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얼 Jan 06. 2023

땅 - 엘라(2)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12)

노쓰햄튼, 2008년 5월 19일


해가 져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엘라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를 해둔 다음 <달콤한 신성모독>을 잠시 밀어놓았다. 이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엘라는 인터넷 검색창에 ‘A. Z. Zahara’를 쳐보았다. 뭐가 나올지 궁금하면서도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다.

놀랍게도 개인 블로그가 있었다. 페이지는 자수정과 터키블루 두 가지 색을 위주로 꾸며져 있고 상단에는 길고 하얀 치마를 입은 남자가 천천히 돌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엘라는 데르비시의 회전춤을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블로그의 제목은 ‘삶이라는 이름의 달걀껍데기’이었는데 그 아래에 동일한 제목의 시가 적혀 있었다.     

 

타인을 삶의 길동무로 삼자!

그의 발 옆에 앉아보자!

우리의 내면엔 여러 가지 화음이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가 우리의 전부는 아니다.     


웹 페이지는 전 세계 여러 도시와 장소에서 온 엽서들로 가득 차 있었고, 모든 엽서마다 그곳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가 적혀 있었다. 그 많은 내용들 중 세 가지의 정보가 즉각적으로 엘라의 주의를 끌었는데, 우선 그의 이름 중 A는 아지즈(Aziz)의 첫 글자라는 것, 그리고 아지즈는 자신의 정체성을 수피(Sufi)로 여기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과테말라를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다른 섹션에는 그가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다양한 피부색과 골격을 가진 사람들의 인물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생김새는 서로 굉장히 달랐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모습에서 확실히 알아챌 수 있는 어떤 한 가지, 예를 들면 귀걸이라든가 신발, 단추 같은 것들이 빠져 있다는, 조금 심각한 경우엔 치아, 손가락, 다리 한쪽과 같이 신체 일부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사진들 아래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우리가 누구이건, 어디서 살고 있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다.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찾아야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내지 못한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알게 된 사람은

극히 드물긴 하지만

길을 떠나고 마침내 찾는다.      


엘라는 웹페이지의 스크롤을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모든 엽서들을 클릭하고 확대해서 보고 아지즈가 적어놓은 글귀들을 읽었다. 페이지 맨 아래에는 그의 이메일 주소, azizZzahara @gmail.com가 있었고 엘라는 그것을 종이쪽지에 옮겨 적었다. 그러자 루미(Rumi)의 시가 눈에 띄었다.

      

사랑을 선택하라, 사랑! 사랑의 달콤한 생명이 없다면

모두 짐일 뿐 ― 우리가 익히 알듯이


이 시를 읽는 순간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엘라를 스쳐갔다. 아지즈라는 존재와 그의 블로그, 사진이며 글귀, 인용문과 시, 이 모든 것이 그녀 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준비된 게 아닐까 하는, 지극히 찰나의 생각이었다. 비이성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지만, 그녀에게만큼은 모든 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설명 같았다.      

늦은 오후 엘라는 조금 피곤하고 가라앉은 상태로 창가에 앉아있었다. 해를 받아 등 뒤가 따뜻했고 그녀가 굽고 있는 브라우니의 냄새가 부엌에 가득했다. <달콤한 신성모독>을 펼쳐놓기는 했지만 걱정에 사로잡혀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문득 소설 속 샴스처럼 엘라도 이 지상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만의 규칙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즉시 그 규칙의 이름을 정했다 ― 도심 외곽에 사는 현실 전업주부의 40가지 규칙.

“규칙 제1번.” 그녀는 중얼거렸다. “사랑을 찾지 마라. 불가능한 꿈을 좇지 마라. 마흔이 다된 유부녀에겐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자기가 만든 이 실없는 농담 때문에 그녀는 왠지 불안해지면서 더 큰 걱정거리가 다시 생각났다. 엘라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큰 딸 자넷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동응답기가 전화를 받았다.    

“자넷, 우리 딸, 엄마야. 내가 스콧한테 전화한 건 잘못이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쁜 뜻은 없었어. 내가 원한 건 좀 더 확실하게... ”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미리 무슨 말을 할지 정해놓지도 않고 전화한 게 후회스러웠다. 응답기의 녹음기가 돌아가는 희미한 진동 소리는 테이프가 감기는 만큼 말할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초조해졌다.

“자넷, 내가 그런 거 정말 미안해. 나한텐 감사할 게 더 많고 불평할 처지가 아니라는 거 아는데... 그런데... 하지만 엄마는 너무... 불행해서...”

딸깍. 여기서 응답기 녹음이 끝났다. 엘라는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의 충격으로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어떻게 그런 말이 튀어나온 걸까? 그녀는 스스로가 불행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불행한 줄도 모르면서 불행하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더더욱 이상한 건 불행하다고 고백한 것에 대해 불행하게 느끼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그녀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깊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힘없이 미끄러지다가 아지즈의 이메일 주소를 적은 쪽지에 멈췄다. 이름을 그대로 딴 주소가 직선적이고 간단명료해서 개방적으로 느껴졌다. 별 망설임 없이 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아지즈 Z. 자하라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엘라입니다. 저는 문학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고, 제 업무 중 하나로 선생님의 소설 <달콤한 신성모독>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직 초반부지만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견해이기 때문에 저희 부장님도 저와 같으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저희 에이전시로 들어오는 원고에 대한 최종 결정에 있어서 저는 아주 미미한 역할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랑이 삶의 본질이며 사랑이 아닌 것은 어떠한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 주제를 놓고 결론 나지 않을 논쟁을 벌이려는 건 아니지만 저는 선생님 견해에 완전히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반대 의견을 말하려고 이메일을 쓰는 건 아닙니다.

사실 제가 <달콤한 신성모독>을 읽고 있는 ‘타이밍’이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이하기 짝이 없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네요. 현재 저는 제 큰딸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며칠 전엔 딸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결혼 계획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딸은 지금 저를 몹시 미워하고 있고 저와는 말도 안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면 저의 딸과 잘 지냈을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시각이 매우 비슷하니까요.

의도한 건 아닌데, 이렇게 제 개인적인 하소연을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더니 (이메일 주소도 거기서 알게 되었어요) 현재 과테말라를 여행 중이시라고요. 세계를 두루 다니며 여행한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겠지요. 혹시나 보스턴에 오시게 된다면 선생님과 만나서 차 한 잔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엘라 드림           


아지즈에게 보내는 엘라의 첫 이메일은 초대장 성격의 편지가 아니라 제발 도와달라는 울부짖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도 없는 부엌에 혼자 앉아,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무명작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그때는 그 사실을 깨달을 길이 없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땅 - 샴스(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