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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디터 May 28. 2022

내 인생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뮤지컬, 차미

마음이 혼란한 시대에 꼭 봐야할 공연

종종 가보지 못한 길을 그리워했다. 나와 달라서 부러워하던 삶의 모양들로 가지 않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겁이 많은 탓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그 삶들을 '진짜로' 원하던게 아니었음을 알게됐다.


세상에 좋아 보이는 모든 것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아쉽게도 그림자 없이 본체만 골라가질 수 있는 법은 없다. 이 당연한 진리를 잊고 살다가 최근 뮤지컬 <차미>를 보고 떠올리게 됐다. 그제야 좋아 보이던 다른 삶으로 나아가지 않았던 것은 그 삶의 그림자까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걸 알게됐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지금의 삶을 좋아한다는걸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뮤지컬 <차미>는 '난 왜 이럴까' 생각하고 의기소침해 하는 주인공 차미호가 일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 업로드 한 본인의 SNS계정(CHA_ME)에서 만족감과 위로를 얻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눌러주는 좋아요 표시를 보며 위로 받는 미호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 사진까지 자기 사진인 것처럼 포스팅하게 된다. 그러던 중 SNS 속 미호가 눈앞에 나타나 네가 원하는 것들을 가지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미호는 차미를 통해 남몰래 짝사랑하던 선배 진혁과의 연애도 손쉽게 이루고, 취업에도 성공하며 탄탄대로를 걷는다. 뭐든지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자신과는 달리 꽃길만 걷는 차미를 보며 미호는 생각이 많아 진다. '이대로 괜찮은걸까?'


이 생각의 파도를 잡아 잔잔한 물결로 바꾸어주는 건 미호를 오랬동안 보아왔던 친구 김고대다. 고대는 미호라는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에게 없는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미호의 자존감지킴이가 되어준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는 있다. 하지만 고대는 미호가 자신의 그림자로 느끼는 점과 상관없이 차미호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한다. 그런 고대의 진심에 힘입어 미호는 만들어낸 차미의 모습이 아닌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발걸음을 떼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차미다. 미호가 만들어낸 워너비의 허상. 차미는 미호가 스스로를 사랑하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호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런 캐릭터의 방향성이 마음에 들었는데, 자칫 빌런으로 가게될 수 있는 인물까지도 그렇게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공연에 빌런은 없다. 그 덕에 관객들은 엄한데 감정을 쏟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된다.




극장을 나서며 결심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양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노력해보겠노라고. 공연을 보러 극장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마침 그 양면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고, 손해보는 일은 하지말라고 누누히 이야기했건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매번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고 화가 나기도 했다.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은 위로를 받기는커녕 나를 화나게 했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낄 것만 같아 마음이 쓰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저 마음의 근원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바꾸려고 했던 생각이 빚어낸 결과였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좋은 것만 겪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잘못되었다 말하기는 어렵겠으나, 한편으로는 내가 그 사람의 좋은 것만 받아들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나 고민하게 됐다.


공연 속 고대는 미호에게 너가 생각하는 만큼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닐까 걱정된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자 미호는 더 나은 네가 아니라 그냥 너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미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잘난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왔던 인물이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고 받아들이는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깔끔한 영상과 무대 디자인. 일상 속에서는 이상해보였을 부러 연출한 과장된 몸짓과 노래들도 이 무대 위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우러졌다. 웃음바다가 된 관객들을 보며 시종일관 웃음이 터질법도 한데 각자의 자리에서 중심을 잘 유지한 네명의 배우들도 멋졌다. 이래서 내가 공연을 참 좋아한다. 불편한 의자에 2시간동안 몸을 구겨넣어야 한대도 극장을 떠날 수 없을만큼!



공연정보

기간 : ~2022.7.16.

장소 : 혜화 플러스씨어터

출연진 : 유주혜, 이아진, 홍나현, 이봄소리, 정우연, 홍서현, 이채민, 조풍래, 기세중, 안지환, 황순종, 박영수, 고상호, 진태화, 차서원

관람시간 : 110분 (인터미션 없음)

기타정보 : 두번의 트라이아웃, 초연을 거쳐 2022년 재연 순항중

매력점 : 이 공연에는 빌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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