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8-30일 대전한화생명볼파크
야구에서 한 시즌은 전쟁에, 한 경기 한 경기는 전투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전쟁이든 이기는 쪽이라고 해도 모든 전투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작고 큰 전투에서 이기거나 지면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과적으로는 대세가 몰리고 한 쪽이 승리를, 다른 한 쪽은 패배를 가져가게 된다.
우린 승리에 집중하기 쉽지만, 길게 보면 질 때 어떻게 지는가가 승리만큼 중요할 때가 많다. 지더라도 무언가를 얻는다면 그나마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이번 시리즈의 문제는 그것이었다. 지는데 잃으면서 진다. 얻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지면 다음이 없다. 그게 걱정스럽다.
리뷰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에 금요일 경기를 노트에 기록하면서 보고 있었다. 특히 내 관심사는 제임스 네일의 스테미너였다. 확실히 네일은 50구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 이전 경기까지 한화이글스의 타선이 너무 식어있었기에 네일의 50구 이후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쉽진 않았다. 과연 LG트윈스 같은 컨디션 좋은 타선을 만나서도 잘 던질 수 있을까? 날씨가 워낙 오락가락하고 있는 와중이라 아직 몸이 덜 풀린 것으로 보면 더 나아질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여전히 올 시즌 내내 네일의 스테미너 문제는 꼬리표처럼 따라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금요일이 4연패 중 3연패 째의 경기였다. 이날 KIA타이거즈는 불펜이 올라오자마자 자멸해버렸다. 7회말 전상현이 나와서 첫 타자 노시환의 타구에 맞았다. 일단 전상현의 공이 노시환에게 정타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 다음 채은성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긴 했으나 7구까지 가는 접전이었고, 다음 김태연에게 홈런을 맞았다.
자, 2024시즌이었다고 생각해보자. 코칭스태프가 전상현이 공을 맞았을 때 내리지 않았을까? 적어도 김태연에게 홈런을 맞았으면 몸상태 핑계로라도 내렸을 거다. 그러나 코칭스태프는 시즌 시작한지 단 6경기만에 불펜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걸 경기를 보는 모두에게 들켜버렸다. 전상현이 아니면 그 상황을 막아줄 선수가 없다고 여기는게 모니터 너머로 마구 느껴질 정도였다.
분명히 말한다. 겨우내 불펜진을 그따위로 만들어놓은 게 지금의 코칭스태프라면, 적어도 믿어주는 척 연기라도 해야 한다. 지금 KIA타이거즈 코칭스태프는 선수를 불신할 자격이 없다. 겨우내 뭐했길래 믿고 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어서 다리에 공을 맞은 투수가 계속 마운드 위에 머물러 있다가 홈런을 맞고 그 후속타자들에게 연속 볼넷을 내주고 나서야 교체가 되느냐는 말이다.
전상현을 이어 나온 곽도규가 아웃카운트 하나를 못 잡고 연속 볼넷으로 밀어내기 1점 헌납한 다음 플로리얼에게 바빕타 맞고 게임이 터져버렸다. 다음날은 다른가? 8회에 1점차를 못 막고 조상우 연속안타에 황동하 붙였는데 안치홍에게 적시타 맞고 게임이 뒤집혔다.
팬들이 인내심 기르는 훈련을 하려고 이런 경기들을 지켜보는 게 아니다. 긴 시즌을 치르기 위해 이런 상황속에서라도 적어도 하나라도 남는 무언가가 있기를 팬들은 바란다. 하지만 이 두 경기 치르면서 남은 거라고는 위즈덤의 연속 홈런과 팬들의 울화병 밖에 없었다.
다시 지난 키움히어로즈와의 시리즈까지 얘기가 돌아가는데, 이 4연패의 시작이었던 17대 10 패배 경기에서는 그나마 윤도현이라도 2루타 2개를 때려내면서 슬슬 타격감이 올라오나 싶었던 게 유일한 소득이었다. 허나 그날 이후 송구문제의 개선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선수를 2군에 내려버렸다. 막상 윤도현을 내리고 나니 김선빈의 컨디션 저하로 2루수에 서건창과 홍종표가 뛰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건창이 KIA타이거즈의 미래인가? 올 시즌 치르고 내년에 더 좋아질 선수인가? 홍종표는 팬심이 여전히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고, 솔직히 수비는 몰라도 타선에서의 기대치가 윤도현과는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선수 아닌가? 불펜 컨디션 조정도 못하는 코칭스태프가 야수 엔트리마저 이런 식으로 쓴다면 대체 하는 일이 뭔가 싶어지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이 두 선수가 타선에서 소정의 성과를 거뒀으면 모르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결국 성과도 없고 미래도 없었다.
