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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Jan 22. 2023

땅 - 초보 수사(1)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15)

바그다드, 1242년 4월


내가 머리를 조아리며 판관 일행을 문까지 안내해주고 나서, 손님들이 어질러놓은 그릇들을 치우려고 재빨리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바바 자만과 그 데르비시가 방금 내가 나갈 때와 똑같은 자세로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말을 하지 않고도 소통한다는 게 가능한 건가 의아해하면서 나는 두 사람을 곁눈질했다. 방석도 바로 놓고 카펫 위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줍기도 하는 등 방안을 정리하면서 나는 최대한 뭉그적거렸지만 더 이상은 계속 머물러 있을 핑계를 대기가 어려웠다. 마지못해 발을 질질 끌면서 나는 부엌으로 갔다. 나를 보자마자 주방장은 퍼붓듯이 명령을 쏟아냈다. “카운터 닦고, 바닥은 걸레질하고, 그릇들 설거지하고, 스토브와 그릴 주위의 벽들 문질러서 닦아! 그리고 다 하거든 쥐덫 놓아둔 곳들 가서 확인하는 거 잊지 말고!”

여섯 달쯤 전에 이 집회소에 왔을 때부터 그는 나를 함부로 대했다. 그는 매일같이 나를 개처럼 부려 먹으면서 그 혹독한 짓에다 나를 위한 ‘영혼의 훈련’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 기름진 접시를 닦을 때는 영혼도 깨끗이 닦인다는 식으로 말이다. 주방장은 말수가 적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이 주문 하나만큼은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청소는 기도고, 기도는 청소다.”

“그게 진짜라면, 바그다드에 사는 모든 주부들은 이미 영적인 스승이 되었겠네요.” 한 번은 내가 이렇게 대들어보았다. 그는 나무 주걱을 내 머리에 던지면서 호통을 쳤다. “그 따위로 말대꾸하면 넌 아무 데도 못 가, 이 녀석아. 네가 정말 데르비시가 되고 싶다면 그 나무 주걱처럼 조용히 있어야 돼. 반항심은 초보 수사의 덕목이 아니야. 될 수 있으면 적게 말하고, 될 수 있으면 빨리 철들어라. 알았어?”

나는 주방장이 싫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무서웠다. 나는 결코 그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다. 오늘 저녁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방장이 뒤돌아서자마자 나는 부엌을 몰래 빠져나와서 발끝으로 살금살금 다시 그 방으로 갔다. 그 유랑하는 데르비시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굴까? 뭘 하러 여기 왔을까? 그는 이 집회소에 오는 여느 데르비시들과는 달랐다. 그는 강렬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눈빛을 갖고 있었는데, 심지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일 때조차도 그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지닌 비범하고 예측 불가능한 무언가에 대한 느낌은 차라리 두려움에 가까웠다.

나는 문짝의 갈라진 틈에 눈을 대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점차 내 눈이 어둠침침한 방안에 적응하면서 두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바 자만이 묻는 소리가 들렸다. “말해봐요, 타브리즈의 샴스, 당신 같은 분이 바그다드엔 무슨 일로 온 겁니까? 꿈에서 이곳을 보았나요?”

데르비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저를 이곳에 인도한 건 꿈이 아니라 환상입니다. 저는 결코 꿈을 꾸지 않습니다.”

“꿈은 누구나 꿉니다.” 바바 자만이 다정하게 말했다. “다만 당신이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꿈을 안 꾸는 건 아니에요.”

“저는 아닙니다.” 데르비시는 단호했다. “그것은 신과 나 사이에 이루어진 약속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천사를 보았고 제 눈앞에 펼쳐진 우주의 신비를 목격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언짢아하시면서 꿈 좀 그만 꾸라고 말씀하셨지요. 친구들에게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도 그들 역시 나를 못 말리는 꿈쟁이로만 치부했습니다. 선생님에게도 이야기해 보았지만 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저는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그걸 꿈이라고 말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꿈이라는 단어, 그리고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전부 싫어하게 되었던 겁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데르비시는 불현듯 어떤 소리를 들은 것처럼 멈췄다.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똑바로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문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걸음을 옮기는 동안 내내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훔쳐보고 있는 걸 다 아는 것만 같았다.

그는 마치 나무 문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다시 부엌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팔과 다리, 그리고 온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 너머에서 그리고 문을 통과하여 샴스의 검은 눈이 나에게 꽂혀 있었다. 두려움이 커지는 만큼 나의 몸 전체에 소용돌이치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가 다가와 문고리에 손을 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나는 이제 잡혔구나 싶은 그 순간에 그는 딱 멈추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는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슨 이유로 그가 마음을 바꿨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참을 수 없이 긴 일 분이 흘렀다. 마침내 그는 뒤를 돌았고 문에서 멀어지면서 이야기를 다시 이어 갔다.

“조금 더 나이를 먹게 되자, 저는 신에게 꿈꾸는 능력을 아예 없애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래야만 신이 제게 나타났을 때 그것이 꿈이 아님을 알 수 있으니까요. 신께서는 제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저에게서 꿈을 없애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타브리즈의 샴스는 이제 방을 가로질러 열린 창문 옆에 서 있었다. 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신은 저에게서 꿈꾸는 능력을 가져갔고 그 대신 다른 보상을 해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꿈을 해석할 수 있게 허락하셨죠. 저는 남의 꿈을 해석합니다.”

