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습작 단편소설
2044년, 추석 명절을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
작년 추석에도 올해 설에도 유사한 명절 특수 사건들이 반복되었다. 유산상속 문제로 화가 난 차남이 장남 집에 칼을 들고 찾아가 발생하는 칼부림이라든지,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싸움과 가정폭력, 덩달아 따라오는 이혼율 상승 같은 뉴스들 말이다. 뉴스가 재방송이 아닌지 의심될 때쯤 양화대교 위에서 투신 시도 중인 시민으로 인해 합정 일대까지 도로 정체가 발생 중이라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뉴스 화면에서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 양화대교 난관에 상체를 반쯤 넘긴 채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일대는 경찰과 구급차로 아수라장이었으며 다리 아래에는 보트에 탄 구급 대원들이 그녀의 투신을 대비하여 대기 중이었다.
자살 소동의 주인공은 종갓집 종손 며느리 김씨였다. 김씨는 추석 전날 오후 내 전을 부치다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 행색이었다. 밀가루가 엉겨 붙은 빨간 꽃무늬 앞치마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김씨의 얼굴과 대비되어 쓸데없이 화려해 보였다. 양화대교 난간에 매달려 경찰과 두 시간이 넘도록 대치하던 김씨는 탈진한 듯 힘겹게 마지막 유언을 지르며 끝끝내 한강으로 추락했다.
“제발.... 내 제사는 지내지 마라!”
명절마다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울분을 토하며 양화대교 위에서 자살소동을 벌인 며느리 김씨의 사연은 명절 저녁 울렁거리던 뭇 여성들의 마음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사실 차례 문화를 없애자는 흐름은 수십 년 전부터 있어왔다. 누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한 줄의 문장은 이 흐름을 주도한 21세기 최고의 명문장으로 통한다.
‘다 부질없는 개뻘짓이다. 진짜 조상 잘 만나 조상덕 본 사람들은 지금 다 해외여행 가고 없다.’
차례상 없애기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할 만한 이 문장은 한 번도 뵌 적 없는 조상님들에게 ‘후손들 잘 부탁드립니다’며 정성껏 차례상을 올렸던 며느리들의 마음까지 어지럽혔다. 허리가 굽도록 식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조리하여 상을 차리던 며느리들은 한순간에 조상 덕 못 본 사람이자 해외여행 못 간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죽은 자에게 절하는 문화가 미개한 샤머니즘이라고 비난했고, 누군가는 명절마다 본인이 시댁에 종살이하러 온 것 같다며 신세 한탄을 했다.
성균관은 부정적인 사회적 흐름을 인식했는지 매년 차례상 표준안이라 불리는 간소화된 현대식 차례상을 언론에 공개하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 또한 그저 고리짝 같은 차례 문화를 이어 나가기 위한 핑계로 보일 뿐이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여세추이(與世推移)라 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흘러가라고. 마치 수백 년 후의 차례상 갈등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흐름이 이러하고 본인이 뱉은 말인데, 공자님도 현자(賢者)의 마음으로 이해하시겠지?
20여 년 전 코로나 팬데믹으로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이 발동되자 이를 핑계 삼아 차례를 없애는 집들이 생겨났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면 후손 된 도리가 아니라며 도리질을 치던 어르신들도 나라의 행정명령 덕분에 공적인 이유가 생겨난 것이다.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은 집안들은 차례상 해방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은 곧 사회적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차례상 문화가 부모님 세대에서 십수 년 내에 점차 사라질 만한 문화라 예상했었다. 당시의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국가의 존폐를 논할 만큼 처참한 수준이었고 재정을 쏟아붓는 다양한 정책들도 별 소득없이 형편없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누적된 망자와 제사를 치러줄 후손이 없는 미래에 누가 차례상을 차릴 것인가!
하지만 당장이고 사라질 것만 같던 차례상 문화는 2035년부터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된 3D 요리 프린터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LG 전자에서 출시한 3D 요리 프린터인 ‘쿡큇’은 그야말로 주방에 혁명을 일으키는 센세이션한 가전제품이었다. 추석 당일 아침에 차례상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것, 그게 다였다. 주방은 이미 초연결성으로 모든 가전과 지역 내 마트 식재료코너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주방에서 단순한 터치 몇 번이면 냉장고와 쿡큇이 연동되어 미슐랭 한식 레스토랑에서 먹던 음식들을 가정에서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잡채는 안국역 큰 기와집 레시피로, 산적과 갈비는 미슐랭 3스타 모수에서, 이 얼마나 기대되는 차례상인가. 망자뿐 아니라 후손들도 만족하는 파인 다이닝 차례상이라니, 맛은 당연하고 핀셋으로 쌓아올린듯한 정교한 데코레이션은 눈으로 음식을 먹는 듯 차례상 앞에서 황홀경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쿡큇에서 갓 나온 요리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 SNS에 일상을 공유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갈 때 입을만한 블랙원피스를 입고 우아한 미소를 지은 후손들은 한 손엔 샴페인 잔을 든 채로 차례상 앞에서 환하게 웃음 지었다. 후손들은 SNS에 해시태그를 달아 홀로그램 4D 사진을 업로드한다. #치얼스 #추석 파인 다이닝 미슐랭 차례상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타인의 SNS 속 차례상을 들여다 보면 마치 내 눈앞에 음식들이 차려진 것 같다. 4D 기술이 접목된 폰으로 찍은 사진은 실제 음식과 동일한 냄새와 풍미까지 구현하여 코를 자극한다. 마치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SNS 속 고급 아파트 거실에 펼쳐진 차례상 앞으로 느껴질 만큼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이다. 대리 경험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그들의 삶에 닿고 싶다는 갈망은 더욱 간절해졌다.
