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빛날 기회를 주는 최소한의 '격'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일하는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일은 보고서를 쓰는 것이었는데, 하나의 문서가 완성되기까지 실제로 '쓰는' 데 들어가는 품은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기획과 생산, 보고와 최종 결재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쩌면 보고서를 '쓴다'는 건 다 이런 것이다. 내용을 만든 몇 배의 시간만큼 편집하고, 보고하고, 까이고, 다시 고치는 것. 이런 일이,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라면 새삼스레 느껴지지는 않으리라.
'A4용지 아깝다'. 빠꾸를 맞고 자리에 돌아올 때면 늘 들었던 생각이다. 이럴 거면 전자결재 체계는 대체 왜 만든 걸까?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다시 가져오라고 할 거면서. 그래, 뭐 마음에 안 들면 깔 수는 있어, 제대로 안 썼으면 당연히 고쳐야지. 그런데 왜 항상 내용이 아니라 형식만 가지고 이러는 거지?
보고서 내용을 논리적으로 문제 삼으면 납득이라도 하겠는데, 줄 간격과 자간, 여백의 크기, 표의 위치 등만 꼬투리 잡기 일쑤였다. 건설적인 토의나 피드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지적만으로도 보고서에 빨간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이런 식의 보고서 반려가 처장과 참모장을 거쳐 지휘관에 이르는 모든 결재 단계(너무나 당연하게도 편집 취향은 각자 다르다)에서 일어났다. 어느 날엔가는 군사보안 지휘서신을 참모장에게 가져갔다. 물론 이미 처장 방에 몇 차례 들락거린 뒤였다. 지휘서신은 부대 지휘관이 휘하 장병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라 그 양식이 보통 보고서와 다르다. 궁서체에 글자 크기도 커야 하고, 종종 근엄함을 더하기 위해 글 전체를 굵게(Bold) 처리하기도 한다. 참모장은 읽어보지도 않고 휘휘 몇 장 넘겨보더니, 빨간 플러스펜으로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까지 선을 하나 찌익 그으며 말했다.
"야 눈이 아파서 못 읽겠다, 이거 굵게 없애고 다시 가져와."
이게 정말이지,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공공조직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뼈에 새겨질 정도여서 전역 후에도 공무원이나 공기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디나 그렇더라. 형식 중심주의, 혹은 '형식 근본주의'라고 하면 좋을까?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었다. 다른 거라곤, 글쎄, 신명조가 휴먼명조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군에 비하면 다른 곳의 문서 편집이나 조직 위계 질서는 양반이어서 오히려 쉬웠다는 것? 비단 보고서 작성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작게는 문서 작성부터 크게는 일과 사업, 때로는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제 내용, 컨텐츠, 본질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껍데기만 잘 씌워서 대충 넘어가는 행태가 만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고서 초안을 검토하며 "아 이렇게 쓰면 어떻게 읽으란 거야"라고 나지막히 내뱉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최소한의 형식도 갖추지 않은 보고서는 읽고 싶지 않더라. 내용을 보기도 전에 줄 간격과 들여쓰기부터 거슬리더라. 이게... 나에게는 제법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극혐하더니 어쩔 수 없이 물들어 버린 건가? 나도 어느새 꼰대가 되어 버린 건가?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왜 '읽고 싶지도 않았'을까? 형식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건가? 그저 꼰대질의 표상인가? 보고서는 물론 프레젠테이션부터 이력서에 이르기까지, 일단 예쁘고 깔끔하게 만들어야 눈에 들어온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눈에 안 들어오면 읽고 싶지도,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게 사람 마음이다.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본질의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다만, 형식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둘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않나. 형식이 내용 자체를 바꾸지는 않더라도, 일의 결과를 좌우할 수는 있다.
이는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적용 가능하다. 몽골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승합차에 몸을 싣고 지방으로 내려가다 먼지 날리는 휴게소(말이 휴게소지 그냥 작은 식당 한두 개 있는 쉼터)에서 요기를 했다. 몽골은 양고기를 매일 먹는 걸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라인데, 예를 들면 양고기 국수, 양고기 만두, 양젖으로 만든 밀크티로 한 끼를 구성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그 날도 어김 없이 양고기를 먹는데 도저히 차까지는 못 마시겠어서 대신 마트에서 사 둔 포도쥬스를 밀크티 잔에 따라 마셨다. 밥공기나 막걸리 잔 생각하면 딱 비슷한데, 여기에 밀크티를 담아두면 정말 막걸리 느낌이 난다. 쥬스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니 마치 막걸리 잔에 담긴 레드와인을 보는 듯 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사발에 와인, 이 형언할 수 없는 부조화는 뭐지? 와인의 맛과 향, 심지어 '와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마저 순식간에 와장창 깨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막걸리가 낫냐 와인이 낫냐를 따지는 게 아니며, 와인이 막걸리보다 좋은 술이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술과 잔의 어울림, 내용과 형식의 조화에 대한 이야기다. 막걸리 잔에 와인을 담는다면? 반대로 와인 잔에 막걸리를 담는다면? 와인은 더 이상 와인이 아니고, 막걸리 또한 더 이상 막걸리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 하나라도 변한 게 있던가? 와인이나 막걸리가 상하기라도 했나?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다른 잔에 부어졌을 뿐이다. 본질은 그대로임에도 우리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같은 술인데도 맛과 향을 다르게 인식하고, 그 술을 마실 때 특유의 분위기와 이미지가 사라진다. 각자 어울리는 잔에 담기지 않은 술은, 그 가치를 오롯이 인정받지 못한다.
내용이 선물이라면 형식은 포장이다. 포장지가 선물보다 중요할 리는 없겠으나, 그게 곧 포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대로 되지 않은 포장이 선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가 하면, 작은 리본 하나 달았을 뿐인데 충분히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뿐인가.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옷차림의 중요성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요한 면접이나 미팅을 앞두고 집 앞 편의점 가듯 입는다면? 나는 능력 있으니까, 모든 면접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니까, 미팅 준비가 완벽하니까 괜찮을까? 흐트러진 머리에 츄리닝 차림으로 소개팅에 나가보는 건 어떨까? 내가 준수한 외모와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한들, 상대가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의 플레이팅도, 말끔하게 정돈된 호텔 방의 하얀 이불도 마찬가지다.
내실을 다지고 본질을 추구하는 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지 않으면 내용을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려한 조명으로 감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 보이려 애쓰거나 굳이 거짓을 가할 필요도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완전한 아름다움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춰야 한다. 세상은 이런 형식을 격식, 양식, 매너, 센스, 스타일 등으로 바꿔 부른다. 적어도 다른 이들이 포장을 뜯고 박스를 열어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들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