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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ttie Jan 13. 2023

학교 폭력의 기억

학교 폭력을 주된 모티브로 한 드라마가 방영이 되면서 자연스레 내 학창 시절의 학교 폭력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 전까지 나는 평범한 학생 중에서도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얼짱문화의 영향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얼굴과 몸매 평가가 매일같이 이뤄지는 시기였다. 나는 얼짱이 될만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얼짱이라고 소문난 친구들을 향한 은근한 부러움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소위 일진 혹은 노는 무리에 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내 글짓기 반에서 글 쓰는 걸 좋아하며 하교 후 단짝 친구랑 방방을 타거나 떡볶이를 사 먹는 생활을 즐기던 대한민국 평균 초등학생이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내 단짝이었던 B는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하던 여학생이었다. 적어도 6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B는 선천적으로 마른 체형이었는데 6학년이 되면서 키가 부쩍 커지고 늘 쓰던 안경을 벗고 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하며 학교에서 숨은 얼짱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자연히 학교 내 쿨한 얼짱 무리가 그녀에게 접근했고 그녀 역시 갑작스레 높아진 학교 내 자신의 위상이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와의 우정을 버리기도 미안했던지 새롭게 어울리게 된 얼짱 무리에 나를 초대하곤 했다. 


우리 학교의 얼짱무리는 그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문제시됐던 일진 무리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딱히 폭력을 저지르는 것 같지는 않았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욕을 잘하고 함께 모여 노래방에 잘 다니는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의 그룹이었다. 가끔은 술을 먹는다거나 담배를 피운다는 소문만 들리는. 그래도 겉 보기에 어떤 위압감은 딱히 없었고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나랑 잘 놀던 친구들도 그중에 몇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별다른 두려움 없이 B와 함께 얼짱 모임에 따라다녔다. 예쁜 친구들과 같이 다니니 나도 얼짱이 된 것만 같아서 속으로 괜스레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루는 얼짱모임 멤버 중 한 명의 부모님이 멀리 여행을 가셔서 그 집이 하루 빈다고 얼짱무리 여학생들끼리 밤을 새우며 놀자는 제안이 왔다. 엄마는 나보고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옆 동이었고 내가 조르고 조르자 결국 허락을 해주셨다. 엄마는 그럼 그날 밤을 새우게 될 여학생들 얼굴이나 보자고 저녁 식사 초대를 해주셨고 모두가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집엔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엄마가 나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기 전까지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자로 일을 하셨고 나 역시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이미 피아노 학원은 그만둔 후였지만 집에서 꾸준히 연주를 계속해 아직까지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상태였다. 친구들은 우리 집에 있는 피아노를 보고 나보고 피아노를 칠 줄 아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 후 바흐의 인벤션 곡 중 하나를 연주했다. 그리고 모두가 다 같이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옆 동 친구 집으로 가 밤새 수다를 떨었다. 


내 학교 폭력의 역사는 그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단짝 친구였던 B가 나를 보는 눈빛이 어딘가 이상했다. 뭔가 불쌍히 여기는 듯한 연민과 동정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함께 밤을 새 놀았던 얼짱모임의 모든 여학생들이 나를 본체만체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애초에 나는 얼짱무리에 속했다기보다는 잠시 초대받은 정도였기에 이제 더 이상 나와 어울리고 싶지 않은가 보다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자 상황은 조금 더 심각해졌다. 얼짱무리 여학생들의 남자친구인 아이들이 내가 학교에서 복도를 걸어갈 때마다 욕을 하기 시작했다. 덩치 큰 남자아이들에게 경멸의 눈빛과 함께 욕을 듣고 나니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공포감이 밀려왔다. B에게 너는 뭔가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말해줄 수 없다는 말로 응수했다. 궁금증은 오래 지나지 않아 악몽 같은 현실로 다가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짱무리 안에 묘한 서열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 무리 속 가장 대빵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H였다. H의 언니가 초등학교 졸업 전에 나와 같이 글짓기반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H보다도 H의 언니와 더 안면이 있었다. H의 언니는 그야말로 모범생의 전형으로 전교 상위권 성적에 글도 잘 쓰고 상냥한 성격의 소유자라 모든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H는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공부를 꽤 잘했고 언니 덕에 선생님들의 신임을 쉽게 얻었으며 예쁜 얼굴로 얼짱무리에서도 유독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H가 우리 반에 찾아오더니 나를 불러냈다. 밤샘파티를 하며 놀았던 날 내가 한 말이 거슬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H에 따르면 내가 H가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꽃미남 남자가수를 닮았다고 놀렸고 남자를 닮았다고 해서 자신의 기분이 매우 상했다고 했다. 그건 내가 말한 게 아니라 얼짱모임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한 말이었잖아.라고 답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역시 소용이 없었다. 몸 조심하라는 경고를 마치고 H는 물러났고 나는 H가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졸업까지 남은 반년의 시간 동안 매일 학교에 가는 게 지옥이었다. 얼짱무리와 마주치기 싫어 남들보다 일찍 등교하고 늦게 하교했다. 다행스럽게도 신체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얼짱무리는 다른 모든 방법으로 내 피를 말리듯 괴롭히기 시작했다. 조롱, 욕, 째려보기, 소리치기, 수군대기. 

