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없이 걷고 또 걷고
도쿄 하면 화려한 빌딩, 복잡한 거리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론 밤이면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정신을 쏙 빼놓는 곳도 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도쿄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동네가 나온다. 나무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평온한 공원도 있다.
넷째 날에 방문한 지유가오카나 기치조지가 그랬다. 동물원을 함께 구경할 수 있는 우에노 공원은 평화 그 자체였다.
초록초록 열매, 우에노 공원
비몽사몽 잠이 덜 깬 상태로 도착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게다가 날씨가 꽤나 더워 들고 온 외투를 어쩌나 하고 투덜대고 있었다.
하지만 버드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힘든 기분도 함께 날아갔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공원이 꽤 넓어서 사람이 많아도 북적인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일반 관광객보다 주말 나들이 온 현지인이 눈에 띄었다. 우에노 공원 옆엔 동물원이 함께 있어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장터에서 산 아이스 카페라테를 들고 우에노 공원을 한 바퀴 빙 둘러봤다.
호숫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앉아서 쉬는 외국인 커플도,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편히 쉬는 일본 할머니도, 야구 연습에 한창인 꼬꼬마 아이들도, 온전히 그들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기대 이상 만족감을 얻었다.
상상 속에 그리던 마을, 자유가오카
지유가오카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촌 같은 동네다. 낮은 건물과 한산한 동네 골목까지 분위기가 닮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서촌보다 훨씬 부내 풀풀 나는 동네라는 점.
여행 계획을 짤 때 지유가오카에서 목적지를 따로 정하진 않았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사진을 찍으며 길거리와 사람 구경을 했다.
폭풍우처럼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날이 갠 상태라 거리는 훨씬 깨끗했다. 바닥에 고인물에 반사된 햇빛이 반짝였다.
도쿄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지유가오카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본 중학생 무리를 마주쳤을 만큼 순도 200% 현지 동네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내가 상상했던 도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로 기차가 지나가 잠시 멈춰 서야 할 땐 애니메이션 한 장면 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도쿄 여행을 간다면, 특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평화로운 마을, 기치조지
지유가오카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기치조지. 도쿄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지하철을 탔을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주민들이 많았다. 나나이 바시 도리 상점가를 지나, 숨 죽인 듯 고요하게 호수가 펼쳐진 기치조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봤다.
기치조지엔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시바견 인형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았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배를 바라봐도 마음이 평온했다.
나에게 여행의 설렘은 현지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 들어가는 것, 또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도쿄 현지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던 지유가오카와 기치조지, 그리고 우에노 공원은 도쿄 여행의 특별함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