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이 필요 없는 사람이 있다?

일과 삶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by 의석

유느가 방송에서 몇 차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는 꿈도, 목표도 없다고. 어디까지 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고. 얼핏 목표 하나 없이도 최정상에 오래 머무른 자의 오만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건 일과 삶이 거의 온전히 일치되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방송을 대하는 유느의 진심은 이미 넘치도록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자신이 원하는 일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꽉꽉 채워 살고 있는 사람이 굳이 특별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매년 새해가 올 때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처럼, 여지껏 해왔던 것처럼 매일의 삶에 임하면 충분하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목표가 '없어서' 최고의 자리를 오래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느 유퀴즈.png 유느 당신은 도덕책...


반면 대부분 우리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 의미를 찾아 헤매지만 손에 잡히는 건 없고, 잠에서 깨어나면 눈을 비비며 정신 없이 회사로 향한다. 일과 삶은 일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제에서 나온 개념이 워라밸이다. 워크-라이프 밸런스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여기서 일과 삶은 완전히 독립적인 별개의 개념으로, 이를 간단히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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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둘을 나누는 게 옳은가? 일과 삶의 분리가 과연 가능하기나 한가? 일은 삶에서 뚝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삶의 구성 요소이다. 다시 말해 일과 삶은 분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둘의 관계를 다시 그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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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워라밸'이라는 말은 일단 단어 자체에 모순이 있다. 굳이 어떤 밸런스를 찾고 싶다면 일과 삶의 균형이 아닌 '일과 여가의 균형'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일과 '삶'을 나눌까? 여기에는 '삶'이란 피곤하고 힘겨운 돈벌이를 제외한 그 무엇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혹은 삶에서 고된 노동을 제외하고 싶은 마음의 표출이거나, 좋은 것만 '삶'이라는 범주 안에 넣고 싶은 희망일 수도 있겠다. 이 개념이 외국에서 왔으니 (1970년대 영국에서 시작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일을 삶에 포함하고 싶어하지 않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 듯 하다.


그러나 일은 곧 삶이다. 워크와 라이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혹은 그럴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애초에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아서 적당히 모른 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매일 8시간 (많은 경우 그 이상)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출퇴근과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하루의 거의 절반 가량을 일하는 데 쓴다. 이 시간을 '삶'에서 제외하면 우리의 삶에는 큰 구멍이 생긴다. 이 시간은 나의 삶이 아닌 건가? 일에 들어가는 모든 시간과 비용, 에너지가 나머지(그마저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를 위해 희생하는 거라면, 너무 슬프다.


하루 절반 가까운 그 시간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충만할까? 그렇다고 일과 삶이 복잡하게 뒤엉켜 이도저도 아닌 쩔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자는 건 물론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일과 삶의 일치, 나아가 일이 곧 즐거운 놀이이자 삶인, 그래서 다가올 미래가 설레는 삶이다 (일과 삶의 조화를 뜻하는 워크-라이프 하모니라는 개념이 있지만, 이 역시 일과 삶을 '분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상상해 보라.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당장 내일 해야 할 일로 가슴이 뛰는 삶!


말도 안 된다고 할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당장 나조차도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 살아오는 동안 의문과 회의감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모두가 오늘부터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야근만 안 하면 다행인 세상이다. 한 번만 미끄러져도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사회, 모두가 불안에 떠는 사회에서는 기본적인 안전의 욕구조차 충족하기 힘들다. 삶을 저당잡힌 채로 자아실현이나 일과 삶의 일치를 논한다는 건, 말 그대로 뜬구름 잡는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까.


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알베르 까뮈의 말처럼,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을 매일 쓰레기통에 버려가며 살아가야 하는 삶은 숨이 막힌다. 일을 '피곤하고 힘겨운 돈벌이'로만 여기는 삶에 진정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리라. 그랬다면 애초에 '워라밸'을 찾지도 않았을 테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나의 일'에 대한 욕구가 있다. 나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런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어느 누가 마다할까? 단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찾는 건지도 모르겠고, 찾을 수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헤매며 시간을 보내기엔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나 많기에 못 하는 것뿐이다.


알베르 까뮈.jpg '살아' 있습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괴롭거나 공허하다 하여 당장 그만둘 수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원하는 삶이나 의미 있는 일이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우선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아는 게 먼저고, 그것을 어떻게 '일'로 만들지 (혹은 기존의 일에서 찾든지) 고민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급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그렇게 일과 삶의 교집합을 찾아가다 보면 그 자체로 삶의 의미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한 번 '살아보자'. 의미를 애써 부여하지 않아도 이미 충만한 삶을. 모르는 사이에 '워라밸' 따위 더 이상 개의치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유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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