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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디터 Feb 16. 2021

손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전시, 세화미술관 <손의 기억>

느리고 꼼꼼한 손의 미학을 담아낸 전시, 이게 무료 전시라구요?

지금은 공연이 뗄레야 뗄 수 없는 취미생활이 되어버렸지만, 공연은 스스로 찾아다닐 수 있는 성인이 된 이후에 좋아하게 된 분야였다. 그보다 더 일찍 접했던 것이 미술전시회였는데, 너무 어렸을 때라 유명한 작가 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족과 함께 전시장을 다녀오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많은 횟수는 아니었지만 전시장 안에서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는 그 순간을 그저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다닌 전시장은 물론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한정적이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혼자 이것저것 찾아서 가볼 만큼의 나이가 되자 서울만 해도 얼마나 많은 갤러리와 전시장이 있는지 알게 됐다. 나름 다닌다고 다녀봤는데도 아예 처음 들어보는 갤러리들도 있었고, '아 거기가 무슨 미술관이라고 했는데 다음에 가봐야지' 해놓고는 까맣게 잊어버린 경우들도 있었다.

해머링맨

이번에 다녀왔던 세화 미술관도 그렇게 지나친 장소중 하나였다. 씨네큐브가 있는 건물에 있다는 것, 너무 커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해머링맨 작품이 있는 곳 이외에는 알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꽤 좋은 전시를 많이 열어왔던 미술관이었다. 해머링맨 이외에도 사옥 로비나 밖에 설치되어있는 작품들이 많고 대게 모두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1. 기획의도의 명확성

그중에서도 지금 열리고 있는 <손의 기억> 전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전시장 안에 쓰여있는 글을 촘촘히 읽는 스타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오디오 도슨트를 꼭 듣곤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잘 듣지 않는다. (현장 도슨트 시간을 맞추어 가기는 하지만 부러 오디오 도슨트를 챙겨 듣지는 않는다) 전시장에서 접하는 정보와 상식들은 아무리 메모하고 필기해도 오래 남지 않아서다. 그 시간에 작품을 보다 오래 보고, 좋은 영향을 주는 작품들을 기억해놓았다가 찾아보는 편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렇지만 모든 전시장의 입구에 쓰여있는 기획의도에 대해서는 챙겨 읽는 편이다. 전시의 기획의도가 작품들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왜 이 전시를 기획했고, 뭘 느끼길 바라고, '이 전시는 한마디로 말하면 네모다' 이렇게 명확하게 써져있는 전시는 드물었다. 더러는 작품을 먼저 선정하고 기획 의도는 끼워 맞춘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전시도 있었다. 반면 <손의 기억> 전은 몹시 명확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사람의 손이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던 사회가 병들어 버린 지금, 잃어버린 손의 노동, 창작행위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_기획의도 中


<손의 기억> 전은 주로 섬유 매체를 재료로 삼고, 손으로 시간을 쌓아가는 수공예적, 수행적 방식의 창작 과정을 공유하는 전시다.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던 예술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본다는 메시지가 아주 명확하고, 작가들의 작품들로 그 메시지를 한번 더 증명한다.


2. 시선을 잡아 끄는 개성 있는 작품 구성

<손의 기억> 전이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역시 작품의 매력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자주 접하지 못하던 콘셉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최수정 작가의 <초상 풍경> 시리즈 작품들이 그러했다. 동굴이 주는 느낌을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다르게 보면 애니메이션처럼 담아낸  사진  작품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실제 인물에게 받은 이미지를 선으로 표현해 그림에 넣었다.


사진 속 정문열 작가의 <소리의 나무> 역시 인상적이었다. 좀 더 큰 공간에서, 웅장하게 미로처럼 작업해 놓아도 재밌을 것 같은 작품. 아바타 속 나비족이 신성시하는 소리의 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소개글을 읽지 않아도 그런 느낌이 절로 연상된다. 광섬유를 사용했고,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관람객이 지나갈 때 반응하도록 되어있다. 작품을 만나는 순간, 마치 숲 속에서 자연을 감상하듯 광섬유 불빛들을 넋 놓고 감상하게 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은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낀 포인트들을 기술한 것이고, 전시는 총 5명의 작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손의 노동에 가치를 두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인 만큼, 기획의도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전시가 끝나기 전에 방문해서 작품의 매력을 느껴보면 어떨까. 전시는 무료로 2월 28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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