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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현 Jan 05. 2021

리스트 연주비결은 비밀 피아노

리스트는 어떻게 초인적인 음량을 갖추게 됐나


  19세기 최고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던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어떤 방식으로 피아노 연습을 했을까. 독일계 러시아인인 벨헬름 폰 렌츠(1809~1883)라는 아마추어 음악가가 1872년 쓴 '현대 피아노의 비르투오소들(Great Piano Virtuosos of Our Time)'이라는 책을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있다. 렌츠는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리스트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는데, 책에서 리스트의 연습방법을 전하고 있다.


  리스트는 파리 자택에 피아노 3대를 들여놨는데 그중 1대는 특별 주문해 제작된 것이었다. 리스트는 렌츠에게 "이 피아노로 스케일을 한번 연주하면 다른 피아노로 열번 스케일 연습을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즉 건반을 무겁게 한 연습용 피아노란 얘기다. 정확히 어떤 피아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건반 안쪽에 납을 붙여넣어 무게를 더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말년의 리스트


  무거운 건반으로 연습을 하다가 일반 피아노로 연주를 하면 훨씬 빠르고 유려하게 연주할 수 있다. 마치 모래 주머니를 다리에 달고 달리기 연습을 하다가 모래 주머니를 떼어내고 달리면 속도가 붙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렇게 무거운 건반은 리스트가 손가락 근력을 강화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됐을 것이다.


  리스트는 당시 유행하던 에랄(Erard)사 피아노를 사용했다고 한다. 에랄 피아노는 음량이 크기로 유명했다. 엄청난 음량을 자랑했다는 리스트가 당연히 선호했을 피아노다. 이와 대조적으로 작은 음량의 여성적인 연주를 펼쳤던 쇼팽(1810~1849)은 터치감이 가벼운 프레이얼사의 피아노를 쓰고 있었다.


1842년 한 신문의 만화만평. 리스트의 연주에 귀부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리스트와 쇼팽의 음량 차이에 대해선 쇼팽이 직접 언급한 비교가 흥미롭다. 이 또한 쇼팽을 만난 렌츠가 책에서 전한 것이다. 쇼팽은 자신과 리스트의 연주 스타일의 차이에 대해 "그는 몇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듯 연주한다. 하지만 나는 단 한사람을 위해 연주한다"고 했다고 한다. 리스트와 쇼팽의 피아노 곡을 들여다보면 쇼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젊은 시절 유럽 곳곳으로 연주여행을 다녔던 리스트는 소리가 나지 않는 휴대용 건반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요즘은 아무리 먼 곳도 비행기로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으니 연주여행을 떠나는 연주자들도 이동시간 동안 연습을 하지 못하는데 대한 큰 부담은 없다.


  하지만 마차로 여행을 했던 당시엔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연주자 입장에선 상당히 아까웠을 것이다. 특히 리스트 같은 연습 중독자에겐 마차에서의 시간이 견디가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리스트의 휴대용 피아노는 그의 전용 마차에 고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록 소리는 나지  않지만 리스트는 마차에 앉아서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굴리며 나름의 연습을 계속할 수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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