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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Sep 13. 2023

Venus의 독백

한때 일몰 후 내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렸지. 바쁜 저녁 시간이라 해도 하늘에 떠 있는 나를 가리키며 예쁘다고 했어. 차 안에서, 공원에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면서 나를 쳐다봤었지. 한동안 하늘에 내 모습이 보이면 ‘저 별이 뭐지?’라고 서로에게 묻곤 했지. 어쩌다 초승달이 곁에 있을 때는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고 사진도 엄청나게 찍어댔어. 우쭐했지. 넓고 넓은 하늘에서 늘 외로웠는데 관심받을 때는 어찌나 기분 좋던지. 


그녀를 알게 된 건 그때쯤이야. 그날따라 노을이 정말 예뻤거든. 많은 사람이 그 광경을 보느라 야단법석이었어. 해가 완전히 지자, 사람들은 한둘 눈을 떼더니 바삐 발걸음을 옮겼어. 내가 검푸른 하늘에 등장해도 힐끗 쳐다보고는 금방 고개를 돌려버리더라. 석양의 위력에 잠시 움츠러들었지. 그런데 강가에 어떤 여자가 혼자 앉아 있는 거야. 노을을 보던 그녀는 시간이 지나도 가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오랫동안 말이야. 눈이 마주쳤는데 아니 글쎄 그녀가 울고 있더라. 내 눈에 뭔가 비춰서 보니 그녀의 눈물이었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어. 잘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코끝이 찡했지. 그저 나처럼 외로운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랐어.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났던 거야. 고요한 새벽에 바로 그 강가에서. 노을만 좋아한 게 아니었어. 여명도 좋아했던 게지.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 사람들은 서쪽 하늘에 보였다가 갑자기 새벽 동쪽 하늘에 나타나는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똑같은 존재라는 걸 알고 나면 그저 신기해할 뿐이야. 그런데 그녀는 제대로 알고 있는 듯했어. 하늘에 빛나는 나를 보고 살짝 웃었어. 커피 향이 내게까지 전해오는 느낌이었지. 석양에 울고 있던 그녀가 아니었어. 한결 마음이 밝아진 것 같았지. 나에게 오랜만이라고 손을 내밀었어.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였지. 그녀가 샛별 유치원, 효성초등학교 출신이라며 나와의 만남이 숙명이라고 했어.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건넸던 것 같아. 효성이 나의 딴 이름이라는 것도 알려줬지. 그리고 유명한 소설가를 떠올리며 내가 개밥바라기별이라고 불리게 된 사연도 들려줬지. 그녀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새벽이라 나를 봐준 사람이 없다고 서운했던 마음이 다 사라졌지 뭐야. 무엇보다 그녀를 다시 만나 행복했어. 그리고 그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걸 알게 되었지. 


인간들은 참 이상해. 한밤중에 내가 안 보인다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어. 보이는 것만 믿으니  말이야. 깊은 밤에는 보이지 않아. 신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어. 나는 사람들과 아주 멀리 있어도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지. 사실 얼마 전에는 그들과 가장 가까이 있었는데 눈에 안 보인다고 금세 나를 잊어버리더라. 인간들은 진정한 사랑을 몰라. 그러면서 온갖 사랑을 들먹이며 살아가고 있으니 참 이해할 수가 없어.


아, 여명이네? 해가 곧 떠오를 거야. 그러면 내가 안 보이겠지. 그래도 난 하늘에 떠 있어. 마음으로 보면 다 알 수 있지. 아마 그녀는 알 거야. 그래도 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서로 사랑해.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그녀는 알아볼 거야. 순수한 사랑이란 그런 거지. 그녀가 사랑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 정말 기뻐.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고 모두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같아. 여명의 경이로운 모습에 모두 감격할 필요는 없어. 아까 괜히 투덜거렸네? 그래도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게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야.


내일이면 저 달도 더 가까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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