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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빛 May 18. 2021

나와 당신의 등대지기 #3

- 제10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연필’ 입선작



#3. 나의 등에 매달린 숙명


지금도 등은 항상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고 산다. 몇몇의 등대지기(친구, 가족이 포함되었다.)가 있다고 자부할 무렵, 내 것이 아닌 타인의 등을 바라보게 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췌장암 말기의 환자 K에 대한 일화이다.


어느 밤의 아홉 시 십 분. 발표에 앞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야 했고, 문진하기 위해 반드시 그를 만나야만 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병실은 어두웠다. 한 침상의 취침 등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K 씨의 자리였다. 병원 밖 전경이 잘 보이는 창가에 위치한 그의 공간은 항상 커튼 뒤에 가려져 있었다. 마치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고 외치는 듯했다. 오로지 문진할 생각만이 가득 차있던 나는 적막을 깨기로 결심했다. 그와 나머지를 나눈 바리케이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나 불현듯 온몸을 감싸는 서늘함에 모든 계획은 무너졌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본 것이 화근이었다. 밖은 심해처럼 깜깜해서 거울도 아닌 것에 병실 안이 비쳤다. 배를 부여잡고 새우등을 한 K 씨의 모습이 보였다. 외롭고 처량한 등. 떨고 있는 등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서 선명한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시커먼 죽음의 그림자였다. 한 겹의 커튼 자락을 잡고 있던 손끝이 함께 진동했다. 무례한 방관자는 그 장면을 견디지 못한 채, 심연의 공간을 뒤로하고 쫓기듯 뛰쳐나왔다. 처연하게 등 돌린 잔상 탓에 한동안 괴로웠다. 하지만 그의 사정은 더 이상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그를 다시 마주쳤다. 며칠이 지난 병원 로비 회전문 앞이었다. 퇴근하던 나는 밖으로 나가는 회전문에 탑승했다. 그의 발걸음은 반대 방향인 병원 안을 향했다. 서서히 그의 앞모습, 옆모습, 그리고 등이 보였다. 시선이 멈추었다.


등을 돌린 존재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누군가 겪고 있을 숨통을 끊어내는 고통,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감과 치부를 드러낸 수치심. 그것들을 응시하지 못했던 비겁함과 부끄러움 가운데, 그들을 끌어안아줄 등대지기의 숙명을 지녔다는 모순된 사실을 깨달았다.


회전문 속에서는 어느 방향이 생(生)과 사(死)를 향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저 존재의 등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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