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모든 촬영이 끝났다. 4개월 전부터 시작한 단편영화 프로젝트의 큰 고비는 넘겼다. 미장센, 롱테이크 등 영화 용어를 배우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실제 촬영에 대한 기대는 말할 수 없이 컸다. 촬영 전날, 감독은 여름철 촬영의 성패는 매미 소리에 달려 있다고 했다. ‘설마 그럴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장면을 찍을 때마다 그 소리를 신경 써야 할 줄 꿈에도 몰랐다.
첫 촬영일은 맑은 날씨에 몹시 더웠다. 예상대로 매미 소리는 심각했다. 누군가가 “아, 불청객!”이라며 한마디 한다. 주인공의 혼잣말 연기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 오죽했으랴. 소리가 약해지자 버스 정류장에서 주인공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촬영이 이어진다. “컷!” 다시 한번 영상을 찍는다. 이번에는 드론 카메라가 따라간다. 매번 장소를 옮길 때마다 그 소리를 의식해야 한다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둘째 날에는 비가 왔다. 아침 일찍 촬영 장소인 도시 외곽으로 이동했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모두 말이 없었다. 하루 내로 마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덕스러운 날씨와 싸워야만 했다. 일단 실내 촬영을 먼저 하고 비가 그치면 야외로 나가기로 했다. 촬영을 맡은 나는 카메라 장비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들어 올릴 때마다 끙끙 소리를 냈다. 체력과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비가 그치면 어김없이 불청객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실내와 밖을 오가면서 저녁 늦게까지 영상을 찍었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영화제작 과정의 추억과 함께 매미 소리는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길을 가던 중이었다. 매미 한 마리가 인도 위에 보였다.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는 모습이 보기에 영 불편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길 가 여기저기에 있지 않은가. 촬영 때는 그렇게 싫었던 매미가, 죽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심란했다. 도로 한가운데 있는 매미를 가까스로 집어서 가로수 밑으로 옮겼다.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매미들이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수컷은 울기 위해 몸의 절반이 비어 있으며 종족 보존을 위해 그런 극단적 진화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곤충의 일생이 얼마나 슬픈가를 연민이 섞인 목소리로 한동안 설명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매미의 허물 벗는 영상을 찍은 적이 있다. 그리고 대단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잊지 않고 블로그에 게시했다. 한편으로는 나무 주변에 흩어져 있는 허물이 징그러웠다. 텃밭 정리하다 굼벵이를 발견해 놀라기도 했다. 소리가 시끄럽다고 마당의 자작나무를 마구 흔들던 아들도 떠올랐다. 그 소리 때문에 신경증이 걸릴 것 같다며 한동안 매미를 원수로 여겼다. 때로는 호기심으로, 때로는 싫어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여름철마다 매미와 마주했다.
단편영화를 찍으며 곤충 중 하나라고만 여겼던 매미의 일생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알에서 유충으로, 탈피 과정을 거쳐 성체가 되기까지. 위험한 모험을 기꺼이 택했다. 인내와 고통, 그리고 희열로 이루어진 열정적인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매번 변태를 과감히 시도하는 매미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되새기게 했다. 비록 우리 집 뜰에서 태어나고 생을 마감했지만, 그들은 본질만으로 존재의 의미를 가득 채웠다. 기다림으로 묵혀온 마음은 계절이 지치도록 사랑을 찾았다. 그리고 때가 되어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났다.
가을은 다가오고 막바지 매미 소리가 애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