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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l 17. 2024

 산 자들의 추모

  2024년 7월 11일, 첫기일

 평소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 6시 새벽 미사. 일 년에 몇 차례, 부모님들의 기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참석한다. 올해부터 하루가 추가되었다. 7월 11일, 남편의 기일미사.

 알람을 해 놓지 않았지만 이른 새벽에 잠이 깨었다. 다섯 시도 되기 전, 히부염하니 여름 새벽이 밝아올 즈음, 싸악삭 아파트 마당을 청소하는 경비원 아저씨의 비질 소리와 온갖 새들의 서로를 부르고 대답하는 경쾌한 인사 소리가 창문 너머로 생동감 넘치게 울려 퍼진다. 가벼운 준비를 마치고 여유 있게 성당으로 출발하였다.


 여섯 시 새벽 미사에 빠지지 않고 매일 참석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성당 안이 그득하다. 미사가 끝나고 묵주기도도 마저 끝냈다. 오늘은 남편을 생각하며 고통의 신비 5단과 영광의 신비 5단을 바칠 생각이다. 투병 기간 동안 인내했던 고통을 기억하며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로의 영광을 소망한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서니 아직 성당에 남아 고개 숙여 기도하는 분들이 꽤 많다. 출입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저쪽 뒷자리에서 한 부부가 일어나 내쪽으로 다가온다. 가까이서 뵈니 남편의 친구 부부다. 남편의 절친 대학동창 K 씨 부부. 멀리 강북에서 마음먹고 이 첫새벽에 달려오신 것이다. 며칠 전 다른 친구 부인이 첫 기일을 어떻게 지내느냐고 전화로 물어오길래 대강의 일정을 알려 주었는데 그 편으로 오늘 미사 참여를 전해 들은 모양이다. 너무나 의외의 만남이다. 얼굴을 마주치자 두 분의 눈이 금방 젖어든다. 나도 바로 전염된다. 눈물 머금은 서로의 얼굴을 대하니 마음이 아프다. 새삼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드러난다.


 그분들이 타고 온 승용차로 가까운 브런치 카페로 갔다. 7시부터 시작된다는 카페 앞에 도착한 시간은 6시 58분. 마음에 드는 메뉴를 선택해 셋이 마주 앉았다. 오랜 세월 부인과도 친하고 또래인 그 댁 두 딸들은 우리 집 두 딸들과도 친분이 있다. 온 식구가 같은 가톨릭 교인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2002년 2월, 48세 젊은 남편이 24년 간 몸담아 온 대기업에서 최연소 승진자로 전무가 된 지 정확히 1년 만에 해직당했던 날, 바로 그날 오전, 남편의 전화를 받고 둘이 점심시간에 만났다고 했다. 목소리가 평소와 달라서 무조건 만나자고 했고 만나서는 향후 대책을 의논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중요한 통화를 했다고 회상했다.

 저녁 퇴근 시간에는 밖에서 차 한 잔 하자고 나를 불러내었으니 같은 날 나와 그분이 남편의 의지처였던 것이다. 몰랐던 사실을 뒤늦게나마 새롭게 알게 되니 남편이 더 짠하고 그분이 더 고마웠다. 다른 직장이었지만 같은 광화문 거리에서 40여 년의 직장 생활을 해오며 기쁜 일, 슬픈 일 모두를 시시콜콜 나누며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이다. 사람들과 쉬이 어울리지 않는 남편에게는 서로 아끼는 고마운 친구, 귀한 친구 세 명이 있다. 그중의 한 분이다.


 우리 부부 싸움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었다. 참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그러더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 지난 1년, 매일 친구인 남편을 생각하며 기도했다는 그 우정이 아내인 나의 사랑 못지않게 순수하고 고마웠다. 간혹 셋 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눌러가며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정말 순수한 친구였어요. 분명 좋은 곳에서 평안할 거예요. 사람들이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언제 죽었는가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이야기하잖아요. 조금 일찍 떠난 게 중요하지 않아요."


 치밀한 성격으로 많은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덕에 보고 싶다는 것 외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는 나의 말에 마음이 아주 좋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함안으로 내려갔을 때도 우리 집을 방문하여 삼계탕 집밥을 먹고 말이산고분군과 박물관, 연꽃테마공원, 성당 등을 함께 둘러보고는 잘 지내고 있어서 마음이 아주 좋다는 똑같은 말을 남겼다.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한 순간 시계를 보니 10시 10분, 믿어지지 않는 숫자였다. 3시간 10분이 찰나인 듯 지나갔다.

 시원한 가을날, 다른 절친 부부들과 함께 둘레길을 걷고 맛있는 식사를 같이 하자는 약속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장지에까지 와서 친구의 관을 옮겨 준 네 명의 칠십 대 남자들. 그분들의 비통해하던 어두운 얼굴들이 눈에 선하다.

 다정다감했던 남편도 그 우정에 고마워하고 그들과의 이별을 못내 슬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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