하루는 점심시간에 내 자리에 앉아 휴식 중이었다. 갑자기 얼짱무리가 우리 반에 들이닥치더니 그들에게 찍힌 다른 여자 아이 한 명을 불러냈다. 복도에 얼짱무리가 그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H가 그녀에게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론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저 아이 다음은 나일까? 거의 일곱 번의 따귀 때리는 소리가 끝나고 그 여자아이는 벌게진 얼굴로 울면서 교실에 들어왔다. 나는 심장이 두근댔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얼짱무리가 그 여자아이의 뺨을 일곱 번이나 후려치던 장소는 우리 반 바로 옆 복도이자 교사연구실 바로 앞이기도 했다. 대체 선생님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저 아이가 얼굴이 벌게진 정도로 맞는 동안 교사들은 어디에 있었나? 아무도 선생님들에게 이르지 않은 걸까? 하기사 나 역시 왕따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동안 선생님들에게 말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교사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H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다음 차례가 나일 것 같아 몸이 동상처럼 굳어져 앉아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얼짱무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했고 나는 끌려가 뺨을 맞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B와는 그 사건 이후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다. B는 내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얼짱무리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뺨 때리기 사건에 대해 물었을 때도 B는 그 여자아이가 맞을만한 짓을 해서 맞은 거라는 답변을 했다. 그렇구나, 12살짜리 여자애가 다른 12살짜리 여자애에게 맞을만한 짓을 해서 뺨을 일곱 대를 맞는 일이 당연한 거구나. 


참 다행스러웠던 건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내 곁에 남아준 친구들이 있었다는 거였다. 얼짱무리의 행동에 동조하지 않는 아이들, 얼짱은 아니지만 평범하고 평화롭게 학교생활을 하던 친구들 중에는 얼짱무리가 나를 왕따 시킨다고 해서 함께 나를 피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평소에 나하고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체육시간이나 쉬는 시간마다 내 곁에 있어줄 때마다 나는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더구나 B와 친하게 지내느라 나를 좋은 눈으로 바라봐준 아이들이 있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몇몇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는 몇 달을 버텼고 결국 지긋지긋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얼짱모임을 포함한 친구들 대다수는 모두 서로 다른 중학교로 배정되며 흩어졌고 내 중학교 입학사진에는 원형탈모로 인해 빠진 머리가 이마 위를 훤히 비췄다. H는 심지어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지만 이미 새로운 학교에서의 인맥 쌓기에 열중한 나머지 나라는 존재는 까맣게 잊은듯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훨씬 컸고 H를 마주칠 일조차 거의 없었다. 간간히 그녀가 새로 사귄 2학년 오빠와 함께 다니는 모습만 보였을 뿐. 나 역시 중학교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 몇 명을 사귀었고 다시 평범하지만 나름대로 소소하게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성인이 되어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우울증세가 생겼을 때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정말 밝고 구김살도 없는 환한 아이였는데 그때 그 왕따사건이 너에게 미친 영향이 컸나 보라고. 엄마 말이 맞았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사실 기억 저편에 덮어두고 있었을 뿐 그때 그 일로 인해 나는 모든 자신감을 다 잃었고 그 대신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 불안감 등을 얻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학교폭력을 다룰 때마다 나는 저렇게 맞지는 않았으니까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아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때의 왕따사건이 내게 미친 영향은 여느 폭력만큼이나 해로웠다. 무엇보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한참을 울었다. 내가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보다 그로 인해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사실이 더 슬펐기 때문이다. 불효가 정말 다른 게 아니구나. 그때 엄마말을 들을걸. 밤샘파티에 가지 말걸.. 


나는 복수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복수를 해봤자 그때의 학교폭력이 내게 남긴 트라우마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에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토해내는 것만으로 나에게 모종의 해방감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고 싶다. 살면서 H를 다시 만나는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만나게 된다면 그녀가 했던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어른스럽고 성숙한 방식으로 그녀가 한 행동의 잘못을 읊어주고 싶다. 내가 일반적으로 믿는 것처럼 인간이 잘 변하지 않는다면 H는 분명 내가 하는 얘기가 전혀 와닿지 않은 인간으로 자랐겠지만 그렇게 함으로 인해 초등학교 6학년의 웅크렸던 내가 조금이나마 어깨를 펼 수만 있다면 나는 내가 그녀를 마주하는 날이 꼭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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