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새 일이 진행되어 버렸다.
항공과 호텔 예약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감이 밀려왔다. 부모님이 어떤 관광지를 좋아하실지 몰라 매일같이 관련 책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내가 즐겨했던 방식의 여행이란 - 아침에 일어나 아이와 책을 읽고 수영을 하고, 구글지도로 주변 평점좋은 로컬식당을 찾아다니며 현지 직원에서 여행팁을 얻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주변의 조언과 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니 70대 부모님과의 해외여행에는 몇 가지 공통된 팁이 있었다.
하루에 최소 한 곳의 관광지를 방문할 것, 대중교통과 택시를 적절히 활용할 것, 그리고 지출 내역을 100% 공개하지 말 것 등이었다.
태국은 내게 익숙한 나라였다. 여러 번 방문했고, 아이와 함께 한 달 살기도 두 번이나 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번엔 모든 게 새롭게 느껴졌다. 부모님의 취향에 맞는 관광지를 고르는 일이 특히 까다로웠다.
짜오프라야강 디너크루즈를 예약하되 아이를 고려해 조용한 곳을 선택하고, 향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식당을 리스트에 올리는 등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에이,뭐 별거 아니잖아? 너무 순조롭네. 생각이 들무렵 항공권 예약 실수를 발견했다.
나 사고쳤네.!!
우리 가족의 항공을 먼저 예약발권하고 몇 시간 뒤 부모님의 항공권을 예약했는데
출발 시간이 다른거 아닌가. 우리 가족과 부모님의 출발 시간이 1시간 차이 나는 것이었다.
같은 날 같은 항공사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는 사실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먼저 여행사에 전화해서 우리가족 3명의 항공권 변경을 물었더니 수수료가 인당 20만원씩 60만원이란다.
이건 아니다. 변경 수수료가 너무 비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부모님께 먼저 방콕에 도착해 기다려 달라고 부탁드렸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나 혼자 비행기 티켓을 변경해 부모님과 함께 가기로 했고, 남편과 아이는 예정대로 1시간 뒤 비행기를 타고 오기로 결정했다.
이 실수를 계기로 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님과의 여행' 방식에 무리하게 나를 맞추려 하고 있었다. 내가 원래 좋아하는 느긋함과 로컬 스타일은 어디로 갔을까? 문득 깨달았다.
곧 80대가 되시는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캠핑카를 몰며 전국을 여행하시는 분들이 아닌가.
1년에 200일은 캠핑카에서 주무시는 분들이다. 엄마는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하시고, 매년 패키지여행을 즐기시는 분이다.
이 깨달음과 함께 나는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부모님과 게스트하우스에도 머물고, 카오산로드의 밤도 즐기고, 100바트짜리 로컬 기차도 타보기로.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 여행 준비를 통해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여행은 정해진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더 값진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이제, 설렘과 기대를 안고 방콕으로 떠난다. 이 여행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추억을 선사할지,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더 이해하게 될지 기대된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 특별한 시간이, 우리 가족의 소중한 이야기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