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한디?
혹시 의전이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으신가요? 원래 의전은 공식행사나 외교에서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형식이나 에법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원래 의미의 의전이 아닌 우리 일상생활에서 너무 많은 의전으로 본말이 전도되거나 갑질로 변형되는 걸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또 진짜 중요한 문제라도 윗사람 심기를 안 건드리기 위해 돌려서 말하거나 조용히 뒤에서 이야기만 하거나 갖은 방법을 동원(그게 편법이든 불법이든)하여서 어떻게든 실무진 쪼아서 해결하는 모습 본적이 없으신가요? 오늘은 이런 윗사람 심기경호에만 신경쓰는 우리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심기경호라는 말은 뭐 정식으로 등록된 학술용어이거나 어법상 맞는 용어인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조직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 행동입니다. 거창하게 말해서 심기 경호이지만, 사실은 윗사람의 기분이 안 나쁘게 하기 위해서 갖은 신경을 쓰는 걸 말합니다. 그게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말이죠. 그래서 인지 직장에서 많은 경우, 윗사람의 말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 윗사람이 틀렸다거나 맞지 않는 소리를 해도 그에 맞춰서 일하느라 오히려 고생만 하는 경우도 많이 있고요. 학창시절에도 참 씁쓸한 에피소드들이 생각이 납니다. 분명히 학생이 맞는 말을 해도 아무리 그래도 어디 선생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느냐라는 말 한마디로 정작 잘못 행동한 교사가 오히려 당당히 행동하고 바른 말 한 학생만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몰리는 경우 본적이 없으신가요? 학창시절만 그런게 아닙니다. 윗사람의 심기경호를 위해서 정작 중요한 일도 미뤄두거나 자기가 이야기 해 놓은 걸 앞뒤가 안 맞게 다른 소리를 하면서 호통쳐도 제대로 이야기 하면 그 아랫사람만 욕먹는 상황. 혹시 안 겪어 보셨나요?
정작 중요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쓰이는 신경보다, 그저 윗사람 심기 경호를 위해 너무나 많은 행정력과 자원이 쓰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괴로운 생각을 여러번 하게 됩니다. 온 갖 행사나 윗사람이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수도 없이 바꾸는 보고서와 의전용 쇼를 생각하면 진짜 필요한 일은 어느새 뒷전이 되고 마는.. 참 참담한 기분이죠.
이런 심기경호의 한 측면에는 조직사회에 녹아든 의전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행사가 있는 경우 뿐만 아니라 심지어 회식을 할때 상사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상사의 구두 뒷꿈치에 자신의 손가락을 미리 넣어 신발을 편히 신게 해주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의전이 조직사회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80909/91903538/1
물론, 의전이라는 것 자체가 악의 축은 아닙니다. 공식적인 행사나, 조직을 대표해서 외부기관과 만날 때 조직의 품격이나, 말을 직접하지 않아도 의전을 통해서 예의를 표시하거나 의사를 전달하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의전이 심기경호를 위해 조직의 모든 곳에 퍼져나가고 온갖 이상한 의전이 파생하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의전에 중독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이런 의전에 중독된 사람들이 갑질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사소하게는 엘레베이터 타는 순서부터 식당에서 구두 뒷꿈치에 손가락을 넣어주는것 까지 모든 것을 대접받는것에 익숙해지는 사람이 어떻게 갑질을 안할지 오히려 의문입니다.
의전 자체는 악의 축이 아니지만, 그 의전이 공식행사가 아닌 일상에 파고들 때는 분명 악한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기경호라는 미명하에 우리는 상사나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진짜 필요한 말도 에둘러서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상사 → 하급자)에는 그런것 없죠. 막말이나 안하면 다행인게 현실입니다. 이런 심기경호를 위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09061610330810784&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과거 대한항공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이런 한국의 심기경호를 위한 의사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설적인 발언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직적이고 윗사람 심기를 살피는게 제일(?)의 미덕인 한국사회의 문화 때문에 에둘러 두루뭉실하게 표현하다가 문제를 키워 추락사고까지 발생했다고 말이죠.
이런 추락사고라는 극단적인 경우 만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수 많은 해결해야 할 문제나, 중요한 일을 뒷전으로 미루게 되고, 윗사람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게 하느라 에둘러서 조용히 처리하다 보면 더 안좋게 문제가 쌓이게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돈을 지출하는 걸 싫어 하는 경영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안전 문제가 있는 설비에 대해 교체해야 한다는 말을 중간 관리자가 계속 짤라먹고 경영진에게는 에둘러서 여력이 되면 전사적으로 설비 점검을 해서 장기적으로는 교체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기만 해서 결국 안전사고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 너무 익숙하지 않나요?
언제까지 심기경호를 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지 참 안타깝습니다. 심기경호를 위해 투입되는 수많은 자원과 낭비가 저는 참으로 아깝습니다. 정작 뭣이 중한디? 라는 영화의 대사처럼 진짜 중요한게 심기경호 일까요?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도 과잉의전과 심기경호에 취해있으면 제대로 판단력이 생길까요? 원래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법입니다. 우리 사회가 심기경호보다 더 중요한 본질을 중요시 하는 조직문화가 바로 서고, 리더가 의전과 심기경호에 중독되는 게 아닌 진짜 롤 모델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이번 글을 마칠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