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이기는 데서 멀어진 투자

by 전병조
적어도 두 종류의 게임이 있다.
하나는 유한 게임, 다른 하나는 무한 게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유한 게임은 승리를 목적으로,
무한 게임은 게임 자체의 지속을 목적으로 한다.
(제임스 P. 카스)


주식투자에서 어떤 플레이어가 될지 정하려면 먼저 가능한 옵션들을 검토해야 합니다. 《유한 게임과 무한 게임》이라는 책 제목 속에서 고르시면 됩니다. 이걸 읽고 저는 꿈까지 꿨습니다. 누구에게는 실제 경험일 법한 매우, 매우 현실적인 꿈 이야기입니다.


꿈에서 저는 어떤 목표에 매우 집중했습니다. 누구보다 진지했고요. 그런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어우, 스트레스! 그런데 같은 활동을 하는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닿으려는 목표를 아무렇지 않게 해냈습니다. 때로 그에게 불운이 찾아오면 저는 남몰래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로 긁히는 건, 경쟁자는 결과가 어떻든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진지하지도 않다는 겁니다. 저는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그 활동조차도,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그를 이길 수 없겠다고 좌절했을 때, 꿈에서 저는 이 책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저에게만 경쟁자였습니다. 경쟁은 제 마음 안에서만 펼쳐졌습니다. 그는 마치 관객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참가자였습니다. 꿈에서 깨며 딱 한 단어만 잔상을 남겼습니다. 거리!!!


우리가 어떤 세계관 내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그 바깥을 정의해야만 합니다. 아기가 그 자신이 여자임을 깨닫기 전에 남자라는 바깥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하듯이요. 그래서 경쟁과 성공에만 완전히 익숙하던 저에게 무한 게임의 정의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글 한 편만으로도 이 책 가치의 절반이 되기를 기대하게 될 정도입니다.


제임스 P. 카스는 인생관을 두 종류로 나누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선언이 빈틈없이 논리 정연합니다. 유한 게임에서는 승리함으로써 시합을 끝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게임은 세계로부터 분리된 시간, 공간, 자격의 경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전쟁, 스포츠 경기,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정에 따라 어느 한 쪽의 승리 혹은 최고 순위에 합의하는 것은 플레이어들 자신입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플레이합니다. 역할에 너무나도 열중한 나머지 자신이 그것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손흥민 선수는 경기하는 90분 동안만큼은 ‘인간 손흥민’이 아니라 전적으로 LAFC의 공격수 역할에 몰입합니다. 유한 게임에서 놀라움은 패배에 가까워지는 상태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상대의 플레이를 예측하고, 반대로 적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훈련을 합니다. 유한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플레이에 진심이고, 심리적으로 아주 가까이 밀착됩니다. 반면 관객들은 시합의 경계 밖에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무한 게임에서는 플레이가 자발적이라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다릅니다. 무한 게임에는 승리나 성공이 없습니다. 수단도 목적도 없는 과정만이 이어질 뿐입니다. 무한 게임의 목표는 오직 게임이 지속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이를 위해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이나 규칙의 변경마저도 기꺼이 주장합니다. 무한 게임은 세계와의 분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고, 공간적이거나 인간적인 제한도 없습니다. 누구나 언제 또는 어디서든지 게임에 참여하거나 참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한 게임에 패배가 없다면, 플레이어들은 놀라움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교육은 무한 게임에서 놀라움을 피우기 위한 창조입니다. 무한 게임은 진지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는 플레이 자체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누립니다. 그 자신은 관객이며, 잠재적으로는 관객 또한 플레이어인 셈입니다. 사실은 그런 혼란스러운 구분조차 지어진 것이 아니지만요. 이 점에 대해 카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유한 게임은 무한 게임 안에서 진행될 수 있기에 무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유한 게임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모든 적절한 에너지와 자기 은폐로 유한 게임에 참여하지만, 거기에 유한 게임 플레이어들이 지닌 진지함은 없다. 무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유한 게임의 추상성을 추상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아닌 놀이하듯 가법게playfully 게임에 들어선다. 무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사회적 관제 속에서 자유로이 가면을 쓰지만, 자신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한다. 그러므로 무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유한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누군가 맡아 하는 역할로서가 아니라 플레이를 하는 그 사람 자체로 여긴다.