그나마 30일 경기에서는 조상우가 좋아진 모습을 보였고, 심우준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후속타자를 잘 처리하면서 정혜영이 세이브를 올렸다. 위즈덤은 3경기 연속홈런을 때렸고, 1번타자로 출전한 박재현은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상대가 타격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한화이글스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겨우 호흡기는 붙였지만 KIA타이거즈 불펜 문제는 다음주가 일차 분수령이 되지 싶다. 삼성라이온즈와 LG트윈스를 만나는 일정이라 지금 상태만 놓고 보면 KIA타이거즈의 불펜투수들이 지레 겁 먹고 볼넷 남발해서 무너진다고 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경기들로 보인다.
이번 주 야구를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장면은 27일 경기 9회말 2사 2루에서 나성범이 타석에 나오자 상대 키움히어로즈의 홍원기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와 투수였던 박윤성 선수를 다독이며 웃는 장면이었다. 선수에 대한 감독의 믿음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결국 박윤성은 나성범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세이브를 얻어갔다.
궁금하다. KIA타이거즈의 불펜진이 겪고 있는 흔들림과 코칭스태프가 겪고 있는 흔들림 중 어느 쪽이 더 센 흔들림인지 말이다. 4연패 경기들을 보고 있으면 코칭스태프 자체가 패닉 아니었나 싶고, 그냥 팔짱만 끼고 있는 게 먼 미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당장 흔들리는 자신의 심경 하나 들키지 않으려고 저러고 있나 싶었다.
솔직히 이번주 경기들을 보고 있는데, 내가 왜 이런 경기를 보고 정성들여 파워포인트로 정리를 하고 상황상황 분석을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코칭스태프도 경기를 정성껏 안치르는데 말이다. 2024시즌 이범호 감독의 선수운용을 보면서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음에도 어찌되었든 통합우승을 해냈으니 답답해하는 내가 잘못된 거겠거니 했는데, 고작 요 여덟 경기만에 그 답답함이 누구 잘못인가 하는 생각이 도로 몰려왔다.
어찌되었든 김도영이 돌아오고 나중에 이의리까지 돌아오면 수습은 될 거다. 다시 탄력을 받을 수도 있고, 점점 한국투수들에게 적응하며 홈런을 쏘아올리는 위즈덤과 타구 질은 나쁘지 않아보이는 나성범이 있기에 반격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현 코칭스태프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선수들로 반격의 모멘텀을 잡지 못한 채 부상선수들 돌아오기만 기우제 지내듯 바라고 있다면, 2024시즌은 정말 선수빨로 우승한 거구나 라고 생각하려 한다. 원래 야구는 선수가 하는 거라니, 그런 해석이 과히 틀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2024시즌 KIA타이거즈가 삼성라이온즈와 LG트윈스를 만났을 때 왜 경기 결과가 좋았는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KIA타이거즈는 상대의 약해진 불펜을 공략하기 좋은 타선을 가지고 있었고, 상대는 KIA타이거즈의 좌완불펜에 번번히 막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태가 많이 다르다. KIA타이거즈는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해줘야 할 김도영이 빠져있고, 삼성라이온즈와 LG트윈스는 선발투수의 높이를 높여서 불펜소모를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나서고 있다. KIA타이거즈의 불펜 ERA는 10개구단 중 NC다이노스 다음으로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선발 매치업에서 그나마 KIA타이거즈 쪽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건 4월 2일 경기 밖에 없다. 특히 4월 1일경기에서 만약 이번에도 윤영철이 약한 구위 탓에 연타를 맞고 무너지게 되면 급하게 황동하를 그 자리에 도로 집어넣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암담해진다.
확실히 대전한화생명볼파크의 우측 몬스터월은 앞으로도 좌타자에게는 공포의 장벽이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좌타라인이 강한 삼성라이온즈와 LG트윈스가 과연 대전 경기를 어떻게 치르게 되는지 미리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물론 이번 삼성라이온즈와의 3연전은 광주에서 치러지는 만큼 나성범이 더 분발해줬으면 한다.
현재 KIA타이거즈의 현실적인 목표는 '5할승률 회복'이 아니다. 주축 불펜투수들이 몇 경기만 무실점으로 넘어가도 경기를 풀어나가는 계획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 승패도 중요하겠으나 이번주에는 불펜투수들이 어떻게 던지는지를 위주로 지켜보려고 한다. 제발 운이 아닌 희망을 던져주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