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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3. 2024

 고1 손녀 덕에ᆢ

   크루즈 디에즈와 에드바르 뭉크

 고1, 고3, 두 딸을 키우는 첫째가 고전 중이다. 피 말리는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고3, 우리 집 제일 맏손주 J는 최선을 다해 학업에 전념하고 있다. 지켜보는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중학생에서 올해 고등학생이 된 동생 S는 아직 여유가 있어서인지 다른 문제로 엄마인 내 딸을 좀 많이 힘들게 한다. 교우관계로 많이 속상해하더니 갑자기 미술을 하겠다는 본인의 강한 욕구를 드러냈다. 과히 뒤떨어지지 않는 학업에 열중해 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인의 미술 공부에 대한 욕구를 존중해 주는 것이 그나마 부모로서는 차선책이라는 결론으로 입시전문 미술학원에 등록한 게 서너 달 전이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딸은 많이 힘들어했지만 결론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나도 응원해 주었다.

 "그래, 자식들은 부모 이겨 먹은 힘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 같아."

 부모에게 꺾인 자녀보다 자기 뜻을 관철한 자녀가 더 내공이 강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학창 시절, 내 고집에 번번이 져 주셨던 엄마 생각도 났다. 한두 끼 굶으면 내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시던 엄마. 외할머니 이겨 먹은 힘으로 엄마는 엄마답게 살아온 것 같다는 말로 딸에게 위로를 건넸다.


 며칠 전, 딸이 데이트를 신청해 왔다.

 "엄마, S가 다니는 미술 학원에서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중인 크루즈 디에즈展을 보러 간대요. 오후 1시까지 데려다줘야 하니까 S가 전시회를 보는 동안 우리는 점심 같이 먹어요."

 내가 말했다.

 "우리도 같이 그 전시회를 보자."

 순간 큰애는 조금 난처해하면서 엄마가 학습 현장에 나타나는 건 선생님께 부담드리는 일이라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고 딸인 S도 싫어할 거라고 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되지, 같이 봐야 얘기 나눌 공통의 화젯거리 생기지 않을까?"

 거기다 한 가지 덧붙였다.

 "뭉크展도 하고 있다던데 그것도 보자, S에게도 권해 봐."

 딸은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전개되는 상황에 조금 당황해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에, 한번 물어볼게요."

 잠시 후 답이 왔다.

 "S도 뭉크전을 보겠대요."

 "그래 잘 됐다, 그럼 일찍 가서 브런치 먹고 뭉크전을 먼저 보자."

 휴가를 냈다는 사위까지 합세했다. 넷이서 모차르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고 한가람 미술관 1층에서 뭉크전을, 지하 1층에서 디에즈전을 차례로 관람했다.


 애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노르웨이)는 '절규'라는 작품으로 워낙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번 전시회의 제목인 'Beyond The Scream'처럼 140여 점 작품을 통해 뭉크의 그림 세계가 깊고 넓게 펼쳐졌다. 중간중간 써 붙여 놓은 해설이 워낙 좋아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뭉크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그의 인생관이 깊게 와닿았다.


  아트와 키네틱 아트의 개념과 범위를 확장시킨 색사상가, 과학자의 학문을 적용하는 예술가라는, 다소 낯설게 소개되는 크루즈 디에즈 (Cruz Diez, 1923~2019, 베네수엘라)의 작품은 도슨트의 전문적인 해설을 듣지 않고서는 그 진가를 결코 알 수 없었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 세 가지 색만으로 출력해 낸 프린트물에서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색의 조합을 보게 된다는 색의 간섭 효과와 인간의 눈이 작용하는 보색 잔광 기능으로 인해 일어나는 착시 현상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도슨트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직접 체험하면서 느끼게 해 주었다.

 미술학원 선생님이 아이들을 왜 이 전시회에 데려왔는지 이해가 갔다. 미술 학도뿐 아니라 평범한 일반 성인에게도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을 작가였다.

 두 작가의 작품이 아주 다른 독특한 미술 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서 하루에 두 전시회를 본 보람이 있었다.


 2024년 8월 8일, 목요일.

 딸과 사위보다 얼굴 보기 힘든 고1  손녀까지 삼대가 함께 밥을 먹고 고급문화를 공유한 의미 있는 날이었다.


 *op art

 시각적인 착각에 따라 일어나는 새롭고 환상적인 형태나 공간

 *kinetic art

 작품이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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