쿡큇이 출시 된 후 두 번의 명절이 지나고는 SNS를 중심으로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음식들을 손쉽게 쿡큇으로 만들다 보니 차례상을 없앤 가정에서도 인증샷을 찍어보기 위해 차례상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쿡큇을 보유한 가정뿐 아니라 여전히 손수 음식을 장만하는 가정에서도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없어질 뻔한 차례 문화를 구제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쿡큇은 중형 외제차 한 대 가격으로 그에 맞는 경제력을 갖춘이들만 누릴 수 있는 하이엔드 가전이었다. 가진자와 가지지못한 자의 명절풍경은 더욱 달라지기 시작했다.
<며느리 김씨의 추석>
쿡큇은 대기 없이는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다. 시댁은 고장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50년 이상 된 주방가전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안동 권씨 부정공파 41대손 종손 며느리이다. 명절 이틀 전부터 시댁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물김치를 담그고 식혜를 만들었다. 요리하면서도 끼니때마다 식구들의 밥상을 차려내야 했고 식사 후에 나오는 산더미의 식기들을 정리해 식기세척기에 쌓아 올려야 했다.
“어머니... 저희도 LG에서 나온 3D 요리 프린터... 그거 사면 안 될까요? 형님네랑 저희랑 돈 각출해서 36개월 할부로 하면 옵션 없는 걸로 하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머 얘! 그 케켁인가 뭐 그거? 그거 기계가 만든 음식 뭔 줄 알고 먹니? 그런 거 다 가짜야 가짜. 차례상에 정성이 없으면 그건 순 껍떼기뿐이다. 다 너희 잘 되라고 하는거야. 이렇게 정성을 다하면 조상님들이 도와서 다 술술~ 잘 풀린다.”
나는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 후 10년간 조상님들께 도리를 다했지만, 최근 갑상선암을 진단 받았으며 조상 덕이라곤 구경조차 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죽은자에게 예를 다하는 죽어가는 자의 마음은 어떠한가. 갑상선암은 거북이 암이라며 걱정하지 말라던 시모의 말은 위로가 아닌 무관심이었다. 저녁때 마신 반주는 나를 더욱 감정적으로 만들었다. 식구들이 상을 물리고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제법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맞으며 집 근처 양화대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시모 신씨의 추석>
나는 요즘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쿡큇인가 뭔가로 프린터기에서 음식이 나오는데 그따위 가짜 음식을 차례상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음식은 자고로 손맛이고 정성이다. 요즘같이 가족끼리 만나는 일도 드문 시대에 며칠만 고생하면 온 가족이 명절 음식 나눠 먹고 집에 싸가서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데, 귀한 걸 모르고 편한 것만 찾는 젊은 놈들! 이번 명절에는 우리 엄마 고생한다며 우리 아들들이 효도상품 로보킹 가사봇을 선물로 보내줬다.
“장가까지 갔으면 더 좋았으련만... 됐어. 집 안 청소, 이불 빨래, 쓰레기 배출까지 로보킹으로 완벽하게 되니 얼마나 좋아. 여자들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냐, 거저야 거저.”
“근데 이거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야? 명절팩인가를 껴야 차례 음식 요리 기능이 작동된다는데, 좀 일찍 와서 어떻게 쓰는지 설명도 해주고 하지. 돋보기를 껴도 이게 뭐 명절팩인지 뭔지 잘 보이지도 않고 알 수가 있어야지."
나는 돋보기를 바꿔야겠다며 눈을 여러 번 비비고 찌푸리다 명절팩으로 보이는 팩을 꺼내 로보킹 가사봇에게 끼웠다. 로보킹은 홈쇼핑에서 봤던 대로 대단했다. 버튼만 누르면 빠릿빠릿하게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내고 요리와 동시에 정리까지 가능했다.
“이건 뭐 눈치 안 보고 막 시켜도 되고 며느리보다 낫네. 이제 종부에서 해방이다. 가만, 로보킹 만든 사람이 올해 노벨상 받는 거 맞나?”
“엄마, 로보킹 산 거 어딨어? 설명서 잘 읽어봤어? 오늘 뉴스에 그거 오류가 많아서 리콜해준다고 나오더라.” 뒤 늦게 집에 온 막내아들이 방마다 문을 열어보며 로보킹을 찾으며 말했다. 아들이 안방에서 발견한 로보킹 패키지에 명절팩은 박스 속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모친이 눈을 비비며 로보킹에게 끼운 팩은 명절팩이 아닌 워킹맘 팩이었다. 워킹맘 팩 설명서엔 빨간색으로 주의 사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워킹맘 팩은 육아/직장/가사노동 세 가지 기능을 겸하는 팩입니다. 7시간 이상의 가사노동이 단독 요구될 경우 과부하로 오류발생 위험이 있습니다. 충분한 충전 후 사용해야 하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자기주장 기능이 있으니 이는 필요에 따라 ON/OFF가 가능합니다.
뉴스에서는 로보킹 가사봇이 양화대교 난관에 매달렸다 추락하는 영상이 보도되고 있었다.
“연휴 끝나면 로보킹 리콜되나 문의해 봐야겠다.” 아들이 뉴스를 보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사진: Chat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