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 행복?

18. 음식으로 행복해진다?

by 김근회

18. 음식으로 행복해진다?

드라마를 보다가 새벽 5시에 잠이 들었다. 11시가 돼도 아내는 일어나지 않는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단골로 가던 미용실에 가니 휴업이다. 할 수 없이 다른 미용실로 갔다. 약국 가까이 있지만 처음 가는 곳이다. 한 군데서 항상 깎았으니 다른 곳은 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이 미용실에 가면 수다를 떤다. 오랫동안 보고 산 사람들이지만 약국에서 일상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미용실에 가면 세상 이야기를 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한다. 머리 깎을 때만 이웃과 소통하고 사는 것 같다. “한 군데만 다녀서 여긴 처음 왔네요. 다니던 데가 문을 닫았네요.” 멋쩍어서 건넨 말에 “남자들은 다 그런 거 같아요. 한 군데만 다니는 습성이 있어요.” 주위의 미용사들은 나이들이 들어서 시력들이 나빠지니 똑 고르게 깎진 못해도 난 개의치 않는 사람이니 그런대로 만족한다. 조금 길으면 괜찮아지니까 하고 넘긴다. 오늘 간 곳은 처음 깎아보지만 그런대로 잘 깎았다. 교대로 이용해야겠다. 둘 다 우리 약국 이용고객이니까..

차에 휘발유를 넣고 오랜만에 세차도 했다. 아내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거 같았지만 내버려 두면 하루 종일 까라질 거 같고 농원에 못 가겠어서 점심 달라고 오후 1시 반에 깨웠다.

오후 2시 30분경에 농원에 들어갔다. 잠시 후 처남도 들어왔다. 둘째 처제는 온다더니 피곤해서 집에서 쉰다고 한다. 둘째 처제가 없으니 조금은 허전하긴 했다. 항상 같이 해 버릇해서 인지 넷 중 하나가 빠지면 왠지 옆구리가 허전하다. 그것도 익숙해지겠지. 언제나 함께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처남이 저녁 준비를 했다. 메인 요리로 두부조림을 했는데 정말 맛있게 잘했다. 닭 육계장국을 끓였는데 그것도 일품이었다. 감탄스럽다. ‘입이 조조’라고 놀렸는데 처남이 요리를 잘하네. 요즘은 요리 잘하는 남자가 인기가 좋다고 하고 TV에 맨 음식 프로그램이라 나 같이 관심 없는 사람은 짜증 나서 채널을 돌리기만 했었다. 남자도 요리 잘하니 좋구나, 처음 생각했다. 그렇다고 요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해주는 음식은 고맙게, 맛있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살았다. 오늘 못 온 사람들은 다음에 처남한테 주문해서 먹어보라. 오 남매는 막내만 빼고 모두 요리를 잘한다고 오 남매 가족들 단톡 방에 톡을 했더니 “막내도 제법 잘해요. 부모님 두 분이 요리를 잘하셨으니 우월 유전자를 받았어요. 하고 톡이 올라온다. 장인어른 요리는 본 적 없으니 모르겠고 장모님은 요리대회에 나가서 입상하신 경력도 있으시고 워낙 요리 솜씨가 좋았다. 자식들이 자라면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봐서 입맛대로 요리가 되는가 보다. 처남의 요리에 아내도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맛있게 먹었다.

농원 뒤쪽 너머에 가서 베어 놓은 소나무 하나를 끌고 와서 화덕에 불 피우고 일부 굵은 가지를 톱으로 썰어 큰 화덕에도 피우고 잘게 썰어 농막 앞 작은 화덕에도 모닥불을 피웠다. 아주 제격이었다. 잘 말라서 불꽃도 활활 높이 올라 불 사랑이 충만했다. 온갖 마음의 잡동사니를 태우고 또 태워서 환한 불꽃으로 승화하여 온 마음에 훈기가 도는 충만한 마음이 너무 좋다. 태워야 하는 마음의 잡동사니들 모두 나에게로 와라. 다 태워주마. 올 겨울엔 나무를 주워다가 불 피우면 되겠다. 1월의 추위는 불 사랑으로 물리치리라.

처남이 요리한 두부조림

저녁상에 무밥이 올라왔다. 가끔 먹는 무밥인데 참 감사하다. 아니 행복하다. 특별하게 생각되는 게 이상하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은 음식, 사랑, 돈이라고 하던데 난 음식엔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지도 못했고 탐하지도 않았다. 음식은 활동하기 위해 먹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거라 생각했다.

특별한 음식을 맛볼 때는 참 맛있구나, 해주는 정성이 참 고맙구나, 생각은 했었다. 건강을 잃었을 땐 살기 위해 먹으면서 음식에 약간의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건강을 찾고 나서는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갔었다. 왜 사람들이 음식에 열광하는지 왜 음식으로 행복해하는지를 조금은 이해가 간다.

농원에서 처남의 두부조림 음식을 먹으면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농원에서 소고기, 돼지고기 파티 말고는 매주 일요일에 같은 메뉴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10개월이 지나도록 매주 다른 메뉴로 식사를 했구나. 음식 메뉴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생각해봤다. 옛날에도 때가 되면 뭘 해먹을 까 고민하는 아내가 의아해서 뭘 그렇게 고민하냐고 얘기했었다. 있는 반찬에 밥만 해 먹으면 되는 거 왜 그렇게 고민하냐고 핀잔도 했었다. 아내의 고민은 사랑이 담긴 고민이었다는 걸 깨달았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 타박 않고 맛있게는 먹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지는 걸 느끼는 거 같기도 하다. 참 늦게도 성장한다. 이 나이에 겨우 알아지다니.. 지식은 끝없이 탐구하고 인간의 건강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면서도 음식에 대한 관념은 조금도 바뀌질 못했으니 모자라는 인간이다. 사람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hapiness hormone)인 세로토닌이 소화관내의 장 크롬 친화 세포에 80% 존재한다니 행복해지는 게 맞는가 보다. 이제 난 음식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앞으로 우리 농원에서의 식사 메뉴가 한 바퀴 돌아가려면 얼마나 세월이 흘러갈까 궁금하다. 오 남매는 매주 일요일에 뭘 해 먹을까 고민한다.

아내의 무밥



점심에 둘째 처제가 잡채밥을 해왔다. 요리를 잘하는 처제가 있어 잘 얻어먹는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나? 둘째 처제한테 음식 대접을 수시로 받는다. 이름도 모르는 요리를 수없이 자주 얻어먹는다. 시시때때로 음식을 해온다. 그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감사하고 맛있게 먹어주는 게 보답이다. 그녀는 그녀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행복하다고 한다. 이젠 행복하게 먹으련다.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정성과 애정의 특별한 음식을 먹고 행복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음식으로 행복해지리라.

둘째 처제의 잡채 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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