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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11. 2024

한결같음의 미학

러닝이 나에게 알려준 것들

"평판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거야."


평소 불만을 쌓고 있던 이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누군가 무심하게 툭 던진 말에 머리를 띵-맞은 듯했다.

맞아.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지만.. 그만큼 양면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게 또 인간이기도 하니까.

뭐든지 한 가지라도 꾸준히 오래 보아야 그 진 면모를 알 수 있으니까.




러닝을 시작한 지 어언 9개월. 막 시작했을 때보다 월등히 빨라진 속도가 나 자신도 체감되어서 뿌듯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단순히 돈이 안 드는 운동이라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점점 빨라지는 달리기 속도한 번에 달릴 수 있는 킬로 수에 성취감도 들고, 스트레스도 풀렸다.

생각보다 이 운동에 진심이 되어버린 내 모습에 신기하기도 하면서 새삼 같은 일 한 가지만 꾸준하게 했음에도 느껴지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1. 건강한 신체와 체력

운동을 꾸준히 했으니 당연히 체력도 높아지고 건강해진 게 느껴진다. 체지방도 많이 빠졌다. 초반에 러닝 할 때보다 훨씬 몸이 가벼워진 게 느껴진다.


2. 생각 정리와 마음적 여유 확보

러닝을 한번 하면 기본 5킬로씩 뛰는데, 1킬로가 넘어가면 심장박동이 일정해지면서 헐떡이는 숨이 잦아들게 된다. 일정해진 호흡을 느끼며, 떠오르던 수만 가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퇴근 후 지독히도 쫓아다니던 업무 걱정들이 엑셀 피벗테이블 적용하듯 말끔하게 정리된다. 아니, 정리가 되지 않아도 그냥 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 "내일 되면 내가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뭐 어때, 지금의 나는 열심히 뛰고 있고.. 기분도 너무 좋은데."라는 근심가득이던 생각들이 러닝이 주는 세로토닌으로 흐릿해져 간다.


사실 엄청 대단한 것처럼 적어놨지만, 다음날이 되면 쳇바퀴 굴러가듯 다시 힘든 현실은 반복되고 러닝은 순간의 도피처만 되어줄 뿐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운동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인생은 100m 단거리로 끝나는 게 아니라 5k, 10k 어쩌면 더 길게 지속되는 마라톤이라는 점이다. 초반에는 죽을 듯이 가쁘게 쉬어지던 숨도 1킬로가 지나면 일정해져 편안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불행과 행복이 반복되는 등락이라는 점을.


사회나와서 친해진 한 친구가 있는데 그도 정말 볼 때마다 한결같다. 무표정한 얼굴, 절제된 표현. 말 수가 너무 적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측이 어렵고 가끔은 답답하기까지 하다. 사람들과 유대감을 얻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나로서는 서운함과 불만이 쌓일 때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세하지만 그의 다채로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표정한 얼굴이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상황에 따른 작은 표정 변화나 늘어난 말 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속에 쌓여있던 불만이 서서히 그에 대한 이해로 소화되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생각은 한번 고정되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나긴 시간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인식이 변할 수도 있구나. 그간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러닝이라는 운동 하나를 꾸준히 하며 얻은 다양한 결과처럼 사람 똑같이 한결같아 보여도 그것은 결코 다양하지 않다는 뜻 아니라는 점.

마라톤 같은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길 하나를 달린다고 생각해도 그 속에는 수많은 돌부리와 흙내음이 섞여있듯이 사람 한 명을 보아도 다양한 마음과 역동적인 이면들이 숨어져 있다는 사실이, 약 9개월간 러닝이라는 운동이 나에게 알려준 뼈저린 교훈이자 선물이었다.


그러니 스스로 제한하지 말자. 그리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서로를 보며 시원한 물도 건네주고 응원해 줄 수도 있는 넓은 아량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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