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 냄새가 그립다

삭막한 단절의 시대, 우리는 섬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by 의석

태국 방콕에서 일하며 지낼 때 살았던 곳에서 5분 정도만 나가면 큰 강이 흘렀다. 짜오프라야라는 이름(정말 태국스럽지 않나?)의 이 강을 나는 정말로 좋아했다. 걸어서 삼사십 분 가량 걸리던 퇴근길에 강을 슬슬 건너며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밤에 혼자 앉아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산 싱하 맥주를 마시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게 그 당시 삶의 낙이었다.


강변에는 우리로 치면 한강공원 같은 탁 트인 공간이 있다. 매일 이곳을 오가다 보니 처음에는 스쳐지나가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놀이를 하는 꼬마들,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각종 먹거리를 팔고 있는 노점상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무(?) 비슷한 것을 연습하는 학생들 (공원에서 기체조하는 중국 사람들 생각하면 비슷하다),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에 맞춰 단체로 에어로빅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이 에어로빅하는 모습은 나름 장관인데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딱 한 번 구석에서 소심하게 따라해보았다). 정말이지 신기한 건 이 모든 것들이 굉장히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자연스럽다'. 거슬리는 것도, 불청객도 없다. 그것은 그냥 삶 자체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람 냄새가, 숨이 막힐 정도로 시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는 한강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요즘에야 코로나 때문에 덜하다고는 해도 한강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그곳에도 공놀이를 하는 꼬마들이 있고,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치맥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그저 멍하니 강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한강을 좋아라하는 걸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람 냄새 비슷한 걸 맡아본 적은 없다. 분명 여기에도 삶이 있고 사람이 있는데, 사람 냄새는 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자면, 다들 '따로 논다'. 평화로움과 여유가 있을지언정 사람 냄새를 맡기는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그런데 방콕에서 본 사람들에게서는 비슷한 삶의 모습에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풍기는 거다. 야, 이게 대체 뭐지?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날씨? 민족성? 아니면 경제 수준? 지금까지 경험을 톺아보면 대개 동남아 지역과 같은 따뜻한 나라에 있을 때 그곳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걸음걸이에서 드러나는 삶에 대한 태도에서 나도 모르게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 날씨 덕분이든, 민족적 특성 때문이든, 경제 수준의 격차든, 어쩌면 그 전부이든 이런 요소들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차이가 꼭 국경을 넘어야만 발생한다고 할 수도 없다. 어떤 절대적인 조건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사람 냄새 나는 곳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울에도 그런 곳이 없지 않다.


"이 동네 사람 냄새 난다, 여기는 사람 사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장소를 꼽아보면 보통 시장, 골목, 동네 슈퍼나 호프집 등이 떠오른다. 이런 곳들은 공통적으로 소위 '로컬'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변두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전적으로는 가장자리, 사회적으로는 대략 '도심과 떨어져 그다지 중요치 않은 물리적 공간'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 경우에 '변두리'라 하면 자신의 생활공간과 인근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진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기착지) 사이에 위치한 '정서적'인 공간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해 보인다.


시장골목 흑백.jpg 시장 골목에는 갬성이 흘러넘친다


'사람 냄새'는 그 정서적 공간에서 배어나오는 냄새다. 이곳은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자 터전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모르되 완벽한 타인은 아니게 된다.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주 희미하지만 어딘가에 '연결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끈이 사람과 사람, 가게와 가게, 건물과 건물, 길과 길, 그리고 그 모든 존재들 사이를 잇고 있다. 이는 힙플레이스의 특징이기도 하다. 경리단길부터 익선동과 을지로(요즘은 어디?)에 이르기까지, '힙'하다는 공간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 사람과 건물이 단절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장소에 사람의 흔적이 스며들고 사람의 냄새가 짙게 배어든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태국에서 느꼈던 감정도 이것이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정말 희한하고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실재하는 소속감.


그래서 한강에서는 사람 냄새를 맡기 어렵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외엔 어떤 공통점도 없다. 그저 무수한 점과 점(모임 인원 수에 따라 조금 크거나 작을지언정 그게 '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이 모여 있는 그곳에는 그들을 이어주는 '선'이 없다. 모든 점들은 연결되어 있지 않고 각각의 '섬'으로 존재한다. 이런 특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신도시다. 초기의 분당과 일산이 그랬고, 현재 송도나 판교(재미있는 건 초기 분당의 삭막함은 사람의 흔적이 쌓이면서 점차 사라지고, 바로 옆에 새로 생긴 판교가 그 단절성을 물려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종시가 그렇다. 특히 세종시에 출장 가서 느꼈던 건조한 공기를 잊을 수 없다. 정말 깨끗하고, 있을 거 다 있고, 갖출 거 다 갖춘, 편의성으로만 따지면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을 만한 도시였다. 여기 살면 몸은 참 편하겠다 싶은데, 어쩐지 살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건 삭막한 단절감이었다.


스마트폰 잠금화면만 해제하면 몇 초만에 세상에 접속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시대를 살아간다.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는 점점 '연결'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오히려 더 '단절'되어 가는 것 같다. 서울 시내를 걷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풍경에서 나는 서로를 무심히 스쳐가는 메마른 점과 점들을 본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점'으로서 존재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이후 불필요한 자리에서 거리를 둘 자연스러운 명분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현실과는 결이 다른 문제다.


사람들은 '우리'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참 쉽게도 사용하지만, 정작 '우리'라는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된다. 살아남기 위해 잔뜩 움츠려든 채 가드를 올리는 동안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는 갈수록 좁아진다. 그렇게 서로를 잇는 선은 사라지고 서로를 가르는 선만 남는다. 하지만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일까? <나의 아저씨> 같은 드라마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다들 그렇게 서로 이해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관계를 원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관계를 갖는다는 게 그만큼 어렵고, 그런 관계가 주는 따뜻한 사람 냄새를 그리워한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일 테다. 누군가 나에게 그래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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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다가가 위로를 건네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인가


모든 사람은 결국 '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끝내 '섬'으로 남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섬들이 붙어 거대한 대륙이 되기까지는 엄청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정도의 정신적 여유는 없다. 그래도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각자도생의 도시에서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어디서 사람 냄새 좀 났으면, 아니 우리 함께 사람 냄새 좀 피워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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