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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Nov 07. 2023

모든 별이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차 한 대가 주유소로 들어온다.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면서 두 주인공 ‘주느비에브’와 ‘기’의 대화가 이어진다. 결혼해서 파리로 떠난 후 쉘부르로 돌아온 건 처음이라는 주느비에브.

“잘 지내는 거지?”

“그럼 잘 지내.”

영원히 기다린다며 노래하던 여주인공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들은 어색하게 재회를 나눈다. 각자의 인생을 보여주듯 주느비에브는 떠나고 기는 다른 방향을 향해 환하게 웃는다. 주유소로 돌아오는 아내에게 입을 맞추고 포옹하며 아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내리는 눈은 긴 여운과 함께 그칠 줄 모른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다시 봤다. 내가 좀 더 젊었다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이별 때문에 그들의 사랑도 변했다. 한 때는 서로 열정적이었던 첫사랑. 지나간 시간은 그들 속에 녹아 있고 주고받는 대화는 평범하기만 하다.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시간은 각각 삶에서 새롭게 이어진다.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마음이 애잔하다. 프랑스 감성의 화려한 영상미와 아름다운 음악은 이 영화를 잊지 못할 고전 영화로 만들었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한 사람을 만나 온 세상이 상대방으로만 채워질 때 우리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경험한다. 호르몬만으로 설명하면 사랑은 생물학적, 화학적 현상일 뿐이며 그 시한이 2년 정도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 후는 어떻게 될까.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힘들까.

‘쉘부르의 우산’에서도 순수했던 그 사랑은 결국 현실적 문제를 뛰어넘지 못했다. 사랑은 변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우리 삶에서 사랑을 빼놓을 순 없지만, 에로스적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다. 두 사람이 우정과 같은 사랑, 헌신적인 아가페적 사랑으로 나아가게 되면 사랑은 훨씬 성숙해진다.

CS 루이스는 서로가 자신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랑을 ‘필요의 사랑’이라 했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기에 그런 사랑만 찾는다면 허무감이 따라올 것이다. 사랑이 ‘필요의 사랑’만이 아닌 ‘선물의 사랑’으로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열, 용서와 이해 등 수많은 시간이 녹아있는 사랑의 울타리를 선물 같은 사랑으로 채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삶 속의 사랑은 딜레마다. 인생이 별거냐며 마음 닿는 대로 살라고 한다. 말초적인 감정을 마음껏 허락한다.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사랑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사랑을 지키려는 의지에 따라 주체인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가 나타난다. 사랑이 움직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사랑을 지킬 것인지 말 것인지는 오로지 신이 주신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뒤따르는 책임과 함께 말이다.


‘모든 별이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당신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 노래가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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