여기에 인생충격을 받은 사이먼 시넥은 《인피니트 게임》이라는 책에서, 경영자들이 유한 게임 사고방식을 가지는 위험에 대해 지적합니다. 대부분의 비즈니스 리더들은 경쟁사를 이기거나 최고가 되기를 목표로 설정합니다. 이 유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있지도 않은 결승선을 자신들의 발바닥 밑에 멋대로 긋습니다. 그 회사에서 물러난 뒤에 사업이 어떻게 될지는 관심도 없습니다. 반면에 네이비씰, 애플, 파타고니아 같은 사례에서 보듯 무한 게임 경영자는 사업을 가능하면 영원히 지속하는 데에 헌신합니다. 세대를 걸쳐서도 완전히 이뤄지기 어려운 미션에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무한 게임 리더들은 성과 지표에 진지하지 않습니다. 고객, 직원, 투자자, 지역 사회를 아우르는 신뢰에 훨씬 더 많이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어떤 게임이든 플레이 할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경영과 투자는 거의 닮아 있습니다. 따라서 유한 게임 경영자를 믿어보기로 하는 건 투자자도 유한 게임을 선언하는 셈입니다. 비용 절감, 이익 성장에서 이기기 위한 무슨 짓이든 당연한 것으로 장려되고 보상됩니다. 더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 위해 경쟁하고, 시장에 뒤쳐지는 패배를 진지하게 자기 것으로 아파하면서요. 지금껏 그런 줄로만 알고 투자를 해왔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무한 게임처럼 투자할 수 있는 그 바깥 옵션까지 알고 나서 ‘진짜 선택’이 가능합니다.


여기에 관한 제 입장은 이미 꽤 유추할 수 있을 상황입니다. 이를 완곡하게 드러내 줄 인용을 하나만 더 소개합니다. 오크트리 캐피털의 공동 창업자 겸 회장인 하워드 막스는 그들의 다소 특이한 목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고객들에게 우리는 그 어떤 해에도 상위 5% 수익률을 올리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그 어떤 해에도 하위 10%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과가 언제나 상위 47~27%에 머물렀던 한 연기금 펀드를 언급합니다. 14년 뒤 그 평범함의 누적 성과는 상위 4%가 됐습니다. 하워드 막스의 목표는 승리나 성공이라기보다 생존이라고 묘사하는 게 어울립니다. 비단 그 뿐만 아니라 워런 버핏, 찰리 멍거, 그리고 많은 투자의 스승들 역시 살아남는 것에 대해 강조합니다.


저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회를 낭비하는 것이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어쩌면 꾸며낸 겸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만큼요. 그저 '생존'? 월급쟁이로 평생 살라는 말이잖아요. 직장에서의 하루는 10년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자살하기 전에 도망치려면 연간 50%씩은 자산이 늘어나야 했습니다. 그건 실력도 없으면서 한 경기 10골을 득점하려는 공격수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게 설사 성공한다 해도 한 시즌에 40~50 경기를 잘해야 우승할 수 있다는 겁니다. 비유이긴 해도, 커리어가 그리고 축구라는 스포츠가 단 한 시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아내는 투자에 조금도 진지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희 집의 펀드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는 제가 느끼기에는 그렇습니다. 아내는 주가가 내리든 오르든, 감정을 쏟지도 않습니다. 물론 원리조차 모르는 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투자를 가르쳐 주겠다고 해도, 그녀는 배우지 않습니다. 결국 저는 그녀보다 자격 있는 펀드매니저이기를 영원히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순전히 '재미삼아' 플레이하며 그것이 한낱 놀이라는 걸 잊지 않는 관객과도 같습니다. 그녀는 저의 진지함과 조바심에 속하지 않은, 무한 게임 플레이어였던 것입니다.


꿈에서 깰 때처럼 저는 아내의 세계관에 물들게 됐습니다. 가치의 기대 성장률에 현실적인 제한이 있다는 걸 증명해보며 달라졌습니다. 성공적인 수익률보다 유지되는 세월에, 복리가 더 많이 좌우된다는 걸 보며 달라졌습니다. 유한 게임에 갇히지 않고 무한 게임처럼 플레이하는 경영과 투자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달라지기로 선택했습니다. 저에게는 증명과 선택의 가능성이 필요했습니다. 저자로서 이 책이 여러분께도 강요가 아니라 믿음과 자유를 맛보여드리기를 기대했습니다.


장기투자라는 의도를 실현하는 데에는 오래 지속되는 무한 게임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유한 게임이 반복되는 것보다는요. 그래서 저는 투자에서 이기거나 성공하는 걸 목표로 삼지 않으려고 합니다. "장기투자하면 성공하느냐"는 예전의 세속적인 질문은 정의도 틀렸고 논리적으로도 오해가 있지만, 투자의 목표라는 측면에서도 옳은 답변을 시도해볼 여지를 닫아버립니다. 무한 게임 플레이어는 '투자라는 게임을 언제까지나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투자자를 연기하는 데에 진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역할극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플레이어는 무한 게임에 속해 있고, 투자는 그저 즐거운 일입니다. 자신이 투자자임을 잊지 않는 투명한 베일, 그 속에 진짜 인생이 있습니다. 놀라운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준비하는. 우리는 플레이어인 동시에 몇 발짝 떨어진 관객이며, 투자자이면서 또한 경영자입니다. 행운의 놀라움 앞에 자기 것이 아니라는 듯 겸손하며, 불운한 놀라움의 책임에 대해서도 연민을 잃지 않는.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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