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vs. 잘 하는 일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 둘 중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는 오랜 논쟁거리다.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개인의 성향이나 여건, 지금까지의 환경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적용 가능한 보편적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의 결과, 나아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사람마다 다르기에 누군가의 정답은 다른 이에게는 오답이 될 수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 남들만큼만 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평범한 것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사회에서 좋아하는 일을 추구한다는 건 어쩌면 사치다. 당장 앞날이 보이지 않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 수 있겠다. 오르는 집값 보면서도 이런 말이 나오냐고, 현실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 이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의 소리를 쫓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순진한 발상일지 모른다.
잘 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잘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실력이 붙어서 자신감이 생기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며, 그러다 보면 삶에도 여유가 생기고 결국엔 그 일을 좋아하게 된다고.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한다. 동시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으면 더 이상 좋지 않다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하고 하루종일 그것만 하는 순간 먹고사니즘의 굴레에 빠져 예전의 좋아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전적으로 존중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면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좋아하는 일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좋아하는 걸 해야 크게 이룬다거나 결국 일과 삶이 일치한다는, 뭐 그런 거창한 목적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원하는 걸 하는 게 좋다는 무책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잘 하는 일이 삶을 충만하고 행복하게 해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늘 공허했다. 잘 하는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정도 받고, 나름의 성과도 이뤄보고, 내가 원하는 기관에 들어가서 일하고 경험하며 직접 부딪혀 보았지만 채워지는 건 없었다. 모든 성취는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빈 자리를 채우려 눈에 보이는 가치들에 더 집착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텅 빈 마음이 채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행복해지지도, 삶의 의미나 만족이 생기지도 않았다.
보다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힘들고 외로운 순간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모든 게 무의미해 보이고 공허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해서 갑자기 하루 아침에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내가 왜 이 일을 업으로 선택했을까, 괜히 좋아하는 대상만 잃어버린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지치고 자괴감에 빠지고 현타가 올 때,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어차피 힘든 순간과 맞닥뜨리게 될 바에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게 낫다. 그런 일이라면 버티면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성과에 집착하거나 결과만 바라보는 대신 그 일을 하는 자체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 잘 되면 잘 되어서 좋고, 안 되어도 과정이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으니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궁극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잘 하는 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도 지금 여기에 살 수 있다. 다만 자기가 무엇을 정말 좋아하는지 모를 수 있고, 안다고 해도 막상 일로 해 보면 내가 그렸던 그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이 부분을 절대 간과하면 안 된다. 그럴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탐색하고 시도하고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다. 시작할 용기, 행동할 용기, 그리고 완벽하지 않을 용기. 세상만사를 풀어가는 핵심 키워드는 '완벽하지 않을 용기'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야 '시작'이란 걸 할 수 있다. 많이들 준비가 되면 시작해 볼 용기가 생길 거라 생각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살면서 그래본 적이 없었다. 시스템이 너그러워지고 사회안전망이 갖춰져 각자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이런 고민을 덜 수 있겠으나, 개인이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건 많지 않고 사회가 달라지기만을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다. 사회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완벽함은, 용기를 주지 않는다.
살아감에 있어 '이거 아니면 죽어도 안 된다'보다는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말지' 정도의 마음가짐이 훨씬 좋은 것 같다. 그렇게 계속 해보는 거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당장 삶이 행복으로 가득 채워지지는 않겠지만, 그 과정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어쩌면 예상 외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