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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Feb 04. 2024

엄마를 보고 용기를 얻는 딸



오랜만에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글쓰기라는 주제로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대체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진지하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쓰는 사람들은 늘 열려 있다. 어색함은 문장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공감으로 변해있다. 웃음과 추임새가 끊이지 않는다.

카톡 알림이 뜬다. 딸이다.

'감자전분'

감자전분을 주문해 달라는 의미다. 외출 전에 집에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 중에 집에 없는 것이 있으면 톡으로 남겨 달라고 하고 나왔다.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생각났나 보다.     


새로운 알고리즘이 생겼다. 난 분명 요리에 관심이 없는데, 요리 영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간식을 만들거나 케이크, 빵을 만드는 영상은 1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 안에서 매우 간단하게 만들어진다. 요리를 잘 못하는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잡하지 않다. 같은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본다.     


-계란빵 만들기

설탕 30g 밀가루 박력분 125g 베이킹 파우더 1티스푼 파슬리 혹은 바질 달걀 1개 소금 1/2스푼 바닐라 설탕 1개(티백) 우유 100ml

인터넷에서 본 계란빵의 레시피는 이렇게나 뭔가 복잡했다.

'들어가는 게 너무 많아. 재료가 3가지 이상이 들어가면 왠지 하기 싫어져.'   

  

-SNS에서 찾아낸 초간단 레시피는 핫케이크 가루 우유 달걀 끝

이거다!     


계량도 알려줬는데, 그런 것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걸림돌이다. 타고난 본능, 눈대중을 믿는다.

'핫케이크 가루 한 봉지 중 반, 달걀 구수하니까 3개, 우유 많이 먹음 키 크니까 많이? 아냐 아니, 질퍽해지면 빵이 안 되니 부침개를 부치는 정도의 점질' 싱크대 서랍을 열고 핸드 블렌더를 찾아본다. 안 보인다. 밥숟가락으로 휘저어본다. 손목 힘은 좋아서 다행이다.  

    

뭉쳐있는 가루가 있는지 골고루 믹스되었는지 확인해본다. 종이컵에 식용유를 펴 바른다. 들러붙지 않고 잘 떨어지라는 의미로 말이다. 가루와 달걀, 우유가 잘 섞인 반죽을 식용유를 두른 종이컵에 3분의 2정도 따른다. 그 위에 계란을 하나씩 깨어 얹는다. 포크나 젓가락으로 계란의 노른자를 두 번 정도 콕콕 찌른다. 터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예열해둔 오븐에 넣고 180도에서 10분, 170도에서 10분 총 20분 정도 굽는다. 완성.     


아이들 이름을 차례대로 부른다. 민서, 민성, 귀염둥이 민채야~~. 막내의 이름 앞에는 수식어가 붙는다.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서 차례대로 한 명씩 나온다. 가장 빠른 아이는 막내 민채다. "엄마가 계란빵 만들었어."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막내의 눈이 커진다.

"엄마가?" "응, 엄마가 만든 거야." 아이들이 일제히 박수를 친다.

"뭘, 이런 걸로..." 종이컵을 찢어가며 호호 불어서 먹는 아이, 숟가락으로 퍼먹는 아이, 이거 어떻게 먹냐고 먹는 법까지 알려달라고 하는 아이도 있다. 다양하다.      

한 입씩 먹어 본 아이들의 표정이 애매하다. 둘째가 말한다.

 "이거 진짜 엄마가 했어.", "응, 엄마가 했어.", "진짜? 엄마, 이거 맛있어. 진짜 맛있어.","그래??"

내심 기분이 좋다. 거들먹거리며 한마디를 더 한다. "엄마가 말이야, 관심이 없는 것은 열심히 안 해서 그렇지 맘먹고 하면 뭐든 베테랑 수준으로 해."

큰딸도 맛있다며 엄지척을 보인다. 그러면서 다음 날 또 해달라고 한다. 우유를 부어주면서 살짝 웃어 본다.

다음 날도 똑같은 순서로 계란빵을 만들었다. 전날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반응이 좋다.     


며칠 뒤, 안방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큰딸이 들어왔다.

"엄마."

"응, 민서야, 왜?"

"있지. 엄마가 계란빵을 만들었잖아."

"응, 또 해줘?"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그걸 보고 생각한 게 있는데."

"뭔데." "우리 엄마가 이렇게 계란빵을 잘 만드는 걸 보니..."

다음 이어질 말은 뻔할 거다. '뭐든 잘하는 사람이구나. 멋지구나. 그동안 엄마가 안해서 그렇지 숨은 실력자였구나.'라고.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계란빵을 잘 만드는 걸 보니...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 나 빵 만들어보고 싶어졌어."

'엄마가 너에게 희망을 줬구나.'


엄마를 보고 용기를 얻은 딸. 빵 만드는 재료를 검색해보고, 소금빵에 도전한다.               


      

나름 긍정해석: 엄마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처음으로 빵 굽기에 도전하는 딸. 엄마의 계란빵 만들기가 단순한 요리 활동을 넘어, 딸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엄마의 작은 성공이 딸에게 큰 용기와 영감을 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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