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사는 것도 습관이다.
나는 행복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창 '소확행' 열풍이 불었을 때에도 선뜻 공감하기 힘들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 나에게 그런 게 있던가? 곰곰 생각해보니, 다행스럽게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루키의 말처럼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갓 나온 크루아상이나 치아바타를 찢어서 먹을 때 (원두를 갈아서 바로 내린 커피와 함께라면 더) 기분이 정말 좋다.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도 마찬가지다. 새 옷보다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배어든 갓 마른 셔츠가 더 좋긴 하지만.
그러니 정확하게 다시 표현하자면, 나는 행복감을 굉장히 짧게 느끼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좋은 기분, 편안함, 짜릿함 등 행복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나에겐 '지나쳐간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찰나의 순간 나를 스쳐가고, 빈 자리에는 걱정과 불안이 남는다. 힘든 시간을 더 많이 겪어낸 나의 뇌는 그런 감정에 훨씬 익숙한 나머지 항상 고민거리나 문젯거리를 먼저 찾아 나선다. <감정은 습관이다>라는 책은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습관이 된 사람이라고 해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이 잘 되면 안도도 하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 다른 감정이 아예 들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차선책을 사용합니다. 일단 선호하는 감정이 나타나면 그것을 가능한 한 오래 끌고 가려 하고, 낯선 감정은 빨리 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행복이란 삶과 싸워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었고, 행복에 이르는 하루하루는 차라리 투쟁과도 같았다. 걱정을 내려놓고 지내보려 해도 그 상태가 스스로 어색했다. 행복을 원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마음 편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불편'했다. 그렇게 손에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행복은 점점 멀리 달아나곤 했다. 아마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하여 때로는,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그런 빈곤한 마음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죽일 놈의 행복이란 녀석이, 조금이나마 곁에 오래 머물렀던 시기가 나에게도 분명 있었다. 그 몇 안 되는 시간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금, 여기'에 살았다는 것. 수많은 책과 글, 영상과 명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오늘'에 집중할 때 행복했다. 의도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현재를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행복해져야겠다는 다짐 역시 없었다. 당장 한치 앞을 내다볼 수도 없을 만큼 내게 주어진 삶을 감당하는 게 힘겨웠던 시절이었다. 내일을 걱정할 여력조차 없어서 ‘강제로’ 그저 ‘오늘 하루’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닥쳐오는 그 수많은 오늘들만 살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나아졌다. 아주 천천히, 좋아지고 행복해졌다. 이것이 행복의 비결이었다.
어렵게 손에 쥔 행복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것은 정확히 내가 '오늘의 삶'에서 벗어나고부터였다. 미래를 설계하며 다가올 날들에 대한 고민을 하기 무섭게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온갖 불안과 걱정이 닥쳐왔다. 오늘을 살지 못하게 된 그 순간부터 행복이, 흐릿해졌다. 삶을 감당하기 힘들어 오늘을 살 수밖에 없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맛보고, 그 행복을 바탕으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 조금은 살만해지고 나니 겨우 '내일'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기 무섭게 손 안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행복. 아, 지독한, 정말이지 독한 역설.
이쯤 되면 내가 길고 긴 고난 끝에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깨닫고, 마침내 행복에 통달하여 어떤 대단한 메세지를 제시하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행복해지는 법을 몰라서 안 한다기보다는 알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 하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내가 그래도 '행복했다'며 반추할 수 있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건 구체적인 방법을 익혀 실천했던 덕분이 아니라 그저 어쩌다 몇 차례에 걸쳐 '체험'해본 것에 불과하다.
이 즈음에 이르러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모두가 그렇게 원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그 방법을 찾아 밝히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것. 자존감, 사랑, 돈과 경제적 성공에 대한 균형 잡힌 사고, 걱정이나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 조절 등 행복해지기 위한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행복은 하루하루 일상에 충실한 삶에서 배어난다고, 사소한 행위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거나, 가족이나 친구와 담소를 나누거나, 아니면 혼자서 조용히 산책을 하는 등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을 붙잡아 오늘 하루를 풍성하게 채우라는 소확행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행복에 이르기 위한 차고 넘치는 조언에 나의 몇 번의 '행복 체험'을 더해보면 결국 답은 '지금, 여기'에 사는 데 있지 않은가 한다. 앞서 밝혔듯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적어도 한두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일 테다. 그럼에도 내가, 당신이, 우리가 쉽게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을 바꿔보자.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하나가 아니듯 '지금, 여기'에 살지 못하는 이유 역시 다양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수렴하는데, 하나는 과거에 대한 집착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지나가버린 과거에 머무르고, 다른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만을 바라본다 (혹은 둘 다이거나). 몇몇은 그런 줄도 몰라서, 더 많은 몇몇은 알면서도 어쩌지 못해서. 나 역시 과거를 내려놓지 못하고,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제는 내가 그렇구나 하고 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때때로 내가 모르는 상처와 실체 없는 걱정에 직면하기도 한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마주하고 다루기 참 어렵다. 그러다 보면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걸 자꾸 잊고 예전의 익숙했던 감정으로 돌아가려 한다.
지금 여기에 산다는 건 어쩌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을 바로 본다는 건 내 안에 있는 결핍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닐까. 법륜 스님도 행복은 현재의 자기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다. 그것이 심리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누구나 원하고 바라던 것이 채워지지 않았던 상처와 아픔이 있고 때로 과거를 끝끝내 내려놓지 못하기도 한다. 가지지 못한 것들이 앞으로도 충족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다가올 미래를 설렘보다 불안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보면 결국 행복이란, '지금, 여기'에 산다는 것이란, 태도이자 습관이 아닌가 한다. 삶은 선택 여부를 떠나 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수습하는 과정의 연속이며, 그 수습의 결과인 오늘이 모여 미래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같은 환경일지라도 이미 벌어진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행복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내가 행복하기 그토록 어려웠던 건 결핍에서 기인한 방어기제와 켜켜이 쌓인 시간이 빚어낸, 삶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습관 때문이었다.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알게 되었지만 정작 '어떻게 가야' 할지는 몰랐던 이유도 동일한 맥락에 있다.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경험해보지 않아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없어서, 행복해지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나처럼 오랜 시간이 다져온 삶의 관성을 거스르기 어려운 사람들은 용기를 내야 한다. 과거를 끌어안고 화해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이 결정은 물론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미래를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그것들이 더 이상 나를 해할 수 없음을 기꺼이 믿을 수 있는 용기.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비법이란 게 있다면 이런 용기를 내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한 번, 현재를 살겠노라 다짐해본다.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당장' 하겠다고. 잘 안 되고 익숙치 않고 서툴러도, 일상에 스며드는 행복을 찾고 느껴보려 한다. 예전에는 삶의 코너에 몰리는 와중에 우연찮게 행복을 잠시 선물받은 것이었다면, 이제는 건강한 행복을 향유하고 싶다. 행복을 찾아 쟁취하기보다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그렇게 습관을 들일 것이다. 그것이 하루에 단 한 번일지라도.
전쟁은 끝났다. ‘이 죽일 놈의’ 행복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