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장기투자를 '잘 한다'는 건

by 전병조

저는 주식투자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좋잖아요. 유튜브에 나오는 분들처럼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이 베풀기도 하고. 무엇보다 끔찍이도 싫어했던 직장에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하는 짤을 던지고 싶었어요. 주식투자, 잘 하고 싶으시죠? 심심풀이로 하는 거지만 잘하면 더 재미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주식투자를 잘 한다는 게 뭘까요?


우리가 이 책을 쓰고 읽기 전에 가졌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아 봅시다. 어떤 모습인가요, 우리 주변에서 주식을 잘 한다는 사람은. 국내외 뉴스에서 수혜가 점쳐지는 종목을 기막히게 찾아냅니다. 차트를 보고 곧 주가가 급등할 타점을 귀신 같이 짚어냅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 목표했던 수익권에서 미련 없이 지분을 정리합니다. 이렇게 복리로(?) 승리를 계속 이어 나갑니다.


흔히들 말하는 가치투자자는 어때요? 어떤 기업이 퀄리티에 비해 오해받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챕니다. 누구보다 사업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고, 이익을 정교하게 전망할 수 있습니다. 그 주식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정상적인 가격을 계산합니다. 회사가 받던 오해가 해소되는 계기를 예측합니다. 투자자들이 기업을 다시 평가하게 되고 주가가 오릅니다. 자, 이번에도 이겼습니다. 멋진 분석 자료도 만들고 블로그나 투자 스터디에도 공유합니다. 세상 똑똑해 보입니다.


진심으로 참 부럽습니다. 그런데 워런 버핏은 그 중에서 어느 그룹에 속하나요? 저에게는 모두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주식투자 잘 한다는 고수들에게 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저를 이겼을 테지만요. 그 분들과 저는 같은 스타디움에서 각자의 다른 게임을 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익을 실현하면, 연간 수익률에서 상위권에 들면, 시합이 끝나고 시즌이 끝나버리잖아요. 그런 유한 게임은 제가 즐기려는 놀이가 아닙니다. 장기투자가 뭔지를 알고 두뇌의 결함을 체험하고도 경기에 그렇게 가까이 다가갈 만큼 저는 담대하지 못합니다. 저는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습니다. 여기, 조명도 밝지 않은 경기장의 가장자리가 좋습니다. 그래도 내적 댄스는 출 수 있습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요.


주식투자를 잘할 만한 재주가 없다고 게임을 미리 포기하실까봐 드리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활동에서 운과 실력은 함께 작동합니다. 매사에 운칠기삼임을 모르는 바 아니니까 행운과 불운은 잠시 밀어둡시다. 의도했던 결과를 반복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실력이라고 정의해봐도 될까요? 맹획이라는 적장을 일곱 번이나 생포한 제갈량은 실력이 좋은 겁니다. 여기에 동의하신다면 무한 게임에서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경기를 끝내는 데에 유익한 유한 게임의 기술들을 우리가 말하는 장기투자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요.


물론 무한 게임 안에는 여러 개의 유한 게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공유해 본 세속적인 의미의 투자 실력이 굳이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실력의 정의에 따른다면 장기투자에서는 그 범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목적이 전혀 다르니까요. 투자를 지속하려는 의도와 관련된 기술은 그게 뭐든 실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사람의 지능은 최소한 8개의 독립적인 능력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합된 결과라고 폭넓게 설명한 것처럼요.


무한 게임을 소개한 제임스 카스의 말대로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천재들입니다. 그리고 물론 투자에서도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빠른 정보, 동물적인 감각, 최적의 매매 타이밍, 귀신 같은 분석능력만이 실력이라는 오해에서 자유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장기투자를 플레이하는 실력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예를 들면 메타인지도 실력입니다. 워런 버핏, 찰리 멍거, 피터 린치 같은 분들도 항상 능력의 범위에 머물라고 조언했습니다. 그걸 아는 것부터가 실력입니다. 내가 어떤 유리함을 안고 있으며, 못하는 건 무엇인지, 한발 물러나서 판단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렇게 해보려는 노력조차 드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에 덤비거나 충동에 따라 아무거나 덥석 물면 하수입니다. 모든 순간이 고통으로 번집니다. 깨져보고 아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미스터 마켓의 감정을 이용해먹을 자신이 있을 때에만 방망이를 힘껏 휘두르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찾게 됩니다. 그런 영역을 특히 선명하게 가진 분들이 참 부럽습니다. 경영과 회계 관련 지식, 특정 분야의 전문가, 인적 네트워크, 경험과 자료, 덕력 등등. 사업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유리한 분야가 한두 개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니까 주식투자만 공부하는 건 미련한 짓입니다. 그건 누워서 간식 먹으며 뻔한 다이어트 책만 읽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럴 시간에 커리어나 취미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심리학이나 과학 같은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것조차 스트라이크존이 됩니다.


