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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Sep 22. 2023

물 - 샴스(1)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27)

콘야, 1244년 10월 17일      


방문하려는 도시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나는 언제나 잠시 시간을 내어 성인(聖人)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인사를 한다.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시거나 유명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상관없이 모든 성인들을 향해서다. 이제껏 성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새로운 고장에 들어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곳의 종교가 무슬림이든 기독교든 유대교든 차이를 두지 않고 나는 늘 그렇게 해왔다. 성인들은 그런 식의 사소한 명목상의 구별을 초월한다고 나는 믿는다. 성인은 모든 인류에게 속한다.

그렇기에 저 멀리 콘야가 나의 시야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언제나처럼 성인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성인들은 나에게 인사를 돌려주며 입성을 허락해주는 대신, 부서진 묘비석처럼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의 인사를 듣지 못했나 싶어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더욱 분명하게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성인들이 내 인사를 못 들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단지 내가 콘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나는 성인들이 들을 수 있도록 허공을 향해 외쳐 물었다.

잠시 후에 바람결에 대답이 돌아왔다. “오, 데르비시여, 이 도시에서 네가 찾을 수 있는 건 극과 극일 뿐이고, 그 중간은 하나도 없다. 순수한 사랑이 아니면 순수한 적대감, 둘 중의 하나이다. 너에게 경고하니, 들어가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거라면 걱정마십시오.” 나는 말했다. “순수한 사랑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이 말을 듣고 콘야의 성인들은 나를 허락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당장 도시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떡갈나무 아래 앉아, 말이 주위에 듬성듬성 나 있는 풀을 뜯어먹는 동안, 멀리 어렴풋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콘야의 첨탑들이 햇빛을 받아 유리 파편처럼 빛나고 있었다. 가끔 개가 짖는 소리, 당나귀 울음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상인들이 목청 높여 물건 파는 소리―살아있음으로 고동치는 도시의 일상적인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궁금했다. 지금 이 순간 집집마다 닫힌 문과 격자로 친 창문 안에서는 어떠한 기쁨과 어떠한 슬픔이 살아가고 있을까?

떠돌이 생활에 길들여진 나는 이제 한 도시에 정착해야 한다는 데에 조금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칙을 상기했다 : 길을 가는 동안 네게 오는 변화에 저항하지 말고, 그저 삶이 너를 통해 살아가게 두어라. 너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해도 걱정하지 말아라. 너에게 익숙한 삶이 네가 아직 모르는 삶보다 더 낫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이때 친절한 목소리가 나를 몽상에서 깨웠다. “평화가 있기를, 데르비시!”

고개를 돌리니 올리브색 피부에 늘어진 콧수염을 한 건장한 농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었는데 그 가엾은 소는 너무나 말라서 금방이라도 마지막 숨을 거둘 것처럼 보였다.

“평화가 있기를, 신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나도 인사를 했다.

“왜 여기 혼자 앉아 계시오? 말 타는 게 지쳐서 그러는 거라면 내가 수레에 태워드리리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만, 당신의 소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내 발로 걸어서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군요.”

“내 소를 얕보지 마쇼.” 농부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이 녀석이 비록 늙고 쇠했지만 여전히 나의 가장 좋은 친구라오.”

이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나 농부 앞에 엎드렸다. 어떻게 내가, 신이 창조하신 광대한 세상 속에서 지극히 작은 요소인 내가, 또 하나의 작은 요소인 동물이나 인간, 그 누구라도 하찮게 대할 수가 있겠는가?  

“당신과 당신의 소에게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용서해주십시오.”

의심의 그림자가 농부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내가 그를 놀리는 건지 아닌지를 헷갈려하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런 건 당신이 처음이오.” 이윽고 이렇게 말하며 농부는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소에게 사과한 것 말씀입니까?”

“아, 물론 소한테도 그렇지만, 나한테 사과한 사람도 당신이 처음이오. 보통은 그 반대거든요. 언제나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 내 쪽이지요. 심지어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도 내가 그 사람들한테 사과를 해야한다니까요.”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쿠란 쓰여있기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가장 아름답게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규율 중의 하나이지요.”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규율이요?” 그가 물었다.

“신께서는 그대의 완성, 즉 내적인 완성과 외적인 완성,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하신다. 신은 그대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완전함을 향하여 느리지만 지체없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완성되기 위해 애쓰고 기다리는 미완의 예술이다. 신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개별적으로 소중히 다루신다. 왜냐면 인간성이란 마치 그림 전체를 위해 한 점 한 점의 터치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중요한 고도의 예술품과 같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 설교를 들으러 왔소?” 농부가 뭔가 알아챘다는 듯 물었다. “엄청나게들 모여들 것 같아요. 그분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죠.”

그가 얘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자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말해주실 수 있나요? 루미의 설교는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 건지?”

농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모든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또 동시에 그 어디에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그가 말했다. “내가 살던 마을은 상당한 고난을 당했죠. 처음엔 굶주림, 그다음은 몽골군대였어요. 그놈들은 마을마다 쳐들어가서 불을 지르고 약탈을 했죠. 하지만 도시에서 저지른 짓은 더 악랄했어요. 에르주룸, 시바스, 카이세리를 정복해서는 남자들은 죄다 죽이고 여자들은 붙잡아갔죠. 내 경우엔 가족을 잃거나 집을 잃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기쁨을 잃었죠.”

“이 얘기가 루미와 무슨 상관인 거죠?” 나는 물었다.  

그는 시선을 떨어뜨려 소 잔등을 보며 밋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루미의 설교를 들으면 내 슬픔이 치유될 수 있을 거라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나는 슬픔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위선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만, 진실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농부에게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콘야까지 당신과 동행하면서 루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청해 들어도 될까요?”

나는 내 말의 고삐를 수레에 묶은 다음 농부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무게가 더 늘어났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소를 보니 마음이 좋았다. 소는 어떤 길을 가든 한결같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걸어갔다. 농부는 내게 빵과 염소치즈를 주었다. 우리는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짙푸른 하늘에서 태양이 내리쬐는 동안, 성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콘야로 들어갔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친구.” 나는 수레에서 내려 말의 고삐를 풀면서 말했다.

“설교 들으러 오는 거 잊지 말아요!” 농부가 기대에 차서 외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인샬라. (신의 뜻대로)”

루미의 설교를 몹시 듣고 싶었고, 또 그를 만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우선 시간을 좀 더 보내면서 이곳 사람들이 그 위대한 설교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직접 그를 보기 전에, 그에게 호의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 그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등 다른 여러 사람들의 눈을 통해 그를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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