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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pr 22. 2024

콰지모도의 날

 1842년 파리, 사랑과 욕망의 이야기

 "엄마, 누가 제일 마음에 와닿았어요?"

둘째가 묻는다.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관람이 끝나고 두 딸과 담소를 나눌 적당한 카페를 찾아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프롤로 신부."


 공존할 수 없는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와 번민에 휩싸여 절규하는 신부의 비탄을 들으며 비슷한 이미지의 다른 많은 인물들이 떠올랐다.

 서머셋 모옴 <비>에 등장하는 선교사 데이빗슨, 헤르만 헤세 <지와 사랑>에 나오는 수도사 나르치스,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의 위대한 집사 스티븐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자베르 경감, 나다니엘 호손 <주홍 글씨>의 숨겨진 주인공 딤스데일 목사 ᆢ.

 한결같이 딱딱한 껍질 속에 깊이 감춰  두고 있는 인간의 나약함과 이중성을 보여 주는 인물들이다.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종교와 학문만이 생의 전부라고 믿는 자신의 경직된 신념에 따라 긴 세월 오직 한 길만을 걸으며 자신을 갈고닦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최연소 부주교가 된 클로드 프롤로 신부.

 그는 15년 전 노트르담 대성당의 '아기 버리는 침대'에서 발견된 추한 용모의 반벙어리에다 꼽추인 네 살짜리 사내아이를 거두어들여 '반만 인간'이라는 뜻의 '콰지모도'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그날은 부활절 다음 첫 주일이었다. 그 이후 그날은 Quasimodo Sunday로 불린다.

 추한 용모로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는 콰지모도는 자기를 양육해 주고 열네 살 때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로 삼아 준 프롤로 신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감사해하며 그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순명으로 복종한다.


 그들 사이에 한 여자가 등장한다. 성당 앞 광장에 모여사는 집시들 무리 속, 순수하면서도 존재 자체만으로 치명적인 매력이 넘치는 16세 아름다운 여인 에스메랄다.

 넓은 망토자락을 펄럭이며 검은 정장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신부. 그에 비해 극 중 내내 맨발로 무대를 누비는 에스메랄다. 신부는 한순간 그녀에게 마음을 모두 빼앗긴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자유분방하며 순수한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자유로운 영혼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지금까지 계속 억눌러 저 깊은 어둠 속으로 꾹꾹 눌러 놓았던 본능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ㅡ난 불꽃에 휩싸여 잿더미가 되었어. 너를 사로잡고 있는 악마가 신을 향한 내 눈을 가리는가?

 너로 인해 눈을 뜬 욕망에 갇혀 저 하늘을 더 바라볼 수 없도록.

 오, 노트르담.

 오, 단 한 번만 그녀를 나의 것이 되게 해 줘, 에스메랄다.ㅡ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당황하고 고뇌하는 모습. 그 일에 콰지모도가 연루된다. 프롤로의 명령으로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다 체포되어 채찍질을 당할 때 그를 외면하는 프롤로에게 절망하고 갈증의 고통에 시달릴 때 생명의 물을 먹게 해 준 에스메랄다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한순간 터지는 봇물처럼 전신을 휘감아오는 사랑의 홍수에 빠져든다.

 그도 노래한다. 한 여자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울부짖는다.

 ㅡ새처럼 날갯짓하는 그녀를,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볼 때면 난 마치 지옥을 걷고 있는 기분.

 그 치맛자락에 붙들린 내 눈길.

 이런 내 기도의 의미가 있을까?

 그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가?

 이 땅에 살아갈 가치도 없는 자.

 오, 루시퍼,

 오, 단 한 번만 그녀를 만져 볼 수 있게 해 주오, 에스메랄다.ㅡ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와 모든 것을 가진 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삼각관계. 일방적이고 맹목적이었던 사랑과 감사가 실망과 증오로 무너질 때 향하는 곳은 죽음이었다.

 프롤로의 고발로 에스메랄다가 교수형을 당하는 날, 콰지모도는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프롤로를 종탑에서 밀어뜨려 죽인다.

 교수형과 살해로 동시에 생명을 잃은 집시 여인과 신부, 그 두 죽음을 지켜보며 그는 탄식한다.

 "아, 나는 저 모두를 사랑했는데ᆢ."

 그로부터 2년 후 사형수들의 시체를 보관하는 납골당에서 목이 부러진 여자의 유해를 꼭 끌어안고 있는 척추가 심하게 뒤틀린 남자의 뼈가 발견된다. 싸늘하게 식은 에스메랄다의 몸을 꼭 껴안은 채 꼼짝 않고 굶어 죽은 콰지모도.

 사람들은 말한다.

 ㅡ콰지모도는 슬프고 미쳐 버렸지, 사랑으로 죽어가네.ㅡ


 프롤로 신부는 콰지모도의 마음을 손톱만큼이라도 헤아렸을까? 그를 거두어들여 양육했다는 경건한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자의식만을 높였을 뿐 그를 한 인격체로 의식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검은 사제복이 주는 권위와 경직된 사고에 갇혀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뒤틀린 사랑과 이루지 못할 사랑이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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