나는 바바 자만이 그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믿지 않을 것이고 항상 나를 꾸짖을 때처럼 그를 꾸짖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소장은 아주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니군요. 말해봐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사실 당신이 제게 그걸 알려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요?” 소장은 통 모르겠다는 투로 물었다.

“거의 40년 동안 저는 떠돌아다니는 데르비시였습니다. 비록 사회의 법칙은 저에게 생경하지만 자연의 법칙에는 도통합니다. 필요하다면 들짐승처럼 싸울 수도 있죠. 물론 누군가를 해치지는 못합니다만. 하늘을 보면 별자리를 읽을 줄 알고 숲에 가면 나무들 이름을 압니다. 또한 신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인간들을 보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정확하게 읽습니다.”

샴스는 잠시 멈추고 소장이 램프에 불을 붙이는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계명에 이르기를,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을 통해서 신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은 모스크나 회당이나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녕 신이 어디 계신지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그를 반드시 찾을 수 있는 오직 한 곳이 있으니, 그것은 진실하게 사랑하는 자의 마음속이다.’ 신을 만난 후에 죽은 사람은 없는 것처럼 신을 만난 후에 산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신을 찾게 되면 영원히 신과 함께 하게 됩니다.”

희미하게 깜박거리는 불빛 속에서 아무렇게나 물결치는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타브리즈의 샴스는 키가 더 커 보였다.

“하지만 지식은 어딘가로 흐르지 않는 한 꽃병 밑바닥에 가라앉은 소금기 많은 물과 같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신에게 내 안에 쌓인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사마르칸트에서 저는 환상을 보았고 제 운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바그다드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저의 도반(道伴)이 될 사람의 이름, 그리고 어디로 가야 그를 만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으며 저에게 말씀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 나중에요.”

밖에는 밤이 깊어지면서 한 줄기 달빛이 열린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나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림없이 주방장이 나를 찾았으리라.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번에는 규칙을 어겨도 기분이 좋았다.

“어떤 대답을 원하고 있는지 나는 통 모르겠지만...” 바바 자만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드러나도록 운명 지어진 정보가 있다면,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당신은 여기서 우리와 함께 머무시지요. 손님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데르비시는 감격하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바바 자만의 손에 키스했다. 그러자 소장은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지요? 마치 진귀한 보석을 특별한 누군가에게 주듯이 당신은 당신 손아귀에 진리를 들고 있으려는 거죠.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열어 영의 빛을 비추는 것은 우리 인간이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신의 천둥 번개를 훔치려는 겁니다. 그 대가로 뭘 내놓을 겁니까?”

그때 데르비시가 했던 대답은 내가 살아있는 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말이었다.

눈썹을 치켜뜨고 그는 확고하게 말했다. “나의 머리를 내놓겠습니다.”

차가운 전율이 등골을 타고 내려와 나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다시금 갈라진 틈에 눈을 갖다 대고 봤을 때 소장도 역시 그 대답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오늘 얘기는 충분한 것 같군요.” 바바 자만은 긴 숨을 내쉬었다. “피곤하실 텐데, 초보 수사를 불러서 침실로 안내하고 깨끗한 시트와 우유도 한 잔 드리라 하겠습니다.”

그러자 타브리즈의 샴스가 문쪽으로 돌아섰고 다시금 그가 나를 응시하는 느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마치 나를 훤히 꿰뚫어 보면서 내 안으로 침투하여 내 영혼의 모든 굴곡을 샅샅이 살피면서 나조차도 모르게 숨어있는 나의 비밀들을 조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는 흑마술을 하는 사람이거나 쿠란이 우리에게 멀리하라고 경고했던 바빌론의 두 천사, 하루트와 마루트의 제자인 것 같았다. 아니면 초능력을 갖고 있어서 문이나 벽 너머를 볼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뭐가 됐든 나는 그가 무서웠다.

“초보 수사는 부르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일부러 약간 높은 소리로 말했다. “그가 여기 가까이에 있는 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벌써 다 들었을 겁니다.”

나는 너무나 큰 소리로 숨을 헐떡거려서 무덤에 있는 시체들이 다 깨어날 정도였다. 정신없이 허둥대며 마당으로 뛰어나가 어둠 속에 피할 곳을 찾으려 하는데, 거기엔 전혀 반갑지 않은 놀라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너 여기 있었어? 이 골칫덩어리!” 주방장은 소리치며 손에 빗자루를 들고 나를 쫓아왔다. “너 진짜 혼난다, 이 녀석, 혼날 줄 알아!” 나는 옆으로 뛰어내려서 아슬아슬하게 빗자루를 피했다. “이리 안 와? 안 오면 다리몽댕이 분질러 놓는다!” 주방장은 씩씩대며 내 뒤에서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가지 않았다. 대신 쏜살같이 마당을 벗어났다. 타브리즈의 샴스, 그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동안 집회소에서 큰길까지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아주 멀리까지 간 후에도 나는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심장이 마구 펌프질을 하고 목은 바짝바짝 말랐지만, 나는 무릎이 더이상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더이상 뛸 수 없을 때까지 뛰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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