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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Mar 01. 2023

땅 - 편지(2)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21)

바그다드에서 카이세리로, 1242년 9월 29일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신의 이름으로,

형제이신 세이예드 부르하네딘,     


평화와 신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당신의 편지를 받고 저는 매우 기뻤고, 당신이 한결같이 사랑의 도(道)를 위해 헌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당신의 편지가 저를 진퇴양난에 빠뜨린 것도 사실입니다. 당신이 루미의 동반자를 찾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나는 그게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내가 알 수 없었던 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였죠. 

저희 처소에 타브리즈의 샴스라고, 유랑하는 데르비시가 한 명 있는데, 그가 바로 당신이 묘사하는 바와 맞아떨어지는 인물입니다. 샴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행해야 할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믿지요. 이를 위해 그는 깨달은 사람을 깨우치기를 원합니다. 제자도, 학생도 아닌, 영혼의 동반자를 신에게 간구해 왔습니다. 한 번은 저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세상을 진리로 인도하는 자들의 맥을 짚으러 왔다는 겁니다.   

당신의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샴스가 루미를 만나러 갈 운명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회소의 모든 데르비시들이 공평한 기회를 가졌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 전부 한자리에 모은 다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다만 가슴이 열려야 할 어떤 학자 한 분이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몇 명의 지원자가 있었지만, 그 임무의 위험성에 대해 말해준 다음에도 끝까지 남은 건 샴스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게 지난겨울이었죠. 같은 장면이 봄에, 그리고 가을에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오래 끌었는지 의아하시겠죠.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많이 생각해 봤는데, 결국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 제가 샴스를 좋아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를 위험천만한 여정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알아두실 것이, 샴스는 쉬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유랑하는 삶을 사는 한 상당히 잘해나갈 수 있겠지만, 도시에 머물면서 도시 사람들과 섞여 살게 된다면 아무래도 무슨 파문을 일으킬 것 같아 걱정됩니다. 이게 바로 그가 떠나는 걸 제가 최대한 미루고 또 미루려고 했던 이유입니다. 

샴스가 떠나기 전날 밤, 우리는 제가 누에고치를 기르는 뽕나무 숲길 주위를 길게 산책했습니다. 오래된 습관은 버리기 어렵지요. 실크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섬세하고, 놀랍도록 질기다는 점에서 사랑과 비슷합니다. 저는 샴스에게 누에가 고치 속에서 나올 때 자기들이 만들어낸 실크를 어떻게 파괴해 버리는지 설명해 줬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누에를 살릴지 실크를 얻을지, 둘 중의 하나만 택해야 한다는 것도요. 대부분의 경우 농부들은 실크를 손상 없이 온전하게 얻기 위해 누에가 고치 안에 있을 때 죽입니다. 하나의 실크 스카프를 만들기 위해서 수백 마리의 누에가 죽어야 하죠. 

그날 저녁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차고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와 몸이 떨리더군요. 제 나이쯤 되면 쉽게 추위를 타지만, 그 떨림은 나이 탓이 아니라는 걸 전 알았습니다. 우리 정원에 샴스가 서 있는 게 마지막이 되리라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이 세상에선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겁니다. 샴스 역시 그걸 감지했고 그의 눈엔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오늘 아침 이른 새벽녘에 샴스는 저의 손에 이별의 키스를 하고 저의 축복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는 검고 긴 머리를 짧게 잘랐고 긴 수염도 말끔히 면도했더군요. 전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고 저도 묻지 않았죠. 떠나기 전, 그는 이 이야기에서 자기 역할은 누에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와 루미는 신성한 사랑의 고치 속으로 은신할 것이고, 때가 무르익고 진귀한 실크가 짜여지면 나오게 될 것이지만, 실크를 살리기 위해 누에는 죽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콘야로 떠났습니다. 부디 신께서 그를 보호해 주시길 빕니다. 저도, 그리고 당신도 옳은 일을 했다는 건 알지만, 저의 가슴은 슬픔으로 한없이 무겁습니다. 이제껏 우리 집회소에서 기꺼이 받아들였던 데르비시 중에 가장 특이했고 가장 길들여지지 않았던 그가 벌써 그립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신에게 속해있고 신께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신께서 당신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기를 바라며,

바바 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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