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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Feb 04. 2024

몸만들기

   할머니의 체력

 나의 몸만들기는 일요일 저녁 부천 신중동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시간 서울로 향하는 7호선 전철은 노약자석 하나 정도는 비어 있다. 앉자마자 꿈나라로 빨려 들어간다. 20개 역, 45분이 소요되는 긴 거리라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을 그냥 다 내려놓는다. 주말 일상이 되어 버린 1박 2일 손주 돌보미 역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목의 각도를 잠결에 설핏 바로 잡아가면서 깊은 수면세계로 가라앉는다.


 세 시간마다 130cc의 분유를 먹는 신생아 손주 녀석으로부터 밤낮 눈을 뗄 수 없는 1박 2일이다. 응애응애 젖 달라고 보채다가도 우유 꼭지만 물리면 꼴깍꼴깍 힘차게 빠는 것도 잠시, 바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우유 빠는 힘이 느슨해진다. 살짝살짝 우유병을 밖으로 당겼다가 밀었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귓불을 만졌다가 조금 세게 꼭 안아 주기도 하는 등 빠져드는 잠을 깨워가며 우유를 먹인다. 겨우 130cc를 다 먹이는 데 걸리는 시간 30분, 쿨쿨 잠든 녀석의 여린 등을 토닥여가며 트림을 시키는 데 10분.

 정확하게 세 시간마다 신호를 보내는 녀석의 우유 먹이기와 기저귀 갈아 주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는 사이 하룻밤이 몽롱하게 다 지나간다. 보채거나 울어대는 일 없이 먹기만 하면 또다시 잠드는 순둥이라 고맙긴 하지만 긴장한 당번 할머니는 하룻밤 잠을 완전 저당 잡힌다. 백일이 지나면 수유는 짧아지고 수면은 길어지던가? 아기를 키워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만 두 살인 누나, 손녀는 잠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는다. 엄마를 완전 독점한다. 착하고 여린 엄마는 어린 딸의 요구에 100% 응해 준다. 끝없이 이야기 나누고 다독여가며 먹이고 재우고 같이 놀아 준다. 혈연으로 맺어진, 하늘로부터 주어진 모성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린 딸의 정서와 육체를 보살피느라 온전히 헌신하는 젊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의 동생 출산 휴가 동안 가장 큰 이익을 본 건 누나인 첫째다. 24시간 엄마와 함께 지내는 동안 말솜씨가 부쩍 늘었다. 못하는 말이 없다.


 놓치지 않고 제대로 내린 전철역을 나와 따뜻하고 편안한 집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휴식이 시작된다. 또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원상복귀 몸만들기 시간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조건 쉰다. 종이 한 장도 건드리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 먹고 싶은 것을 꺼내 먹고 따끈한 물로 반신욕을 한다. 설거지도 미루어 둔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새벽 일찍 눈이 떠지면 유튜브 소설을 들으며 잠자리에서 뭉갠다. 야무지게 아침을 챙겨 먹고 수영을 다녀오면 흐트러졌던 체력이 원상 회복된다.

 다시 시작된 한 주일을 잘 지내고 주말에는 갓난쟁이 손주의 24시간 돌보미 역할을 위해 또다시 부천행 전철을 탈 것이다.


 덕분에 2023년 크리스마스 연휴, 2024년 신정 연휴 2박 3일씩을 꼬박 아들네와 함께 지냈다. 손녀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위해 마지막으로 언제 사 보았는지 기억에 까마득한 케이크도 샀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들고 눈 내리는 겨울 거리를 걸어 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혼자라는 느낌을 애써 떨쳐내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한 곡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ㅡ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 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이 마음.


 사별이 아니라면, 어디선가 그가 살아있는 이별이라면 싸아한 마음이 덜 시릴까? 뼈아프게 스며드는 통증이 덜할까?


 교대해 주러 오신 사돈어른들 덕분에 새해 첫날, 1월 1일에는 아들과 강화 갑곶성지다녀왔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성당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복도에 놓인 임시 의자에서 11시 미사를  봉헌하고 지하 1층에 있는 봉안당에 들러 연도를 바쳤다. 사진 속 양복 차림의 단정한 얼굴이 약간은 수척한 모습으여전히 정면을 향하고 있다. 투병 1년째 손녀의 백일날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다.

 울컥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속으로 감추느라 힘들었다. 눈물은 이미 제멋대로 뺨 위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서로가 딴 세상 사람이 되어 이렇게 첫 새해를 맞이하는구나.'


 돌아오는 길, 요즘 많이 인기를 끈다는 김포 공장형 카페에 들렀다. 연휴답게 남녀노소로 북적북적한 실내, 다행히 꽤 괜찮은 빈자리를 찾았다. 갓 구워 나온 향기로운 빵과 따끈한 커피를 즐기는 여유를 누렸다. 미처 계획하지 못했는데 우연히 2024년 새해 첫날에 아들과 봉안당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곱째 방문이었다.


 당신이 떠나간 빈자리를 찾아와 다시 열세 명의 가족수를 채워준 손자, 72세로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와 띠동갑인 토끼띠 귀여운 손자. 시공간을 초월한 아름다운 낙원에서 누구보다 깊고 넓은 애정으로 당신의 남은 가족들을 잘 지켜주리라 믿고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당신께 뜨거운 사랑과 깊은 감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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