식성은 무척이나 편향적이어서 무조건 해산물이 넘버원이다. 다른 건 의미가 없다. 괜찮은 고기를 사드려도 좋은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무조건 여긴 음식이 어떻네 이렇네 저렇네 소릴 듣게 마련이다. 가족여행을 떠날 때 시시콜콜한 계획을 내가 다 짜는 이유도 (이제 자금을 거의 다 대는 탓도 있겠으나) 거기에 있다. 아버지에게 맡겨놓으면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해산물이라 이틀만 지나도 입 안에서 비린내가 날 지경이 된다. 예전에 한번은 진짜 버럭 화를 낸 후에 갈비탕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그날은 내 생각에도 국밥이 맞는 것 같았다. 난 기본적으로 휴게소 돈까스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돈까스 전문가인 친구녀석을 따라서 하도 여기저기를 다녀서 그렇다). 거기다 그 휴게소는 원래 국밥이 유명한 곳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거기서 국밥 편을 들만큼 멍청하진 않다. 대신 돌아누운 엄마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그때까지 엄마가 돈까스를 좋아할 거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소한 식성 하나도 모를까 싶었다. 이런 사소한 것도 모르면서 미안하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 걸까? 내가 진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기는 한 걸까? 그냥 미안한 감정을 끌어모아 관심없는 걸 대충 눙치고 사는 거 아닐까?


이후로 천천히 관찰해본 결과 엄마의 식성은 의외로 서구적이었다. 돈까스도 그냥 돈까스 말고 치즈 돈까스, 피자도 나보다 좋아하신다. 인도음식도 좋아하시고(난이 그렇게 좋으시단다), 베이글에 크림치즈 발라서도 곧잘 드신다. 해외여행 가서 3박 5일 정도는 김치없이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정작 난 그게 안된다). 내가 주말이면 가끔씩 크림파스타, 오일파스타를 하는 것도 엄마가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조규만이 부른 '우리 산책할까요?'라는 안 유명한 옛날 노래가 있다. 후렴가사가 이렇다.


"눈 감아봐요. 웃어봐요. 가끔씩 화도 내봐요. 그대의 모든 게 다 궁금해. 행복한 고민에 나 빠졌나봐. 그대를 듣고 싶어. 그대를 외우고 싶어. 많은 시간들 앞에서 우리 천천히 알아가기로 해요."


관계는 암기과목이다. 물론 응용문제도 자주 나온다. 어느날 그녀가 지나가듯 카레가 좋다 하기에 다음 데이트엔 카레집을 골라놨더니만 오늘은 카레 먹을 기분이 아니란 소리를 듣게 되는 일도 부지기수다(대체 카레와 기분의 상관관계는 무엇이란 말이냐... 하지만 그걸 고민할 새가 어딨나 다른 문제 나왔어도 일단 풀어야지...).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 연인만이 아니라 가끔 가족들도 눈에 밟힌다. 조금씩 외워둘 게 늘어난다. 대신 가족, 특히 엄마는 응용문제가 없다. 문제 은행만 열심히 풀어서 노력한 티만 나면 알아서 채점이 너그럽게 나온다. 점수 따기 쉬운만큼 남 탓 할수도 없는 과목이다.


문득 헤아려보니 친구 어머님이 급작스런 수술 후유증으로 돌아가신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흔한 말이지만 맞는 말이다. 부모님도 기다려주고 싶지만, 막상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외운 내용으로 하루하루 시험을 풀 일도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안다(물론 외할머니는 정확히 100세 채우고 돌아가셨고 외가 식구들이 전반적으로 장수체질이시란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이런 철 든 얘길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그걸 아는 놈이 장가도 안가고..."를 외치실테지. 다시 말하거니와 난 이 글을 엄마에게 보여줄 생각이 전혀 없다. 결코 결코 안될 일이다.


추신. 결혼 얘기가 나오면 내가 하도 정색을 하니 엄마는 이제 그 얘길 안하시는데, 요즘들어 울 막내조카가 자꾸 날 볼 때마다 "삼촌은 언제 결혼할 거야!"라고 구박을 한다. 정황상 엄마가 막내조카를 사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물론 울 막내는 심각하게 귀여워서 난 녀석을 꼭 끌어안은 채 깔깔깔 웃고 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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