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티콘 Jun 17. 2022

나는 왜 시를 읽을까?

도서관 신간 코너를 어슬렁거리는데 시그림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의 이름을 확인하는데 ‘박완서’란다. 박완서? 내가 아는 소설가 박완서인가? 맞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 박완서 작가가 시집을 냈다는 얘기는 듣질 못했는데. 

책을 펴보니 이성표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그림마다 글 한 구절이다. 여인과 몽환적인 배경에 글이 잘 어울린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이 글은 박완서 작가가 평소 곁에 두고 읽었던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애송시 100편』(민음사⋅전 2권)에 대한 서평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의 일부이다. 서평에서 작가는 글이 막혀 휴식이 필요할 때, 글에 들어갈 딱 맞는 단어를 빌려 올 때, 청춘의 울렁거림을 맛보고 싶을 때도 시를 읽는단다.


시그림책과 서평을 읽다 보니 ‘나도 한때는 시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 서정윤의 ‘홀로서기’,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롱펠로의 ‘인생 찬가’, 한용운의 ‘임의 침묵’을 읽고 외우다 잠든 내 인생의 봄날. 언제부터인가 시를 읽는 기회가 뜸해지더니 이젠 아예 시와 담을 쌓고 지낸다.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고 세상의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삶의 연속이라.

 

작가가 그랬듯이 나는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애송시 100편』을 펴 든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작가는 말한다. “시는 낡지 않는다.”라고. 시를 읽는 동안 그 시절의 느낌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 편의 시를 읽고 나는 다시 청춘을 찾은 뱀이 된다. 시간이 지나도 한물가지 않는 시가 있는 한 내 인생의 찬란한 기억은 결코 나이 들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특별한 외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