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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Jan 31. 2023

땅 - 바바 자만(2)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17)

바그다드, 1243년 1월 26일


데르비시 집회소의 생활은 타브리즈의 샴스가 가진 정도보다 훨씬 더 많은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아홉 달이 지나도록 그는 아직 우리와 함께 있다.

처음엔 그가 이곳의 엄격하게 짜인 일과를 싫어한다는 게 너무도 티가 나서 언제든 짐을 싸서 떠나버릴 것 같았다. 같은 시간에 기상과 취침, 규칙적인 식사,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를 몹시 지루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하늘을 나는 새처럼 홀로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내 생각엔 그가 집회소를 박차고 나갈 뻔했던 적이 몇 번은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그의 열망보다는 영혼의 길동무를 찾겠다는 그의 결심이 훨씬 더 컸다. 샴은 그가 원했던 정보를 조만간 내가 찾아내어서 그에게 어디로 가야 하며 누구를 만나야 할지를 말해주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믿음으로 그는 계속 머물러 있었다.

아홉 달 동안 내가 그를 가까이에서 보니, 그에게는 시간이 다른 식으로, 더 빠르고 더 집중적으로 흐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데르비시들이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려서 배우는 일을 그는 며칠 만에, 못해도 몇 주 만에 해내곤 했다. 그는 새롭고 특이한 모든 것들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자연을 관찰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나는 그가 정원에 나가 있는 모습을 정말 많이 보았는데, 그는 거미줄의 완벽한 조형미나 밤새 피어난 꽃잎에 맺혀 빛나는 이슬방울에 탄복하고 있었다. 그는 책이나 원고보다 곤충, 풀과 나무, 동물에게서 훨씬 더 많은 영감을 받았고 더 큰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그가 독서에는 전혀 관심이 없나 보다 했는데, 의외로 오래된 책에 몰두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금 곧 아무것도 읽지 않고 공부도 안 하면서 몇 주간을 그냥 지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사람은 충분한 지성을 지녀야 하지만 그것이 변질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 하나의 원칙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성과 사랑의 재료는 서로 다르다. 지성은 사람을 단단히 매듭지으며 전혀 위험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엉킴을 풀고 모든 것을 위험하게 만든다. 지성은 충고하며 조심시킨다. ‘지나친 황홀경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줄 때, 사랑은 ‘오, 신경 쓰지 마라. 그냥 빠져들어라.’고 말한다. 지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사랑은 맥없이 부서져 산산조각이 난다. 하지만 정말 귀한 보물은 그렇게 부서진 폐허 속에 숨어있다. 산산조각 난 가슴속엔 보물이 숨겨져 있다."


샴을 더 잘 알게 되자, 나는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뻔뻔스러울 정도의 대담함을 존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독보적으로 비상한 그만의 능력이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일례로 그는 입에 발린 소리를 전혀 못해서 직설적이다 못해 퉁명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우리 데르비시들에게 절대로 남의 잘못을 보지 말라고 했고, 만일 누군가 잘못했다면 그저 용서하고 아무 말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샴은 어떤 잘못도 묵과하도록 두지 않았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애매하게 둘러대는 법 없이 즉시 그것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그의 고지식함은 사람들을 화나게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들이 화를 내면서 자기 속에서 튀어나온 것을 스스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가 평범한 일을 하도록 만들기는 어려웠다. 평이한 일에는 참을성이 거의 없었고 요령을 터득하자마자 금방 흥미를 잃었다. 반복되는 일과를 할 땐 마치 우리 안에 갇힌 호랑이처럼 절망적인 모습이었다. 대화가 지루하거나 누군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면, 그는 결코 쓸데없는 수다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그냥 일어서서 가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안전함, 편안함, 행복과 같은 가치들이 그의 눈에는 하등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또한 말이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너무도 확고하여 가끔씩 말 한마디 없이 침묵하며 며칠 동안 지내기도 했다. 이것 또한 그의 원칙 중의 하나였다 :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말을 잘못하거나 잘못 알아듣는 데에서 비롯된다.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라. 사랑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는 폐기 처분된다.


마침내 나는 그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를 위험한 지경에 빠뜨리고 싶을 만큼 맹렬한 분노를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깊은 곳에서 느껴졌다. 결국 우리의 운명은 신의 손에 달려 있고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언제 떠나게 될 것인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샴을 누그러뜨리고 세상에 적응시켜서 조금이나마 더 평온한 길을 걷도록 도와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겨울 먼 곳으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가 왔고 그 편지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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