이것과 관련해 겸손함 역시 핵심적인 자산입니다. 공자는 “임금이 임금 노릇의 어려움을 안다면 그 말 한마디로도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경영과 투자도 그렇지 않을까요? 겸손을 꾸며낸 게 아니라면 투자자는 괜히 위험한 전망에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수익률에 지렛대 역할을 해줄 빌린 돈이 필요하지도 않을 테고요. 다른 투자자를 경쟁자로서 질투할 가능성도 낮습니다. 눈부시게 빨리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그것조차 신경쓰지 않을 겁니다. 빠르거나 느리다는 것도 비교에서 오는 거니까요. 다른 투자자들이 그를 이겼다고 생각할 때에도 겸손한 투자자는 패배를 모릅니다. 경쟁에 참여하지도 않는 관객 같은 플레이어를 그 누구도 진정으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겸손을 가진 투자자는 게임을 그만둘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요구하는 수익률이 높은 것 또한 실력입니다. 쓸데없이 비싼 가격은 돈을 잃게 될 확률을 높이지만, 위험 감수성이 예민한 투자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그의 포트폴리오는 위태로움을 모르고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런 투자자는 어지간히 우수한 경영진, 다시없을 저렴한 가격 기회가 아니면 방망이를 내밀지 않습니다. 주식을 보유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뜻밖에도 현금을 쥐고 기다리는 건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위험에 대한 기준이 더 엄격하다면 절제력을 발휘하기가 덜 어려울 겁니다.


저축은 진정한 실력 중 하나입니다. 월급처럼 정기적인 소득을 유지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게 별 것 아니라고요? 천만에요. 워런 버핏이 누리는 환경적 조건입니다. 그는 지주회사의 회장으로서, 자회사의 배당을 세금 없이 받아갈 수 있습니다. 월급을 받지는 않지만, 버핏은 계속해서 투자재원을 공급받는 셈입니다. 게다가 그는 권위를 드러내는 데 무관심한 경영자로도 유명합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투자자 로널드 제임스 리드의 가장 분명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평생 주유소 직원과 백화점 청소부로 일했던 그는 세상을 떠나며 8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2014년 6월 당시 환율로 81~2억 원이나 되는 큰돈입니다. 리드는 건빵처럼 단조로운 생활을 유지하며 혼자 힘으로 두 자녀를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그러고도 자신에게는 쓸 필요가 없어서 남은 돈을 대형우량주에 차곡차곡 저축했습니다. 은행 금고에 남겨진 종이로 된 주식 뭉치의 두께가 5cm나 될 정도였습니다. 그의 무한 게임 실력은 순한 맛 그 자체, 그야말로 레전설입니다.


공통적으로 이 사례들은 기술이나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투자에 있어서 위험 요소가 인간에 관한 것이었듯 거울처럼 존재하는 기회 또한 바로 사람 자신에 관한 것들입니다. 어떤 것을 알거나 모르는지, 혹은 중요하게 여기거나 신경쓰지 않는지. 그 사람 됨됨이와 태도, 캐릭터 그 자체가 실력의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믿는 것보다 아는 것이 힘이 셉니다. 매번의 결정에서 일관되게 생존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는 것이 제 기준에는 고수입니다. 우리가 버핏 같은 분들을 존경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투자로부터 거리를 벌려둘 수 있는 세계관이 있다면 그건 모두 실력입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투자자는 인간이니까요. 두뇌의 결함과 분리될 수 없는, 필연적인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자신의 현재에, 충동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실력입니다. 무엇보다 이 활동을 무한 게임으로, 하나의 놀이로 보는 관점은 두 말할 나위없는 실력입니다. 자신의 투자가 어떤 게임인지 정의하는 정체성이 당신의 실력입니다. 주식이 제발 안겨주고 싶어 안달하는 가치를 거절하지 않기 위해 울퉁불퉁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낙관을 잃지 않는 게 실력입니다. 미래의 자신이 부탁한 결정을 행복하게 감당하는 태도가 우리의 투자 실력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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