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받아 그냥!
전 잘 울지 않아요. 아들이 귀한 집에서 많은 딸 속에 아들로 태어났고 외아들에 그리고 한순간에 폭삭 망해버린 집안에서 평생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나 피해가 오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싸우게 되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하는 걸 알아서 어지간하면 손해 보고 감수하려 합니다.
이런 습관은 사업을 하면서도 도드라지게 나타났던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특성을 아는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혼자 성공했던 저에게 붙어 같이 사업을 하다 책임만 다 넘기고 알맹이만 가져가는 일도 제법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냥 "다시 하면 되지", " 다음에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되지.", " 그냥 혼자 사는데 큰 문제도 없는데 뭐." 이렇게 자기 위안을 해가며 살아오다 결혼을 하고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부터는 정말 생각과 사고에 많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평생을 살아온 제 베이스가 한 번에 바뀌지는 않았고 바로 앞에 글에서 처럼 지인을 도와줬다가 한 번에 지옥으로 빠져버리며 온 가족이 누리던 모든 걸 잃고 다시 맨바닥에서부터 고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해결해 가고 정리해 가고 견뎌 가다 보니 어제는 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날이었고 그래도 조금씩 모아놓았던 현금을 가지고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먹으며 와이프와 술 한잔도 했습니다. 전 술을 마신다고 해봐야 한잔 딱 마시니 남은 술은 와이프가 다 마십니다.
손에서 핸드폰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돈을 안 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고
"가족만 없었으면 그냥 다..." 이렇게 그냥 장난 삼아 이야기 했는데 와이프가 대뜸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였고 다음은 우리에 짧은 대화입니다.
"이제는 그만 참고 살아."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어떻게 다 하고 살아."
"누가 나쁘게 굴면 그냥 때려."
"그럼 감방 가자나. 벌금을 내던지 합의도 봐야 하고."
"그냥 속 시원하게 패고 감방을 가 사식 넣어주고 애도 내가 잘 키우고 있을게."
"너 힘든 거 참는 거 다 아는데 그만 참았으면 좋겠어, 다 혼자 안고 살지 좀 말고 그냥 누가 엎어 씌우면 들이받아 버려. 속에 있는 것들 좀 확 터트리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평생 책임지면서 살아와서.."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라고 나도 같이 이렇게 고생하잖아. 책임 같이 져줄 테니까 이제는 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누가 손해 입히려고 하면 그 손해 상대방한테 다 쑤셔 넣어 주면서 좀 살아. 이젠 너 혼자 아니니까"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도 해본 적 없고 어지간하면 그냥 혼자 다 뒤집어써가면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책임을 나누어 가져가겠다고 하고, 그냥 확 다 터트리고 속 시원하게 살아보라는 와이프의 말에 식당에서 눈물이 쏟아져 버렸습니다.
음... 저 아주 어려서부터 합기도부터 종합격투기까지 제법 오래 수련해 왔고 시합도 작은 시합이지만 좀 뛰었고 선수들 코칭도 하고, 머리도 뭐 나쁘지 않습니다.
사실 그냥 독하게 맘먹으면 저한테 나쁘게 했던 사람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같이 괴롭히고 자폭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럴 거예요 아마도.
그런데 전 생산적이지 않은 행동들을 하는 게 좋지 않아요. 이왕이면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나 역시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일과 행동을 하고 싶어요. 정말 누굴 들이박고 감방에 가는 행동을 제가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서로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람들과 에너지를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에게는 태어나서 가장 힘든 시기이긴 하지만 그만큼 깨닫고 얻는 것이 많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첫 사업을 하며 미친 듯이 성장했던 시기 이후로 아마 인생에서 가장 큰 인격적인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는 시기라고 자신합니다.
저희 성장이 저의 스토리와 제가 하는 일들이 저와 같이 힘들고 이유 없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가 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울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와이프 자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