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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y 04. 2024

再會

한 달 반 만의, 50년 만의 ᆢ

 역에서부터 바로 탁 트인 넓고 깨끗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부산.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이 그대로 온몸을 감싸오는 부산. 혼자일 때 그 시간은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나와 하나가 된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2층 역사에서 한 바퀴 눈길 돌려 사방을 둘러보는 부산. 많이 변했고 많이 화려해졌지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은 변함이 없다.


 지난 3월, D의 그림 전시회장에서 잠깐 만나 그녀와 기약 없이 맺었던 막연한 약속.

 "우리 다시 얼굴 함 보자."

 그 약속이 한 달여 만에 쉽게 이루어졌다. 모교가 있는 부산에서 매년 4월 열리는 여고 정기 총동창회에 서울 친구들 열 명이 참석하기로 한 것이다. 2박 3일 일정.


 D를 만날 생각에 이른 아침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했고 혼자 먼저 부산으로 향했다. 역에서 내려 일러 준 버스를 타고 D의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D승용차를 몰고 나왔고 나는 옆자리에 올라앉았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바로 어제런 듯 둘이 짝이 되어 함께 다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조금씩은 더 느려지고 조금씩은 더 묵직해진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며 옛날을 이야기하고 지금을 나누었다. 폭이 넓고 깊은 그녀답게 명리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는 D의 이야기는 차분하면서도 깊었다. 나도 덩달아 조금은 진중해졌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자랑질 따위의 거품은 없었다. 편했다.

 3,300세대라는 바닷가 대단지 아파트에 자리 잡은 지 20년 세월이 다 되어 간다는 D네 집. 근처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음식점에 도착하여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안도 타다오가 연상되는 독특한 건물이 초록빛 언덕 하나를 독점하고 있었다.


 아파트로 돌아와 주위에 조성되어 있는 바닷가 둘레길을 걸었다. 마치 제주도 바닷가 둘레길을 걷는 듯했다. 바로 앞에 오륙도가 보이고 옆으로는 남편이 다니던 해양대학이 있었던 조도가 보이고 우리가 첫 살림을 살았던 영도가 보였다. 고등학교 흥사단 아카데미 시절 흠모했던 한 학년 위 고교 선배가 살았던 송도도 보였다. 학교에서도 점심시간 선배 교실로 종종 찾아가 교정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집으로 찾아가면 아나고회가 듬뿍 올려진 쫄깃쫄깃 맛있는 회국수 한 대접을 안겨 주곤 했던 선배. 같은 대학 간호과를 졸업했는데 상경 이후 언니를 찾지 못했다.


 대학 2학년 때 시작된 연애이니 D도 남편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지난번 전시회에서 처음 본 D의 남편을 기억한다.

 D가 그린 많은 그림들과 수집해 놓은 도자기 그릇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다육이 화분들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28층 베란다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짙푸른 바다를 보며 차를 마셨다.


 각자가 추구해 왔던 삶, 지금 이 자리, 앞으로의 시간들. 다 내려놓아도 관성처럼 흘러갈 시간들에 대해 딱히 연연 것도 큰 소망을 가질 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을 수용하고 감사하는 일, 차분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일이 우리들의 몫이니까. 부모인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그들의 길을 지금처럼 잘 걸어갈 것이다.


 출신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1, 2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 지역 교사 발령을 받아 바로 교단에 섰던 어린 우리들. 비중 높은 주요 과목들을 맡고 계셨던 학과장 교수님의 편애로 불공평하게 높은 점수를 받은 탓이라고 확신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 둘은 그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하긴 우리 입학 한 해 전에 생긴 우리 과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셨던 교수님이 우리들을 많이 자랑스러워하시긴 했다. 따로 불러 시내에 나가 맥주도 사 주시고.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청년기, 학원탄압으로 어두웠던 시절, 마음속 우울의 우물은 깊었지만 나름 각자의 색깔로 빛나던 찬란한 시간이었다.


 1등으로 졸업한 D는 부산을 지키며 명예퇴직 시까지 교단에 섰고 나는 3년 차에 교사 자격증까지 반납하고 남편 직장을 따라 서울로 훌쩍 떠나왔다. 돌 지난 첫째를 데리고 언니집 가까이 있는 신림동 지하 단칸방으로.

 당시 국립대학교 사범대학은 의무 근무기간 4년을 채우지 못하면 교사자격증을 교육청에 반납해야 했다.


 이제 나는 9개월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오랜만에 둘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다. 밝게 포장할 필요도 어둡게 과장할 필요도 없이 짧은 한마디에도 묻어나는 서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어 주면 되는 것이다. 동지애 같은 신뢰를 느끼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나는 H의 깊어가는 그림 세계, 특출한 예술 세계로의 진입과 몰입을 축하했고 H는 명리학 박사답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생년월일시를 물었다. 정확한 시를 모르는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더니 몇 번의 고려 끝에 나의 출생 시를 時라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73세부터 88세까지 네 기운이 열리는 때야. 큰 어려움 없이 평탄하게 잘 지낼 거야. 재물을 좇으면 오히려 재물이 멀어져 가는 운세인데 네가 재물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쓸 만큼은 충분하게 주어질 거야."

 다가올 노쇠와 퇴락의 시간을 용기 내어 잘 걸어갈 수 있게 힘 실어 주는 고마운 선물이었다.


 오후 다섯 시 반,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 예약되어 있는 장소가 다행히 20분 거리였다. 광안리 음식점 문 앞에 나를 내려 주고 차를 돌려 멀어져 가는 D.

 바로 저 앞에서 저녁 식사에 참석할 서울, 부산 여고 동창 친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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